안보를 명분으로 한 무차별적인 사생활 침해에 경종 울려

미 중앙정보국(CIA)의 치부를 그린 영화 ‘본 얼티메이텀’에서 닐 대니얼스 CIA 지국장은 영국 <가디언>지의 사이먼 로스 기자에게 비밀 프로그램인 ‘블랙 브라이어’의 실체를 털어 놓는다. 이 프로그램은 테러 용의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찰과 감청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일이 벌어져 국제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파문의 진원지는 29세의 전직 CIA 컴퓨터 보안 기술자 에드워드 스노든이다. 

 

스노든은 지난 6월9일 영국 <가디언>지와 인터뷰를 통해 미 국가안보국(NSA)이 ‘프리즘(PRISM)’이란 도·감청 프로그램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6만 1,000건이 넘는 해킹을 감행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NSA가 프리즘으로 당신의 전자메일이나 부인의 전화기록 등 그 어떤 것이든 가로챌 수 있다”고 밝혔다. 그의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14일 홍콩의 유력일간지인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지와 인터뷰를 갖고 NSA가 지난 4년 동안 중국-홍콩의 컴퓨터를 무차별 해킹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미국 정보기관은 해커와 같이 개별 컴퓨터를 해킹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중추역할을 하는 컴퓨터를 해킹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폭로에 따르면 홍콩의 인터넷 허브인 홍콩 중문대학의 서버도 NSA의 해킹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이와 관련,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그가 근거로 제시한 샘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NSA의 해킹 성공률이 75%를 넘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 신문에 “NSA가 어떤 정보를 원했는지는 모른다. 오로지 기술을 이용해 민간의 컴퓨터에 허가 없이 접속하는 행위는 법률위반이며 윤리의식마저 의심케 한다”면서 미 정보당국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이번엔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으로 화살을 돌렸다. <가디언>지는 16일 영국의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가 지난 2009년 런던에서 열린 G20 경제정상회담에서 참가대표단의 통화를 실시간으로 감청하는 한편, 회담장에 마련된 인터넷 카페를 통해 대표단의 전자메일을 해킹했다고 스노든의 폭로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신문은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영국의 동맹국은 물론 러시아마저 GCHQ의 감청대상에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그의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그는 “미국 정부는 나를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는 것으로 진실을 감추지는 못한다. 진실이 다가오고 있으며 무엇도 이를 멈출 수 없다”면서 추가폭로를 시사했다. 

미국 정부는 스노든의 폭로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은 9일 성명을 발표하고 스노든의 이름은 직접 거명하지 않은 채 수사가 진행되는 사안이라는 이유로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그러나 언론과의 접촉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클래퍼 국장은 NBC 방송에 출연해 “미국 정부는 스노든의 폭로에 깊이 우려한다”면서 “개인적으로 역겨운 느낌이다. 스노든이 미국의 정보능력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고 언급했다. 

미 정치권은 비난 일색이다. 피터 킹 공화당 의원은 스노든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 ‘망명자’라고 비난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를 ‘배신자(traitor)’라면서 “미국의 국익과 안보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해를 끼친 최악의 사건”이라고 폄하했다. 미 사법당국은 스노든을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로버트 뮬러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13일 “스노든의 폭로는 미국의 안전에 치명타를 가했다”면서 “그를 체포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동원하겠다”고 공언했다. 
 

베일에 휩싸여 온 NSA의 실체

정보기관의 개인정보 도·감청 관행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NSA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창설됐다. 이후 NSA는 한동안 존재가 베일에 가려졌으며, 미 정부는 ‘그런 기관은 없다(No Such Agency)’라며 존재를 공식 부인했다. NSA의 실체가 처음 알려진 건 지난 1975년 의회 조사를 통해서였다. 조사 결과 NSA는 창설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CIA 등 다른 정보기관의 지령을 받아 영장 없이 국제전화를 감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미 의회는 1978년 해외정보감시법(FISA, Foreign Intelligence Surveillance Act)을 제정해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및 테러 용의자 사찰 활동에 대한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보기관은 정보수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들의 활동은 발전된 기술에 힘입어 더욱 정교해졌다. NSA는 정찰 위성을 이용해 대기권으로 새어 나오는 휴대 전화나 도시 간 극초단파 무선 전송 메시지를 도·감청했다. 

정보기관의 비밀 활동은 국가간 공조체제로도 확대됐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5개 영·미권 국가들은 1981년 ‘에셜론’이라는 암호명으로 전세계 통신을 감청하는 신호정보 수집 및 분석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와 관련, 찰머스 존슨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저서 ‘제국의 슬픔’에서 “에셜론은 전 세계적으로 약 120개의 위성을 모니터 내지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셜론 참가국들은 매일 위성에서 내려 받은 정보를 검색하며 그 날 유입된 정보와 분석 결과를 공유했다. 

비밀 정보수집활동은 9.11테러를 계기로 보다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때 또 다시 NSA의 도·감청 행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미 유력 일간지인 <USA 투데이>지는 지난 2006년 5월 NSA가 수천 만 미국인들의 통화를 감청했다고 폭로했다. 이 신문은 “NSA가 AT&T, 버라이즌, 벨 사우스 등의 통신업체로부터 제공 받은 통화기록을 비밀리에 수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중략) NSA는 수억통의 국내통화 기록에 접근해 수천만 미국인들의 통화패턴에 접근할 창구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NSA의 도·감청 행위는 백악관이 밝힌 것 보다 훨씬 광범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당시 부시 행정부는 이 같은 행위가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데이나 페리노 당시 백악관 부대변인 겸 공보팀장은 “(미 정부는) 법원 허가 없이 통화를 감시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모든 형태의 국내 정보수집활동은 합법적이며 알 카에다와 관련조직을 추적하는데 필수적이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갔다. 부시 대통령은 2009년 “미 정부는 별도의 영장이 없어도 통신사업자의 협조를 얻어 외국인들의 통화 내용 및 이메일, 인터넷 등을 감시할 수 있으며, 미국 내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은 특별법원의 영장을 받아 감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FISA 수정안에 서명했다. 이 수정안엔 AT&T, 버라이즌 등 불법 도청에 협조한 통신회사에 대한 면책조항도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이 같은 조치는 미 정부가 정보기관의 비밀 활동에 사실상 무제한의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노든, 오바마의 도덕성에 일격 

스노든의 폭로는 비밀리에 이뤄져 오던 정보기관의 도·감청 관행이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데 불과했다. 하지만 폭로가 몰고 온 파장은 컸다. 무엇보다 오바마 대통령의 도덕성이 상처를 입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상원의원 후보자였던 2003년 “미 정부는 테러 수사를 위하여 상당한 근거가 없이도 미국 국민의 서류나 소유물을 수색·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애국자법’을 “조잡하고 위험하다”고 평가하면서 폐기를 약속했다. 2007년 대선 후보자 시절엔 “부시 행정부는 우리가 아끼는 자유와 우리가 제공하는 안보 사이에 잘못된 선택을 강요한다”면서 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리즘의 실체가 드러나자 오바마는 말을 바꿨다. 

그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6월17일 PBS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정부의 관심사는 견제와 균형을 기할 시스템의 확립”이라면서 “미국인들은 NSA의 감청 프로그램이 미국은 물론 세계 도처에서 이뤄지는 테러음모를 저지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미국 정부는 법원의 영장 없이 미국인들의 전화를 감청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입장은 전임자의 입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를 의식한 듯 미국 유력일간지인 뉴욕타임스지는 7일자 사설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감시 정책을 ‘개인의 자유와 안보 사이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고 평가한 사실을 잊은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미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포스트>지는 7일 자사 웹사이트 메인화면에 ‘조지 W. 오바마’라는 제하의 톱기사를 띠워 오바마를 비꼬았다. 스노든 역시 비난 행렬에 가세했다. 

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을 어기고 ‘위법적인’ 관행을 저지하기보다 더욱 확대시켰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바마는 조직적인 위법행위에 대한 조사를 막았으며 몇몇 악의적인 프로그램을 심화·확장 시켰다. 또 관타나모 수용소의 사례에서 보듯 인권침해를 종식시키려는데 정치적 자원을 배정하기를 거부했다”면서 오바마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대목은 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7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해킹을 의제로 꺼냈다. 역대 미-중 정상회담에서 해킹이 의제로 오른 것은 이번 회담이 처음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군부와 결탁한 중국 기업이 미국의 군사·경제 기밀을 해킹하고 있다”면서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스노든은 지난 4년간 NSA가 중국과 홍콩의 컴퓨터를 해킹했다고 폭로했다. 그가 적시한 시점은 오바마의 재임기간과 일치했다. 이로 인해 오바마는 중국에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스노든의 신병처리도 뜨거운 감자다. 그는 홍콩에 체류하다가 23일 모스크바로 떠났다. 홍콩 정부는 "스노든은 자신의 뜻에 따라 홍콩을 떠났다"고 밝혔다. 앞서 미 사법당국은 사법처리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서 중국에 그의 신병확보를 요구했던 터라 스노든의 출국은 사실상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은 향후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는 스노든의 신병처리가 미-중 관계의 시금석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스노든의 폭로는 국가안보와 개인의 자유 사이에 벌어지는 해묵은 갈등을 부각시켰다. 스노든의 입장은 확고하다. 그는 “대중은 NSA의 도·감청 프로그램과 이를 용인하는 정부 정책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변했다. 이에 맞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 정부는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재앙을 막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면서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가가 안보를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려는 시도는 오랜 관행이었다. 2001년 미국에서 벌어진 미증유의 테러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선 개인의 자유에 일정 정도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는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안보 지상주의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정부기관의 인권침해가 횡행했다. 미 FBI는 테러 직후 1년 동안 미국에 거주하는 5,000여 명의 아랍계 미국인을 집중 사찰했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용의자에 대해선 일체의 법적 권리를 부인하기까지 했다. 

현실적으로 볼 때 9.11테러 이후 취해진 일련의 조치들은 안보위협을 과장해 권력을 팽창시키는데 기여했다. 특히 속성상 존재를 숨겨야 하는 정보기관들은 안보 지상주의에 편승해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스노든의 폭로는 이 같은 흐름에 경종을 울렸다. 이와 관련, 미국의 베트남전 관련 문서인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는 영국 <가디언>지 기고문을 통해 “미국과 외국 시민들의 사생활에 대한 전면적인 침범행위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바로 그 자유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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