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신화화된 마르크스의 철저한 재구성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는 『카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 사이』 프롤로그에서 “19세기 말의 시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 자신과 그가 정치 담론에서 표상된 방식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존재”했기에, “마르크스가 죽은 뒤 그의 성품과 여러 성취에 대해 이야기들이 꾸며지기 이전인 19세기의 환경 속으로 돌아가서 그의 모습을 다시 그려 내는 것”을 이 책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 책을 옮긴 홍기빈은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가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가 아닌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 그 자체의 궤적을 잘 드러내고 있고, 특히 마르크스의 만년에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결별하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저작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잘 알려져 있듯 마르크스 스스로도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했다. 그의 사위 폴 라파르그에게 “만약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왜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이 1870년대 중반 이후 엥겔스의 마르크스 사상 ‘대중화’ 작업의 산물이며, 이것이 1880년대의 독일 사회민주당과 1890년대의 제2인터내셔널의 요구에 부합하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생겨난 것임을 강조한다. 살아생전의 마르크스가 정치적 영향력도 큰 명성도 얻지 못한 것도 역사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지만,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의 이론이 신비화된 까닭에는 1880년대 들어와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성장과 발맞추어 그 요구에 맞게 엥겔스가 적극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재구성, 혹은 ‘통속화’시킨 데에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저자는 1870년대에 만년의 마르크스가 러시아 ‘미르’와 같은 촌락 공동체에 희망을 걸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홍기빈은 그러한 전환도 납득할 만한 것이라 말한다. “전체와 개인의 모순이 사라지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통합을 통해 모든 소외가 극복된 사회, 노조의 분파적 이익과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갇혀 체제의 일부로 통합되어 가는 노동운동을 넘어서는 단결과 연대의 단위,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파상적인 팽창에서 벌어지는 온갖 참극을 막아 낼 수 있는 작지만 단단한 방파제 등의 요건을 모든 인간 사회에 편재하는 크고 작은 촌락 공동체.” 이것은 마르크스가 “진리와 정의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세상의 꿈 하나만 남겨 두었던 인간, 그 이상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최상의 결과물을 인류에게 남겨 둔 인간”임을 생각한다면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1818년 5월 5일에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경계 지역인 라인란트, 그중에서도 대부분 농업 지역이었던 트리어에서 태어난 마르크스는,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르크스 그 자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더 많은 경우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전 세계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사상가이자 이론가, 혁명가로 굳건히 서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르크스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옮긴이의 해석처럼 이 책은 “지금까지 노출된 마르크스의 속살을 종합”하고 저자의 혜안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라는 달팽이 껍질 속에 숨어 있는 ‘마르크스’라는 민달팽이의 모습을 꼬리에서 두 개의 뿔까지 총체적으로 그려 낸” 평전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 책에서 ‘위대함’과 ‘환상’ 사이에서 그릇된 우상화와 부당한 비난을 받은 껍질을 벗겨 낸 ‘인간’ 카를 마르크스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그 위대함의 진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 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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