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의 존립 기반은 국민 신뢰,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정보력과 조직의 잔혹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스라엘의 정보 수집력은 구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족속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부족별로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해 40일 동안 현지의 동태를 살피게 했다. 이 일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첩보전의 일환이었다.


이스라엘이 강력한 정보기관을 구축한 이유는 바로 열악한 안보환경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지중해와 동방 세계를 연결해주는 위치해 있던 탓에 잦은 예로부터 잦은 외침에 시달렸다. 구약, 신약을 망라해 성서에서 이스라엘이 페르시아나 로마 같은 이방민족에게 정복당한 이유도 이런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정보전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고, 이에 이스라엘은 강력한 정보체제 구축에 사활을 걸었다. 

모사드의 활약은 실로 놀라웠다. 모사드는 1960년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행방을 집요하게 추적해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이스라엘이 아랍세계와 벌인 수차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정보전에서의 우위에서 비롯됐다. 

한반도의 안보환경 역시 열악하기 그지없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외침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근·현대로 접어들면서 안보환경은 더욱 악화됐다. 20세기 초 일본은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반도를 병탄했다. 1945년 일본은 허망하게 패망했지만 바로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일본의 패망 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세력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각축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후 한반도는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 끼어 고달픈 운명을 감수해야 했다. 

1990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는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미-일-중-러 4대강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반도가 취할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정보력 확보는 생존을 위한 당연한 수순이다.   

이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정보기관이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정권의 보위부대 역할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정원의 아픈 역사는 군사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이하 중정)는 ‘안보’를 명분으로 군사 독재정권의 친위대를 자처했다. 반체제 인사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과 연행, 감금, 고문 등은 중정의 통상 업무였다.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1999년 기관의 명칭을 현재의 국정원으로 변경하고 역할도 일부 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찰 조사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은 세종시, 4대강 사업, 제주 해군기지, 주택정책, 복지 등 주요 국정현안에 관해 정부 입장을 옹호한 동시에 대통령의 외교 실적, 경제성과 등을 홍보하는데 앞장선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2월 대통령 선거를 즈음한 100일 동안 국정원 산하 심리전단 소속 70여 명의 직원들이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무더기로 작성한 사실도 검찰에 의해 밝혀졌다. 

국정원은 늘 튼튼한 안보가 국가발전의 초석임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지난 정권 하에서 국정원이 보인 행태는 정보기관의 존재의미마저 무색케 했다. 원장 이하 전 직원들이 4대강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교차하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한반도의 안보환경 상 강력한 정보기관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보기관의 존립 기반은 바로 국민의 신뢰다. 정보기관이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되는 순간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한다. 국민은 이런 정보기관을 신뢰하지 않는다. 국정원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분골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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