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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 제 4장 어느 봄날의 저주
  • 편집국
  • 승인 2018.06.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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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西厓)의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래야 조선은 새로운 조선이 될 것이다.
|태조(太祖)에게 삼봉(三峯) 정도전이 역사를 세웠다면
이순신의 나라에는 유성룡이 절실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종6품의 현감(縣監) 이순신을 1년 만에 정3품의 수사
(全羅左水使)로 발탁한 서애대감의 파격적 인사(人事),
과연 그는 조선을 구한 명재상(名宰相)이다.

(사야가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년 2월 29일 경인)

 

(시사매거진242호=유광남 작가) 봄의 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지는 햇살이었다.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의 서청(西廳)으로 향하던 내관 고명수는 정오의 태양이 눈부셨다.

“봄날의 햇빛이 좋군.”

손을 들어 올려 빛을 차단하려다 말고 흠칫 고내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동자를 마주 했기 때문이다. 영의정 유성룡대감이었다.

“대감께서 어인 분부라도?”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네. 사실대로 말씀해 주실 수 있겠는가?”

내관 고명수는 평소와 전혀 다른 태도의 영의정 유성룡에게 의혹을 느꼈으나 대답을 늦출 수는 없었다.

“대감께서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이옵니까?”

“일전에 상감마마께옵서 헌부의 지평을 새벽에 입궐토록 명하신 일이 있었지 않은가?”

내관은 그 날의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의정 유성룡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그 날, 상감마마는 누구와 침소에 드셨던가? 정빈(靜嬪)이시던가? 아니면 인빈(仁嬪)...?”

“대...감?”

“바른대로 말씀해 주시게.”

고내관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있음을 깨달았다. 봄 햇살이 따가움을 새삼 느끼며 공연히 턱 아래를 긁적거렸다. 고개도 좌우로 까딱 거렸다. 곤란한 일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게......”

“대답을 하기 매우 어렵겠지. 지엄한 왕실의 행적을 입에 담는 것은 내관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왜 모르겠나. 하지만, 반드시 확인해야할 중차대한 사정이 있다네.”

유성룡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덩달아 고내관 역시 긴장으로 인해서 등골이 축축해졌다.

“자네의 처지를 감안하여 그냥 묻겠네. 고개를 끄덕여 확인만 해주게나. 그리되면 내전의 일을 발설한 것은 아니니 자네에게 무슨 죄가 있으며 허물이 되겠는가?”

과연 유성룡은 달랐다. 내관을 꼼짝없이 궁지로 몰아넣었다가 슬쩍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그 길을 마다할 내관이 아니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리다.”

유성룡은 돌려 묻지 않았다.

“그날 밤, 거북이 냄새가 난다고 상감께서 호통을 치셨다는 상대가 빈(嬪)이 아니라 궁녀였던고?”

고내관은 아연실색 하고 말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심야에 내궁 중에서도 가장 깊숙이 위치한 왕의 처소에서 발생했던 은밀한 일을 어찌 영상(領相)이 알고 있는가. 내관 고명수는 고개로 응답하기로 한 사실을 충격으로 말미암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서애대감이 어찌 알고 계시오?”

이제 놀란 것은 내관 고명수가 아니라 유성룡이었다. 그는 사야가 김충선의 장담이 결코 허언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왕의 침소에 그토록 암암리에 침투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왕을 주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어쩌면 그는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 됐다. 아니, 이제는 확신이 들고 있었다. 이순신을 추종하는 열혈청년 사야가 김충선. 그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왕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자였다. 신비로우면서도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사내였다.

“누구에게 전해 들으셨소? 상감마마와 이 몸이 아니라면...설마 그 궁녀가 발설했단 말입니까?”

정신이 버쩍 들었다.

“아닐세. 춘몽(春夢)이였어. 긴 동면에서 벗어나면서 생시처럼 꿈을 꾸었다네. 하도 신기해서 그냥 고내관에게 물어본 것일세.”

유성룡의 등 뒤로부터 긴 그림자가 어린 것은 그때였다.

“꿈이라고 했소? 고내관이 해몽(解夢)에도 재주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소이다. 힛힛힛,”

목소리가 마치 승냥이처럼 간살스럽게 들렸다. 매우 거북한 음성의 주인공인 좌의정 육두성(陸斗成)이 거구를 흔들며 등장했다. 육척 장신에 양 어깨가 떡 벌어지고, 곰의 허리에 관복을 걸친 모습이 장창을 거머쥐고 전쟁터를 누비는 장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전혀 외모와는 다른 목청을 지니고 있는 좌상(左相)이었다.

“그래, 어떤 춘몽이요? 영상대감?”

유성룡은 평소 서인(西人)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인 육두성과는 별로 교류가 없었다. 그가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은 아마 봄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싶었다.

“거북이가 왜적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꿈이었소이다.”

담담하게 대꾸하는 유성룡을 응시하는 좌상의 눈빛은 서늘했다.

“거기에 상감마마와 궁녀도 있더이까?”

고내관의 소리도 이미 들은 것이리라. 유성룡은 신중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했다.

“전란이 깊어지니 별 해괴한 몽상이 잠자리를 괴롭히는구려.”

짐짓 딴청을 피우며 유성룡은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으나 좌의정 육두성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내 비록 몸은 늙었으나 마음은 청춘이고, 얼굴은 주름 가득하지만 내 귀는 팔방으로 열려 있다오. 영상과 고내관의 대화쯤은 아직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단 말이요.”

고내관은 죽을 맛이었다. 자칫 하다간 금일 감당할 수 없는 화가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오금이 저려왔다.

“꿈이란 본디 혼미한 것이오니 이 정도에서 끝을 내는 것이 옳습니다. 아니 그러십니까...영상대감?”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꿈만 꾸고, 현명한 사람은 꿈을 이룬다고 하지 않소. 우리 수군이 임진년 초기처럼 바다위에서 왜적선을 모조리 물리쳐 주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이요.”

육두성은 여전히 승냥이처럼 혐오스러운 목청을 꺼냈다.

“그것은 매우 지당한 꿈이요. 이제 그 좀팽이 같은 이순신을 파직 시키고 원균장군 같은 용맹한 장수를 임용하여 왜적을 일거에 쓸어버려야 할 것이요.”

“좌상은 이순신 통제사를 하찮게 여기시는구려.”

“그는 무능하고, 다른 장수의 공로를 가로채며,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겁쟁이요...아주 불충한 위인이요. 내 말이 틀렸소?”

“임진년에 이순신은 남해바다를 가장 훌륭하게 지켜 냈소이다. 그가 수군을 이끌고 연전연승을 해내는 바람에 조선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어찌 외면하신단 말씀이요?”

육두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전에서 한번은 충돌해야할 사안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란 이름은 이미 구국의 명장으로 존경받고 있는 군인이었다. “그건 그렇지 않소. 통제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적을 물리칠 수 있는 화력과 함대를 우리는 보유하고 있었소. 이순신이 아니었다면, 당시 원균수사나 이억기수사가 해냈을 것이오.”

“만물의 이치는 반드시 그러하지 않소. 똑 같은 자식들에게 똑 같은 재산을 나눠주고, 똑 같은 시간을 부여해 줘도 결국 재산을 늘리는 자식과 탕진한 자식이 있기 마련이요. 역시 같은 재료로 많은 요리사들이 음식을 만들어도 그 맛과 향은 각기 다르오.”

“이순신이 아니었다면 임진년의 남해 승리가 없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오?”

“통제사 이순신은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자제력이 철저한 사람이요. 이와 같은 인물은 그 어떤 임무라 할지라도 소신껏 행동하오.”

이번에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한 변명이라도 이번에는 통하지 않소이다. 그는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를 범하였소. 상감을 모역하고, 조정 대신들을 능멸한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이요! 금부에서 압송중이니 조만간 그를 형틀에 매어 놓고 죄를 추궁할 수 있을 것이요.”

고함과 핏대를 세우고 이조판서(吏曹判書) 겸 예문관 제학 이우찬(李宇瓚)이 일단의 무리들과 등장했다.

“이대감은 혹시 병법에 관해서 아는 바가 있소?”

유성룡의 뜬금없는 질문에 이우찬은 벌컥 화를 내었다.

“그래서 지금 내게 이순신의 병법을 논하려 하는 것이요? 그가 아무리 손무(孫武)를 능가하는 병술의 대가라 할지라도 법을 어긴 죄인이라면 그냥 죄인인거요. 죄인을 병술에 능통하다 하여 그 죄를 용서해 줄 수는 없는 법이 아니요?”

“그렇고말고! 이대감의 말씀이 백번 지당하오.”

좌의정 육두성은 지지자의 등장으로 희색이 만연하여 거들었다. 그들은 당파를 초월하여 이순신에 대한 거부감은 공통적이었다.

“내 말은 이번 이순신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바로 적들이 노리고 있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아닌가 싶은 우려 때문이요. 일본인이 제공해준 첩보를 그대로 신뢰한다는 것은 크나큰 도박이며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맹점이요.”

“그것은 영상의 판단이 옳으신 듯하옵니다. 일본인 요시라의 반간계(反間計)일 수도 있습니다. 고니시와 가토의 반목을 우리가 어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옵니다.”

편집국  gosisa@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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