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홍규 교수가 만난 사람, 정정수 정수환경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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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홍규 교수가 만난 사람, 정정수 정수환경연구원 원장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8.05.31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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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에 예술을 접목시킨 조경예술가 정정수 원장, “아름다움은 자기다움이다”

[시사매거진 242호=이선영 기자] 정정수교수는 홍익대학교 출신의 서양화가이다. 그러나 그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신설한 학문은 ‘예술조경’이다. 조경은 그의 전공인 미술과는 전혀 다른 지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조경전문가가 될 수 있었을까? 누구나 던질 법한 이런 질문에 그는 '조경을 땅위에 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면 미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대답한다. 화가가 파레트의 물감을 찍어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나무, 꽃, 돌, 물 등 조경자재들이 가지고 있는 색채들을 이용하여 땅위의 그림을 만드는 것’이 조경이라니 이해가 된다. 1998년부터 조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2002년 벽초지 문화수목원 설계시공, 래미안금강아파트 설계시공(2008 세계 조경가대회 최우수상),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2016년 국가정원 1호로 지정) 예술총감독으로 진가를 보이는 등 국내 유수의 조경명소들을 만들어낸 그의 여정을 들어 보았다.

서양화와 조경은 서로 다른 분야인데, 어떤 계기로 조경을 시작하게 됐나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조경을 접하기 전까지 개인전을 14회 이상 개최할 정도로 그림에 열정과 애정이 있었고, 서양화가로서 자부심도 있었다. 아마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면 미술계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종종 예상치 못했던 전환기를 맞지 않나? 나에게도 그런 전환기가 있었고, 그 전환기의 시작은 내 아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아이가 6살 때부터 목성의 질량을 구할 만큼 비상함을 보여 제도권 교육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던 터였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제도권 교육은 보통 수준의 인간을 길러내는데 맞춰져 있어서, 보통의 범주에 들지 않는 학생에게는 교육시스템 자체가 무용지물이었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아이의 호기심이 맞질 않아 더 이상 학교를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모삼천 못지않게 이리 저리 아이에게 맞는 교육시스템과 스승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실패했고,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 귀촌이었다.

귀촌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요즘 같은 시대에도 도시생활을 막상 정리하고 시골로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활동 기반이 도시에 있었던 우리가족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때는 지금처럼 귀촌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거의 유일한 스승이 ‘자연’이라는 결론을 얻은 나는 과감하게 자연을 믿고 지리산으로 가족들과 함께 삶의 터전을 옮겼다. 다행히 아이들은 자연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 나갔으며, 나 역시 자연의 품 안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때 나는 자주 지리산을 오르내렸는데, 내 집처럼 드나들다 보니 마주치는 식물들을 관찰하게 되었고, 관찰하게 되니 그 특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꽃이 언제 꽃이 피는지, 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늘을 좋아하는지 햇빛을 좋아하는지, 큰 나무 곁을 좋아하는지 혼자 서 있길 좋아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의 경우에는 ‘눈길을 주니 알게 되고, 알게 되니 사랑하게 되었다.’가 맞는 것 같다. 식물을 알고 사랑하니 식물들이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졌다. 친구를 초대하는 심정으로 씨를 받아다가 우리 집 뜨락에 하나 둘 모시면서 조경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다. 처음에 귀촌을 결심했을 때는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에 생각해 보니 그것은 ‘선물’이었다. 결국 아이들이 나를 자연으로 인도해 준 것이고, 예술적으로 한층 더 깊고 성숙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렇게 예술과 만나는 모든 것은 그 가치가 수직상승 한다.

예술과 조경을 접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동기는

조경은 영어로 'Landscape'이다. ‘land’는 원래 ‘region’을 의미하는 말이고, ‘-scape’의 어원은 ‘condition of being’이다. 그래서 ‘landscape’은 ‘어떤 지역의 상태’를 뜻한다고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단어가 17C부터 ‘풍경화’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19C 유럽 상류층이 조경을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면서 ‘풍경화’를 가리키던 ‘landscape’을 ‘조경’에 차용해서 쓴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유럽의 시각에서 조경과 풍경화는 분리되지 않는 예술의 한 영역이었다는 말이다. 즉 조경을 다른 말로 하자면 ‘대지 위의 그림’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가 조경을 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조경’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조경의 질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조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단순히 집 마당에 식물을 심어 놓고 잘 자라도록 관리하는 것인가? 아니면 집 분위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섬세하게 골라 벽에 걸 듯이, 집에 미적가치를 더해주는 예술인가? 아마 후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조경을 예술로 분류하는 것을 낯설어 한다. 그리고는 예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조경을 맡긴다. 공장에서 찍어 나온 듯 기성품(ready-made)화 되어 있는 조경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서 보는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처음에는 지리산의 식물 친구들을 집 마당에 초대하는 심정으로 조금씩 정원을 만들어나갔다. 100평도 되지 않는 작은 시골집인데다가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니 ‘조경’이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마당꾸미기’ 정도로만 여겼던 것 같다. 다만 그러면서도 마치 땅에 그림을 그리듯이 색과 형태의 조화, 그리고 집 혹은 주변과의 조화를 생각하며 꾸며나갔다. 말하자면 그 ‘마당꾸미기’가 내게는 최초로 캔버스를 벗어나 대지에 그림을 그린 시범작품이었는데, 그 시범작품이 월간지와 TV 프로그램 등에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되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곧 경기도 파주의 120,000m²(약 36,000평)의 버려진 땅을 수목원으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우리 집 정원 하나를 만들어 본 것 말고는 조경 경험이 없는 내게 부담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조경에 예술을 접목시키고 보다 많은 대중에게 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수락했다.

이 수목원의 조성과정에는 지금도 많은 조경인들이 믿기 힘들어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설계이고, 두 번째는 시공이다. 컴퓨터 도면이 아니라 종이에 스케치를 해가며 36,000평 규모의 대지를 설계했다고 말하면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또 큰 규모의 공사는 장비와 인력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조경회사가 시공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나는 인근 마을의 조경노동자와 중장비 기사, 일용직 근로자분들의 도움을 받아 공사를 진행했다. 숙련도와 일정관리에 있어서 조경회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환경이었으나, 오히려 회사가 시공한 것 보다 더 자연스러우면서 섬세한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더 믿기 힘든 것은, 이렇게 스케치 설계와 일용직 근로자들의 도움으로 수목원 하나를 만든 사람 경력의 전부가 100평도 안 되는 자기 집 정원 조성이라는 것이다. 내게도 그것은 큰 도전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 처음 없는 두 번째가 존재한단 말인가? 그러니 처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농촌풍경을 그리던 화가가 바다풍경을 처음 그린다고 두려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만 농촌만 그리더라도 풍경화라는 분야에 정통해 있어야 처음 그린 바다풍경을 그리더라도 자신 있게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중국옌볜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의 주도(州都)인 연길에 리조트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곳은 주민의 40% 이상이 조선족이며 문화 중심지이다. 한국 건축가와 주도하여 설계·시공을 진행하고 있다.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진 현장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자연을 보존하는 것을 전제로 진행한다. 따라서 조경이 선행공종으로 시행될 것이다. 연길시 평봉산 부근 약 100만평 부지에 들어설 ‘연길시평봉리조트’는 나금자 루오징(Luojinzi)산업그룹 회장이 투자했으며, 호텔 및 콘도를 비롯해 온천, 폭포, 호수, 잔디밭, 주말 농장, 주말 자연체험학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6월 연길에 위치한 대상지 답사에 이어서 7월에는 한국에 관련 인사들을 초청하여 내가 작업했던 현장들을 남해안부터 중부지방을 거쳐 휴전선 가까이까지 함께 답사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져갔고, 이 과정에서 생긴 맹점은 현대인에게 식물과의 교감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조경공간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함으로써 인간을 치유하고, 또 감정과 기억 안에서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조경공간이 ‘치유의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동시에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인류는 반성을 업으로 삼아야 한다.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인류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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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수 원장

홍익대 및 동교육대학원 졸업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기전대학교 예술조경과 교수

고도원아침편지 명상센터 예술총감독

서울시 시민청예술축제 전시총감독

2008 세계조경가대회(IFLA)최우수상

2010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수상(문화부문)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예술총감독

2018 현재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 원장

연길 리조트 총감독

차홍규 교수

홍익대 미술학 석사, 동신대 공학박사

북경 칭화대학 미대 정년퇴임

한중수교 20주년 한국, 중국 기념작가

현 한중미술협회장

 

글_차홍규 교수, 사진_이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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