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50명이 털어놓은 갖가지 인생 고민과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만의 명쾌한 처방!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이 시대에 사회학자의 연구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궁금할 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우에노 지즈코 같은 사회학자의 활동을 보면 특히 그렇다. 사회학자로 시작해 젠더 이론가의 선두를 달리고 문화 및 심리학 분야까지 넘나들며 다양한 저작을 발표했지만, 정작 성(性) 관련 저작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의 저명한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 그런 그녀가 이 책에서 맡은 역할은 ‘허리 아래 고민’ 상담가이다.

허리 아래 고민이라고 해서 특별히 성 관련 문제들만은 아니다. 가족과의 삶에서 느끼는 다양한 고민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절실한 문제들, 누가 좀 뭐라고 딱 부러지게 정리해줬으면 좋을 골칫거리들 등, ‘비혼’이자 페미니스트이고 사회 저변의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라면 어떤 답을 했을까 궁금해지는 질문들이다.

남녀노소가 상담해온 고민들을 쭉 읽다보면 세대 간/성 별 입장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고, 사는 모양새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직장이나 집안 내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우리보다 더 경직되어 있는 듯한 일본사회의 단면이 보이기도 한다.

섹스리스여서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30대 주부, 성욕이 너무 강해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는 남자 중학생, 젊은 남자가 귀여워죽겠다는 40대 여성,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겠다는 남편이 실망스러운 전문직 아내, 세 아이를 혼자 키웠건만 몰라주는 자식들에게 서운한 60대 주부, 부모 돌보기를 거부하는 아내가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50대 남자, 상사의 갑질에 고통 받는 여성 연구원, 시어머니를 홀대하는 시아버지가 너무 싫은 며느리, 이렇게 살려고 내 경력을 단념했던가 싶은 40대 주부… 등, 이 책에 등장하는 50명의 질문자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우에노 지즈코에게 털어 놓는다.

이 책의 시발점인 아사히 신문의 인기 칼럼 <고민의 도가니>는 네 명의 전문가가 한 주마다 돌아가며 질문에 답을 하는데, 유독 우에노 지즈코를 답변자로 지명한 질문들이 많다고 한다. 사회학자로 출발하여 마흔 살쯤에 발표한 《스커트 밑의 극장(スカートの下の劇場)》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50대가 되고 나서 쓴 《독신의 노후(おひとりさまの老後)》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어~ 하는 사이에 대략 80만 부나 팔렸다는, 그래서 《독신의 노후》를 출간한 이후부터 독자층이 완전히 바뀌어, 의도하지 않았지만 성(性) 전문가가 되었다고 호기를 부리는 우에노 지즈코.

그래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은, 마치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한 듯한 성숙한 여성의 이미지가 풍기는 우에노 여사의 답변 부분만 따로 읽어보는 것이다. 질문자에게 공감하고, 때로는 질문자를 혼내기도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후 사정은 나름대로 해석을 해가며 단호하게 맞받아치는 답변들은 “남의 인생에 뭔 간섭~”이 아니라 질문자들로부터 “제발 좀 간섭해주세요~” 라고 지명될 만하다.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거기에 개입하는 것은 더 재미있습니다. 원래라면 쓸데없는 간섭인데도 본인이 개입을 요구하는 거라 당당히 답변할 수 있습니다.”라며 질문에 다소 직설적으로 답변을 쓴 우에노 지즈코의 이 책을 읽다보면 인생은 허리 위도 아래도 있어야 살맛이 나는 거라는 그녀의 조언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라면 뭐라고 답변할까, 하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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