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 사법부 법률심의국에서 한미경제안정위원회까지...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해방 5년’의 세밀화를 그리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선물’처럼 다가온 해방. 하지만 해방은 곧바로 외국 군대의 분할 점령으로 이어졌다. 해방의 감격과 점령의 엄중함이 공존했고, 양자가 서로 교차했다. ‘해방의 공간, 점령의 시간’이라는 제목은 그 복잡한 역동의 시기를 함축한 비유적 표현이자, 당대인들이 그것을 어떻게 체감하고 대응했는지 구체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필자들의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새 국가 건설, 사회개혁을 둘러싼 열망이 끓어 넘치고, 이념 갈등과 생계 걱정이 맞부딪치던 70여 년 전, 이 땅의 민초들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살았을까. 이들이 이후 한국 현대사 흐름에서 주체이자 객체로 작용한 만큼 당연히 지대한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이런 한국현대사 연구는 7, 80년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른바 《해전사》는 해방 공간의 민족과 민중을 변혁적 주체로서 다시 불러냄으로써 학계는 물론 청년‧지식인층의 개안開眼을 가져왔다. 한국현대사 연구도 이에 힘입어 1990년대까지 미국과 소련의 대한對韓정책과 점령 통치, 남북한 주요 정당․사회단체들과 지도자들의 활동, 남북한 경제구조의 변화 등에 대한 굵직한 연구가 축적되었고 2000년 전후부터는 사회사와 일상사 분야까지 연구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해방 5년에 대한 연구 축적과 연구 영역 확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명되지 못한 영역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해전사》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하면서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법률심의국, 조미공동회담 등 그간 해방시기 관련 연구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미군정의 점령정책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조명해 《해전사》의 여백을 메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실증에 기반한 한국현대사의 ‘적폐’ 청산 시도

2006년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전후하여 등장한 건국절이나 이승만 국부 논란이 시끄러웠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당대 역사적 사실과 맥락에 기반하지 못한 채 특정 집단의 현재적 이해관계를 과거에 투영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적폐를 양산했다.

이 책은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건국절이나 이승만 국부 주장이 얼마나 반反역사주의적인지를 밝혀냈다. 예를 들어 유엔한국위원단의 활동을 조명한 3부 1장에서 대한민국 정통성의 근원인 유엔총회 결의안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전국 정부로서 위상을 부여받지 못하고 38선 이남에 한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 신승욱은 유엔 총회 한국문제 결의안이 미국이 제시한 초안부터 최종초안 그리고 미국과 영연방 국가들의 공동 결의안 초안이라는 일련의 작성과정을 규명해 이 같은 사실을 밝히고 있다. 기존의 이승만 국부론과 건국절을 주창한 이들이 내세우는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주장을 되돌아볼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