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게 과일은 왜? 내 손 안의 과일 한 알이 새삼스레 귀하게 여겨질 과일 이야기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흔히 생각하기를, 과일은 먹으면 좋지만 안 먹어도 그만인 먹을거리로 인식되어 왔다. 삼시 세끼 밥만 잘 먹어도 감사하던 시절엔 그랬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무상 급식이 실시되는 등, 기본 복지가 확장되면서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편차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런 즈음 들려온 반가운 소식. 2018년 4월부터 9월까지 지방자치단체별로 순차적으로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 교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일 간식을 지원한다고 한다. 이제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 교실을 이용하는 초등학생 24만여 명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과일 간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만큼 과일이 보편타당한 먹을거리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밥상에 올라오는 먹을거리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과일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도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만든 책이다. 맛있게 먹고 나면 그것으로 끝인 게 아니라, 몸의 영양을 더하는 동안 마음의 영양까지 책임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해 보자고 생각했다. 흔히 먹는 10가지 과일을 중심으로, 그 과일이 우리 식탁에 오게 된 역사, 그 과일에 얽힌 특별한 스토리, 그 과일을 소비하는 방식 등을 다채롭게 펼쳐냈다.

알고 보면 흥미진진, 과일의 역사

보통 사람이라면, 여름 내내 시원하게 먹었던 수박을 보면서 인종차별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축하해! 검은 수박씨를 임신한 수박아!”라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수박이 달리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사랑했던 수박, 잠깐의 휴식 때 타는 갈증을 채워 주었던 그 과일에 인종차별의 굴레를 씌운 것은 편견 가득한 백인들이었다. 백인들의 모자란 인성, 부족한 품위는 흑인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수박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만들었다. 수박이 무슨 죄겠는가. 거기에 말도 안 되는 상징을 가져다붙인 사람의 혀가 죄일 뿐이다. 제주의 상징이 된 귤은 또 어떤가. 귤나무에 열린 귤이 채 익기도 전에 숫자를 기록해 그것을 기준으로 귤을 바치게 하면서 차라리 귤나무를 베 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폭풍우에 귤나무가 쓰러지거나 바람에 귤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기록된 숫자보다 줄어든 귤의 수를 채우기 위해 귤나무 주인이 겪어야 할 고초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과일이 대륙을 넘고, 국경을 건너는 역사와 함께 읽어 나가다 보면 맛있는 과일 한 알에 담긴 세계가 참으로 크고도 넓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과일의 속사정

알고 나면 ‘정말이야?’ ‘정말 몰랐어!’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일례로, 케첩을 가장 먼저 먹기 시작한 것이 어디인지 물어본다면 열에 아홉은 “서양 아니야?” 할 것이다. 정답은? 의외로 케첩을 처음 먹기 시작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 남부의 광동 지역에서 소금에 절인 생선으로 소스를 만들었고, 이걸 ‘코에 치압’이라 부르다가 17세기에 아시아 지역에 온 탐험가와 선원들에 의해 영어식 발음 ‘케첩’으로 굳어진 것이다. 유럽과 북미로 건너간 케첩은 버섯, 굴, 홍합 같은 여러 재료가 들어간 소스로 변했고 토마토가 들어간 케첩이 나오면서 전 세계 소스의 대명사가 된다. 케첩이 처음엔 생선 소스였다는 것도 놀랍지만 서양의 대표 소스가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서양 요리, 동양 요리의 경계를 나누고 우리 음식, 남의 음식을 나누는 게 사실은 불필요한 구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지점이다. 과일 이야기에서 퍼져 나갈 수 있는 갈래가 참으로 다양하다.

바나나 플랜테이션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동남아시아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이 글로벌 바나나 회사의 주가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바나나 값이 터무니없이 싼 까닭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바나나 품종이 단일해서 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 병을 이겨내지 못하면 바나나를 식량처럼 먹고 있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거라는 사실 또한 관심 가지는 이가 많지 않다.

‘진짜?’ 하고 놀랄 이야기는 계속된다. 식민 시대, 희망을 찾아 하와이로 건너간 조선의 청년들 이야기,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사진 결혼’을 한 조선의 여인들, 어렵게 일해 번 돈을 독립 자금으로 내놓는 이야기는 읽을수록 새롭고, 알면 알수록 가슴 아프다.

그뿐 아니다. 더 빨갛게, 더 단단하게, 더 오래 상하지 않도록 유전자 조작된 딸기와 토마토에 대한 이야기는 이 과일을 먹고 자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더 고민하게 만든다.

중국의 고전, 조선왕조실록, 서양의 고전과 옛 그림들을 종횡무진 누비며 이어지는 과일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 손 안의 과일 한 알이 새삼스레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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