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일은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 독자가 아직 방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언어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다비드 그로스만이 1986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로, 불과 서른둘 나이에 쓴 초기작이지만 여전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홀로코스트가 남긴 트라우마를 다룬 이 책은 이스라엘 문단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등장했고, 1989년에 영어로 번역 출간되었을 때에도 영미권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뜨거운 관심과 찬사가 쏟아졌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귄터 그라스의 반열에 올렸으며, 미국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조지 스타이너는 이 소설을 가르켜 거두절미하고 “현대 문학의 수많은 걸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상찬했다. 《가디언》 역시 “위대한 성취”라고 적었다.  

대단히 야심차고, 여전히 새롭고, 기이한 에너지를 내뿜는 이 책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거장의 초기작을 놓칠 수 없는 이유 그 자체다. 기존 소설의 형식과 문법, 시간과 공간, 희망과 절망 모두를 파괴하고 재건하며 내달리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역사와 인간을 관통하는 근본적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로스만의 뛰어난 문장력과 방대한 상상력이 도저히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로스만의 원류를 만날 수 있는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는 독자들이 입문하기에 가장 좋은 선택이며, 그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도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될 작품이다.

홀로코스트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만든 기념비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는 환상과 은유의 모험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와 1950년대 건국 초창기의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실제 사건과 가상의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뒤섞이며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이 소설은, 홀로코스트가 남긴 트라우마를 문학으로 치유해보려는 야심찬 시도이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라는 민감한 주제를 파격적으로 다룸으로써 출간 즉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이 중심이 되는 기존의 홀로코스트 문학과 달리 홀로코스트 2세대의 경험과 관점을 통해,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까지 아울러 전대미문의 비극을 재조명했다. 평론가들은 다음 세대가 지닌 적절한 거리감 덕에 비로소 홀로코스트 이야기에 풍부한 상상과 은유가 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출간 후 쏟아진 찬탄과 논란 속에서 이 책을 명실상부 그의 대표작이자 현대 문학의 위대한 성취로 평가했다.

그로스만은 1954년생으로, 건국 초기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자랐다. 건국 초기인 1950년대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스라엘은 암묵적 침묵이 지배했다. 살아남아 이스라엘로 건너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생활인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억눌러야 했고, 이미 팔레스타인에 정착해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강인한 유대인 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과거의 그늘을 외면할 필요가 있었다. 소설의 첫 부분은 당시 이스라엘의 미묘한 분위기와 그 속에서 자라난 아이의 심리를 세심하게 복원해내며 단숨에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흡인한다.

책의 1장 「모미크」는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아홉 살 소년 모미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의 짙은 침묵 속에서 ‘모든 뉘앙스를 읽어내려’ 애쓰는 아이로 자라난다. 모미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망치는 괴물 ‘나치 짐승’의 정체를 캐는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다가, 급기야 길에서 납치한 작은 동물들을 나치 짐승으로 길러내는 실험에 정신을 팔기 시작한다. 비밀 탐정 노릇에 빠진 아이의 엉뚱함이 동화처럼 다가오지만, 사실상 아이는 부모 세대의 비극을 침묵을 통해 변이된 상태로 물려받는 중이다. 이 책은 아이가 성인이 된 후까지 그 트라우마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로스만은 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이고, 언젠가는 홀로코스트에 관해 쓰게 되리라고 예감했다. 이스라엘인으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저 멀리’에서의 삶을, 피해자로서만이 아니라 살인자의 입장에서도, 작품을 통해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인간으로부터 개별성이 말소되고 그저 빨리 소거시켜야 하는 고깃덩어리로 전락했을 때 마지막까지 간직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싶었다. 반대로, 살인자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타인 혹은 한 민족의 몰살을 갈망하거나 순순히 받아들일 때 자기 안의 무엇을 마비시키고 억누르고 심지어 죽여야 했는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물음의 답을 얻기 위해 그는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작품을 썼고, 이것은 출간 후 30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이 꾸준히 읽히고 여전한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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