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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어두운 얼굴을 발견하는 '나의 칼이 되어줘'“진실을 말하는 소설의 거장”이자 “보복 매커니즘의 도구가 되기를 반대한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신간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8.05.0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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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이스라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될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다비드 그로스만은 이스라엘 정부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쉼 없이 낸 평화 운동가이기도 하다. 소설과 희곡, 논픽션, 아동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집필한 그로스만은 “국가적 갈등 상황이라는 외줄 위에서 끝없이 비틀대며 중심을 잡으려는 줄타기 곡예사_《가디언》”라는 평을 받으며, 힘과 정의의 균형이 위태로운 이스라엘의 현실을 과감히 작품으로 옮겨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에메트상,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독일 북스테후더 불레상, 프랑크푸르트 평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에서 아들이 사망하는 비극을 바탕으로 집필한 소설 『땅끝까지To the End of the Land』로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A Horse Walks Into a Bar』로 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며 다시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핀란드, 러시아 등에 36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나의 칼이 되어줘』는 이미 스쳐지나갔다고 여겼던 감정을 서로로 인해 일깨우는 남녀의 이야기로, 사랑, 책망, 불안, 자책, 연민, 집착 등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감정들이 편지를 사이에 두고 봇물처럼 쏟아진다. 이 책에는 고뇌하는 카프카의 영혼이 드리워져 있다. 카프카는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랑은 내가 자신을 깊숙이 찌를 수 있도록 당신이 나의 칼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 구절은 『나의 칼이 되어줘Be My Knife』라는 제목에 영감을 주었으며, 작품 속 여러 번의 인용을 통해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로스만은 “열정적이고 선정적이며 아찔할 뿐 아니라 황홀하다_《가디언》”라는 평을 받으며 이 책을 통해 독자와 문단에 새로운 인상을 남겼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건 당신이 처음이에요.”

오직 편지로만 토로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은밀한 순간들

다비드 그로스만의 어느 소설보다 섬세하고 열정적인 작품

“완전히 상대의 몸으로 들어가는, 그 속에서 길을 잃지도 않고 자신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오직 단 한 번, 이방인이 되는 경험”을 꿈꿨던 야이르는 동창회에서 스쳐간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가진 미리엄에게 편지를 보낸다. “당신 생활에 끼어들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내 편지를 받아주면 좋겠다”라고 청하는 야이르. 만나지 않은 채 오직 편지로, 잔인할 만큼 솔직한 갈망을 담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는 남자에게 미리엄은 화답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삶에 가담”하기 시작한다. 각자 배우자와 아이가 있음을 알기에, 끝이 보이는 관계를 선택한 이들은 점차 서로에게 “한 번쯤 이런 비밀을 소리쳐 털어놓을 수 있는, 땅에 파놓은 구덩이”이자 “내 영혼을 누군가의 손에 건네주고 싶었던 사람”이 되어간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봄부터 가을 끝자락까지 계속되는 야이르의 편지로, 2부는 미리엄의 일기로 구성되어 각각의 관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하게 하고, 3부에서는 뒤섞인 두 사람의 욕망이 마주하는 순간이 그려진다.

시대와 국가라는 화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은 『나의 칼이 되어줘』에서는 예외적으로 거대한 역사적, 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사랑 이야기를 펼친다. 이 책은 이미 자신에게선 스쳐지나갔다고 여겼던 감정을 서로로 인해 일깨우는 남녀의 이야기로, 사랑, 책망, 불안, 자책, 연민, 집착 등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감정들이 편지를 사이에 두고 봇물처럼 쏟아진다. 누구나의 인생에서 종종 숨기고 싶은 은밀한 순간들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폭넓고 복잡한 슬픔을 가진 인간이란 존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인간의 어두운 얼굴을 발견해내는 낭만적인 이야기다. 수많은 매혹적인 오후를 선사할 작품._《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쓰기에 관한 탐구인 동시에 절대적인 자유의 한순간을 탐구하는 책._《가디언》”이란 평을 받으며, 그로스만 소설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열정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누군가의 비밀을 알게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 바깥의 삶을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에 관하여

오로지 글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두 사람은 더욱 스스럼없이 자신의 일그러진 모순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 고안해 낸 안젤루스라는 존재를 통해 비참했던 어린 시절을, 마개가 꽉 닫힌 항아리 속에 갇힌 것 같은 따분한 결혼 생활을, 아버지로서 겪는 갈등과 일찍이 깊게 골이 난 정서적 결핍까지도 낱낱이. 그렇게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을 공유한 야이르와 미리엄은, 그래서 서로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을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들이 쌓아온 극적인 친밀함 자체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난 몇 달간의 편지 속 세상은 현실에 쉽게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는 걸 결국 확인하게 된다.

『나의 칼이 되어줘』에서는 소통에 대한 강박적인 갈망과 그 한계를 통해 자기 바깥의 삶을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조명한다. 늘 사람들 간의 거리에 천착했던 그로스만은 그동안의 작품들을 통해 어머니와 아들, 남편과 아내, 혹은 연인 사이를 갈라놓는 친밀함의 한계를 추궁해왔다. 나와 타인은 완전히 하나로 겹쳐질 수 없는 다른 존재이기에, 우리는 늘 어긋난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거리가 존재할까. 그만큼의 거리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까. “글을 통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상처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뿐.” 자신도 상처의 일부임을, 상처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하는 그로스만은 이 작품에서 이 작품에서 인간의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욕망과 관계의 불완전함에 대한 질문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선영 기자  sunneeh@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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