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이뤄지지 않으면 국정운영 동력 상실로 귀결될 것

   
▲ 원세훈 전 국정원장 © 뉴시스

의혹으로만 떠돌던 국정원의 국내정치 및 선거 개입이 사실로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 6월14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경찰공무원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의 수사결과 드러난 국정원의 국내정치·선거개입 실태는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수준이었다.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은 원세훈 전 원장이 취임했던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 전 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정 보좌, 국정 홍보 업무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우리의 임무는 국시를 지키면서 정부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국정원 업무를 좀 더 공격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라는 원 전 원장의 2009년 5월15일 전부서장 회의 발언은 국정원의 운영 방향을 함축하고 있었다.

원 전 원장은 특히 사이버 공간에 주목했다. 사회불안을 일으키는 종북 좌파와 그 동조세력들의 선전선동이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국정원은 3차장 산하 심리전단을 조직하고 사이버 활동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했다. 검찰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9년 3월 심리전단을 독립 부서로 편제하는 한편 사이버 팀을 2개로 늘렸다. 이 팀은 정권 후반기에 더욱 확대됐다.

검찰은 조사결과를 통해 “(국정원은) 2010년 10월 이명박 정부 후반기를 맞아 사이버 팀을 3개로 확충했으며 2012년 2월엔 총선 및 대선을 앞두고 사이버 팀을 4개 팀 70명으로 확대했다”고 발표했다. 심리전단 소속 요원들은 지휘 체계에 따라 이슈 및 논지를 하달 받고 사이버 상에서 각자 담당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다수의 아이디를 번갈아 사용하며 글 게시 및 추천·반대 클릭 등의 활동을 수행했다. 이들의 활동결과는 최종적으로 원장에게 보고됐다.

심리전단의 임무는 세종시, 4대강 사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주택 정책, 복지 등 주요 국정현안과 관련해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고 이에 반대하는 야당과 종북좌파 세력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 외교실적과 경제성과 홍보도 이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 심리전단의 임무와 활동 내용은 사실상 국정 홍보나 다름없었다. 이들의 존재와 활동은 원 전 원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원이 앞장서서 (이명박) 대통령님과 정부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임”이라는 2010년 1월22일 전부서장회의 발언은 이 같은 정황에 무게를 실어준다. 

종북좌파 척결과 국정홍보는 동일 사안

국정원이 사회불안 세력으로 지목한 종북좌파의 개념은 모호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야당, 시민단체, 노조 등에 대해 북한 및 종북세력의 국정 흔들기에 결과적으로 동조한다는 의미에서 모두 ‘종북좌파’에 포함되는 것으로 폭넓게 인식했다”고 한다. 즉,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종북좌파라는 등식이었다. 원 전 원장은 종북세력 척결과 국정 홍보를 별개의 사안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는 2012년 6월15일 전부서장회의를 통해 “국책사업 등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면 종북좌파들의 현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종북세력 척결과 국정성과 홍보가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연결되는 문제다. 즉 국정성과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종북좌파에게 이기는 길이다”고 말했다.

그의 정치개입 발언은 2012년에 접어들어 더욱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 해는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해였다. 그는 이 같은 일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그는 직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주문했다. 그는 총선을  3개월 앞둔 2012년 1월6일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대선도 예정돼 있어 적과 종북세력들이 남남 갈등 조장은 물론 주요 국정성과 폄하를 위해 준동하고 있는 상황임”이라면서 “이들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선 각 부서가 관련 현안에 대해 사실을 정확히 인지해 잘못된 주장을 반박하고 국민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업무를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종북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대선 6개월 전인 2012년 6월15일 “종북좌파 세력들이 국회에 다수 진출하는 등 사회 제분야에서 활개치고 있는데 대해 우리 모두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면서 “직원 모두는 새로운 각오로 이들이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함으로써 국정원의 존재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선이 임박한 11월23일엔 더욱 높은 수위의 발언을 했다. 그는 “종북 세력들은 사이버 상에서 국정폄훼 활동을 하는 만큼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은 당당하게 하되 사소한 일에서 물의야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발언들은 국내정치와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검찰 조사는 원 전 원장의 의지가 실제 현실에 반영됐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 등 인터넷 커뮤니티와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에 총 1,770건, 인터넷 포털 다음 아고라엔 3,409건의 게시물을 올렸다. 시기별로 볼 때 2012년 9월 3건, 10월 9건, 11월 24건, 12월 35건 등 대선이 임박해오면서 게시물의 수도 늘어갔다. 게시물의 주제별로 살펴볼 때 심리전단 소속 요원들은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반대 글 37건,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후보 반대 32건,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 반대 등 총 73건의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이들이 게시물을 올린 시점도 민감한 이슈가 부각될 때와 거의 일치했다.

이들은 지난 해 9월19일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대선출마를 선언하자 이에 반대하는 게시물을 2건 올렸다. 이들은 다음 달인 10월엔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글을 집중 게시했다. 마침 이 시기는 여야가 NLL로 열띤 공방을 벌이던 시기였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10월8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며 구두 약속을 해줬다”면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공개했다. 이러자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측은 10월15일 “NLL 녹취록 폭로한 정문헌 의원 고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여야는 NLL을 놓고 약 1개월에 걸쳐 열띤 공방을 벌였다. 이들은 이때 NLL을 주제로 16건의 게시물을 올렸다. 작성 시점도 10월16일부터 11월28일까지로 NLL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한창일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한편 이들은 12월4일 1차 TV 토론 직후엔 이정희 통진당 후보의 ‘남쪽 정부’ 발언을 주제로 22건의 글을 작성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찬반 클릭 분석결과 ‘새누리당 반대 글’과 ‘민주당 지지 글’에 대한 반대가 각각 675회와 205회로 나타난 반면 ‘새누리당 지지 글’과 ‘민주당 반대 글’ 찬성 클릭수는 각각 54회와 205회를 기록해 여당에 우호적이고 야당에 비판적인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내부 폭로로 재점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처음 불거진 시점은 대선을 불과 8일 앞둔 지난 해 12월11일이었다. 당시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수서경찰서는 12월16일 오후 11시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경찰의 발표가 이뤄진 시점은 무척 미묘했다. 무엇보다 경찰이 일요일 늦은 밤 수사결과를 발표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이 시점은 문재인-박근혜 당시 후보의 TV 토론이 이뤄진 직후였다. 두 후보는 TV토론을 통해 국정원 선거개입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다.

두 후보는 국정원 대선개입 외에도 저출산 고령화, 전교조, 의료대책 등 다양한 현안을 놓고 치열하게 맞섰다. 토론 직후 조사 결과 문 후보가 더 잘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따라서 경찰의 발표는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선과 뒤이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최초 사건발생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러던 차 사건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진원지는 사건을 초동 수사했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었다. 

권 과장은 지난 4월19일 “서울지방경찰청(이하 서울청)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일선 수사팀에 핵심 수사 자료를 넘겨주지 않으려 하고 주요 증거물을 피의자에게 돌려주려 하는 등 지속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서울청이 국정원 측에 분석범위를 정하게 하려 했고 키워드 100개를 4개로 축소했으며 분석결과물 성부를 지연시키는 등 부당 개입했다”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결과 이 같은 폭로는 사실로 드러났다.

검찰은 서울청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은폐·조작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수서경찰서는 12월13일 오후 서울청 사이버수사대에 증거 및 자료확보를 위한 디지털 증거분석을 의뢰했다. 이에 대해 서울청은 12월16일 22시42분 “디지털증거분석 결과 박근혜·문재인지지·비방 내용의 게시글, 댓글을 게재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23시에 발표하게 했다. 한편 서울청은 12월17일 오전 9시 브리핑을 통해 “혐의사실을 확인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청은 이어 분석결과 은폐를 위한 논리 개발에 착수했다. 국정원은 12월13일 임의제출물 분석 시 최대한 2012년 10월 이후부터 문재인·박근혜 후보 비방사실 유무 확인에 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컴퓨터 자체를 임의제출한 이상 사생활·국가기밀 관련 정보의 신중한 취급을 촉구하는 의미일 뿐”이라는 이유를 들어 혐의사실 전체에 대한 분석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서울청은 분석대상을 ‘노트북 제출자 김 모씨(국정원 여직원)가 10월1일 이후 해당 노트북으로 박근혜·문재인 후보를 지지·비방 게시글을 게재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로 한정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서울청이 국정원이 사용한 40개의 ID·닉네임은 게시글 파악의 단서임에도 게시글, 댓글과는 별개라는 이유로, ‘박근혜·문재인 후보 관련 게시글’은 게재인지 열람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모두 누락시켰다”고 밝혔다.

김용판 전 서울청장은 이 모든 상황을 지휘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은 디지털 증거분석이 진행된 12월14일부터 12월16일 사이 주말에도 출근해 보고받으며 직접 상황을 챙겼다. 그는 이때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컴퓨터가 아닌 수기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노트북에서 복구된 메모장 문서 파일 내용 및 인터넷 접속 현황 등 주요 상황을 파악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김 전 청장의 수사개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2월16일 수서경찰서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 그리고 12월17일 브리핑은 그가 결정한 일이었다. 중간 수사결과 관련 보도자료와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보고서도 그에게 보고돼 승인 받은 뒤 수서경찰서에 송부됐다.

검찰은 김 전 청장에 대해 “공무원 지위를 이용해 대통령 선거 직전 실체를 은폐한 허위의 수사공보를 하게 함으로써 선거운동을 하고 허위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시함으로써 경찰공무원법상 정치운동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면서 “허위의 언론공보를 하도록 한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 외에는 다른 의도를 상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실체 드러난 국정원 정치개입, 진상 규명이 당면과제

검찰은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경찰공무원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황교안 법무장관이 두 사람에 대한 구속수사에 반대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황 장관은 선거법 적용에 대해서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겨레신문>은 6월3일 황교안 법무장관이 검찰에 “원 전 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적용은 안 된다”라면서 제동을 걸었다고 보도했다.

불구속 기소로 가닥이 잡혔지만 검찰 수사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특히 야당과 시민, 사회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moonriver365)에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저는 제도권 진입을 차단해야할 종북좌파였다”며 “우리 사회를 분열시켜 적대, 증오하게 만드는 비열한 딱지 붙이기가 정권의 중추에서 자행되고 지금도 정권 차원에서 비호되고 있다는 게 참담하다”면서 국정원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박영선 의원도 18일 국회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미국으로 따지면 CIA국장과 FBI국장이 서로 내통하고 선거에 개입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지속적으로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14일과 19일 각각 국회와 새누리당에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청원을 발의했다. 그는 청원을 통해 “헌법이 유린되고 국정원과 경찰이 사적으로 동원되어 야당과 지식인, 시민단체와 국민 다수를 ‘종북, 적’으로 몰고 척결 대상으로 삼는 ‘심리전’을 전개하고 대통령 선거에도 고의적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과 증거가 확인된 ‘국정원 게이트’의 해결 없이 어떻게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 국민 단결이 가능하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대학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19일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과 경찰 축소수사에 대한 총학생회 입장’을 발표하고 “권력기관들이 정권의 개가 돼 국민들의 여론을 통제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국정원을 강력히 성토했다. 서울대에 이어 이화여대, 경희대, 성공회대 총학생회가 잇달아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경찰의 축소수사를 규탄하고 나섰다. 정의구현사제단 등 천주교 단체와 11개 기독교단체도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지난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의 부시 후보는 법원 결정에 힘입어 대통령직에 올랐다. 이런 탓에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법원 대통령’이란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국정조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번 사건을 철저히 규명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대통령’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국정운영의 동력 상실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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