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홍규 교수가 만난 사람, 조종남 서울YW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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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홍규 교수가 만난 사람, 조종남 서울YWCA 회장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8.05.08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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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단체와 의료인을 잇는 다리가 되어 나눔의 가치를 전파하며 살고파"

[시사매거진 241호=이선영 기자] 봄꽃의 향연이 아름다운 날, 꽃보다 고운 사람을 만났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바쁜 삶을 살면서도 서울YWCA 회장으로 활동하며 나눔과 살림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조종남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화여대 총동창회장 시절, ‘이화가족 어린이 그림 그리기대회’를 처음으로 기획했을 만큼 미술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조 회장과의 만남은 봄바람을 맞은 듯 싱그러웠다.

많은 일을 하신 조회장님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태어났다. 창의문 밖 자연이 살아있는 산 밑의 계곡이 아름다운 동네였다. 시내로 이사를 한 후에도 옛 동네에 친척집이 두 집이나 남아 있어서 방학 때면 자주 찾곤 했다. 지금은 개발로 사라졌지만, 친척의 능금밭이 있어서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능금을 먹기도 하고, 지금의 청와대 뒷산 계곡 맑은 실개천의 골짜기에서 놀기도 했다. 돌을 들추면 가재가 기어 나오는데 엄지발에 물릴까봐 허리를 잡아 올리며 친척들과 즐겁게 보낸 추억이 떠오른다.

저도 서울 출생인데 초등학교의 기억도 있었을 텐데

초등학교 시절에는 인왕산자락 아래 살았다. 산중턱에 있는 치마바위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면서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놀고 하였다. 치마바위는 단경왕후의 전설을 안고 있다. 단경왕후는 1499년 13살에 진성대군과 부부가 되었는데 20살이 되던 해에 강제로 헤어졌다. 단경왕후는 궁궐에서 잘 보이는 인왕산 바위에 중종이 알아볼 수 있도록 치마를 걸어 뒀다. 그 후 남편 중종을 그리워하며 단경왕후가 올랐던 인왕산 바위를 치마바위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아름답고도 슬픈 치마바위의 전설을 생각하며 산자락을 넘어서면 사직단이 있는 사직공원이 나오는데, 모래밭에서 마음껏 뛰어 놀기도 하고 석양이 질 때까지 친구들과 그네를 타다가 집으로 향하던 행복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입상은 못했지만 어린이 그림 그리기대회에 나가 자연 속에서 호흡하던 때도 떠오른다. 이 시절의 추억이 어른이 되어 맡게 된 이화여자대학교 총동창회 회장으로서 ‘이화가족 어린이그림 그리기대회’를 기획하는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어떻게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는지

초등학생 때부터 일생동안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은 담임선생님께 과외를 받고 중학교 시험을 치르던 시대였는데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과외를 받지 못한 나에게 특별히 과외 시험지를 따로 주셔서 문제를 풀게 하신 선생님덕분에 기본실력이 단단해질 수 있었다.

성적으로는 어느 대학이라도 갈 수 있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이화여자대학교를 택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여대로 진학해 자매 같이 지낼 수 있는 친구를 사귀기 원하셨다. 그리고 입학 성적도 우수해 장학금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할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의대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머니의 친구이자 이화여대 의대 1회 졸업생인 권분이·김애주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전문직 의사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산부인과로 전문 과목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전문 과목을 정하기 전 1년간의 인턴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분만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진통이 오면 온천지가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며 못 견뎌하다가도 아기가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온가족과 의료진 모두 평화와 환희에 가득 차게 되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보기에도 좋았다. 더구나 산모와 아기 두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챙기고, 환자로서가 아닌 새 생명의 탄생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 찾는 산부인과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산부인과는 이대 의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였고, 학업성적과 인턴 수련과정의 점수 등을 종합하여 평가했는데 의과대학 6년 동안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나는 걱정 없이 산부인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

서울YWCA는 어떠한 단체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서울YWCA는 1922년에 설립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민단체다. ‘Y 청년운동’ ‘W 여성운동’ ‘C 기독운동’ ‘A 회원운동’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생명사랑 공동체 운동을 펼치고 있다. 다가올 2022년 창립 100주년을 준비하며, 최근에는 ‘깨어있는 여성이 만드는 세상의 변화’를 목표로 세 가지 평화브릿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Y+ 사업: Empowering Girls 앙트러프러너십 교육을 통한 위기 청소년 역량 강화 W+ 사업: Strengthening Women’s Ability 소외된 여성들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지원 S+ 사업: Standing up for Social Justice, Peace and Life 글로벌 여성운동의 허브로 도약, 제3세계 활동가 서울Y 인턴십 지원 등이다. 앞으로 서울YWCA가 계속해서 이끌어나갈 세상의 변화에, 시사매거진 독자 여러분들도 관심을 가지고 ‘평화브릿지’가 되어 함께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떻게 서울YWCA 회장이 되었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고등학교 시절 방과 후에 집에 가다가 친구와 함께 지금의 명동 한복판에 있는 서울YWCA 회관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대학 담당 간사님과 더불어 회의를 하고 친교의 시간을 가진 기억이 난다. 특히 그때 유행했던 세계민속춤 경연대회가 지금의 YWCA주차장 마당에서 열렸는데, 필리핀의 전통의상인 날개달린 소매 원피스를 입고 두 개의 대나무 막대기를 서로 부딪쳐 리듬을 만들며 신나게 뱀부 댄스를 췄던 생각이 난다. 그러다 금천구에 산부인과의원을 개원했는데 서울YWCA 독산지부에서 직업훈련의 일환으로 산모도우미, 환자도우미 교육에 산부인과 전문의의 강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함께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독산지부위원회 위원을 거쳐, 서울YWCA 이사로 당선, 여러 부서의 위원장을 지내다 서기, 임원, 부회장 등을 역임한 뒤 2015년 회장으로 선출되어 지금껏 일하고 있다. 서울YWCA는 이제 창립 100주년을 4년 남겨놓고 있다. 그동안 청렴하고 정직하게 운영하고 정의롭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 긴 세월을 유지해 왔다고 본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면 지속적으로 봉사하면서 생활의 활력소를 찾으며 살고 싶다.

금천구에서 의사회장도 지내셨다는데

금천구 의사회 회장이 되면서 회원에게 무엇을 하는 것이 유익할까를 생각했다. 당시는 컴퓨터가 처음 도입되던 시절이라 요즘은 쓰지도 않는 8bit, 16bit 용어가 있는 때였다. 그 때 연세가 좀 드셨던 회원은 “나는 이 나이에 컴퓨터를 알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강의실을 빌려 놓고 강의를 진행하면서 컴퓨터에 능숙한 젊은 회원들이 나이 드신 회원 옆에 도우미로 한사람씩 붙어 앉아 강의를 따라가게 했다. 그러고 얼마 후 “다 조회장 덕분이다”라고 하시며, 의료보험 청구도 컴퓨터로 하고, 인터넷 서핑으로 관심분야를 찾아볼 수도 있다고 기뻐하는데 보람을 느꼈다. 열정적으로 모든 일에 임했더니 ‘제2의 대처 수상’이라는 별명도 붙여 주셨다.

이화여대 총동창회장도 지내셨는데

이화여대에서는 과별로 돌아가면서 회장을 뽑는데 의대는 한 번도 회장을 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창회 회무는 대개 낮에 이루어지는데, 개원을 하거나 봉직을 하거나 교수생활을 하는 분들이 대낮에 나와 회무를 보기 어려워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고 또 하기도 어려웠다. 하루는 선배님이 “묻지 말고 이력서를 보내라”해서 보냈는데, 선배회장님과 현회장님들의 심사를 거쳐 추천위원회, 심사위원회의 엄격한 검증과 심사를 통해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총회에서 인준하는 형식으로 회장이 되었다. 바쁜 일과 중에 어렵사리 2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재임되어 또 2년간 회장으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동창들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의논하다 젊은 동창들과의 소통을 위한 행사로, 자녀를 동반한 ‘이화 동창가족 어린이그림 그리기대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 어린이가 신청하면 그 형제자매,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고모, 고모 자녀 등 10여명 가량의 가족이 이화를 찾는다. 대회를 마치고 시상식이 열릴 때는 2,000명 이상이 들어가는 대강당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넓은 캠퍼스에서 무당벌레를 잡기도 하고 풍선도 불어가며 하루를 즐기고 가는 좋은 행사여서 아직까지도 해마다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어 창시자로서 흐뭇하다. 온가족이 함께 나들이해서 자연과 만나고 그림도 그리며 아름다운 추억을 쌓는 경험. 이 경험이 나중에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예술품을 감상하고, 또 곁에 놓고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미술인으로, 예술의 대중화에 대하여도 의견을 부탁드린다

의대생 시절, 미술학원에 등록하여 그리고 싶었던 그림에 심취한 적도 있고, 이화여자대학교의 대강당과 중강당 사이의 숲에서 캔버스를 걸고 그림을 그렸던 추억도 있다. 인상파 화가들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던 때도 있었고, 사진부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러 시내로, 연꽃이 핀 저수지로 다니며 어떻게 아름다운 틀 속에 대상의 음영을 강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직도 사진에 대한 매력을 잊지 못해 야외에 문화답사를 갈 때면 자연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요즘은 모두다 리포터고 작가인 시대다. 인터넷 속 사진만 봐도 사진예술은 이미 대중화 되어있는 듯 하다. 외국에 나갔을 때도 미술관과 박물관은 여행코스에 꼭 넣어 작품 감상을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관, 런던 미술관, 타이페이 미술관, 우리의 고궁 박물관등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들도 예술의 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길을 지나가도 미술관이 있으면 꼭 들려서 마음을 씻는 것이 좋았다. 의대 후배 9명이 ‘9인 9색전’이라고 해서 사진, 수채화, 크로키, 서예, 도자기, 유화 작품으로 졸업 30주년 기념 전시회를 했는데, 정성이 묻어나는 작품을 바라보며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전문작가가 아니어도 작품을 그리고 만들며 기념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대동창회와 서울YWCA의 회장이면 기부금도 많이 냈을 텐데

대학교 시절, 장학금으로 거의 공부를 마쳤다. 그 때부터 내가 받은 혜택을 사회에 꼭 환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큰 기업처럼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후배를 위한 장학금과 학교발전을 위한 기금 마련에 기여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서울YWCA 회장이면 거마비라도 나오는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100% 본인의 시간, 재정, 재능을 기부하면서 활동한다.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 지는 줘 본 사람만이 안다. 아무 대가 없이 줘도 한없이 기쁘고, 감사를 표하는 메시지만 받아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성경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한다”(마태복음 6장 20절)라고 했다. 이 말씀을 믿으며 기쁨으로 살고 있다.

앞으로의 꿈은

계속해서 사회단체와 의료인을 잇는 다리가 되어 나눔의 가치를 전파하며 살고 싶다. 성폭력, 탈핵, 미혼모 등 사회 이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의료인으로서 도울 수 있는 일을 생의 마지막 날까지 하고 싶다. 앞으로도 내가 가진 작은 능력과 경험이,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지고 생명이 더 존중받는데 귀하게 쓰임받기를 바란다. 돌봄과 살림이 필요한 곳에 작은 밀알이 되기를 기도하며 더욱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이웃을 섬길 것을 다짐한다.

이 시대를 이끄는 리더와의 만남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조종남 회장과의 만남도 역시나 반가운 시간이었다. 자신만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며 이웃과도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는 조회장. 미술에도 많은 일가견을 가지고 작품을 항상 곁에 두고 향유하며,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살찌우는 조종남 회장. 조회장이 꽃피우는 생명의 향기가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대한다. 어제까지 흐렸던 날씨가 오늘은 너무도 청명하다. 조회장과 만남의 향기가 오래도록 지속 돨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기분 좋은 인터뷰였다. 브라보!

조종남 이력

-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산부인과 전문의. 박사

-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동창회 회장(16대)

- 한국여자의사회 의권위원회 위원장

- 서울YWCA 회장

- 조윤희 산부인과 원장

차홍규 이력

홍익대 석사, 동신대 박사, 개인전 40회

북경 칭화대학 미대 정년퇴임

현 한중미술협회장

 

(글_차홍규 교수, 사진_이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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