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사유, 현대적 언어, 현대적 감각’으로 1300년 한국 철학사를 한 흐름으로 써내려간 최초의 한국 철학사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원효 이래 1300년에 걸친 한국 지성사를 일관된 관점과 현대적 언어로 풀어낸 이 책은 신라부터 현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사유를 서술한, 명실상부한 의미에서 최초의 한국 철학사이다. 저자 전호근은 고전에 대한 정밀한 해석과 독창적 사유, 20년간의 고전 강좌 경험으로 다져진 탁월한 소통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동양 철학자이다. 문헌 장악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는 한국 철학사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유학은 물론 불교, 도교 사상, 동학, 마르크스주의 철학, 기독교 사상에 이르는 폭넓은 사유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철학의 외연을 넓힌다.

이 책에서 호명하는 철학자들의 스펙트럼은 실로 다양하고 독창적이다. 저자는 한국 철학사 서술에서 빠뜨릴 수 없는 주요 철학자들, 이를테면 한국 철학사의 첫새벽을 연 원효나 한국 선문(禪門)의 개조(開祖) 지눌(知訥, 1158~1210), 한국 철학의 대표 주자인 이황(李滉, 1501~1570), 실학의 집대성자인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말할 것도 없고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박지원(朴趾源, 1737~1805) 등 주로 고전문학 분야에서 다루었던 인물들의 사유를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또 한국 철학사에서 금기시된 일제 강점기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신남철, 박치우를 복권시키고, 종교 사상가로 거론되었던 유영모, 함석헌을 철학자로 연구했으며, 처음으로 장일순을 철학자로 조명했다. 한국 철학의 전체상을 밝히는 동시에 각 철학자들의 사유가 현대 한국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힌 이 책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폭넓은 사유, 시대를 꿰뚫는 관통력으로 한국적 사유가 움트고, 꽃피고, 열매맺은 과정을 탁월하게 설명해낸 한국 철학사의 결정판이다.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기존 철학사의 빈틈을 메워 한국 철학사의 전체상을 그려내다

여태까지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로 대체로 승려들이 거론되어 왔다. 저자는 삼국 시대에는 유불도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었다고 보고, 도교 전통과 유학자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기술하여 중세 한국 철학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일례로 저자는 3장 「삼국 시대의 도교 전통」에서 막고해와 을지문덕에 관한 자료, 「성덕대왕신종 명문」을 통해 삼국 시대에 『노자』가 처세나 군사 전략과 밀접하게 연결되었음을 설명한다. 노자 사상 하면, 무위나 자연을 이야기하면서 현실과 거리를 두는 은둔의 철학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이 자료를 통해 노자 사상이 다르게 이해되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고려 말에 등장한 성리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명한 것도 철학사 서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고려 말에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 백이정, 우탁 등은 주자학과 관련한 저술이 전하지 않아 그 사유의 일단을 엿보기 힘들다. 이런 어려움이 있지만 저자는 본디 이론보다 실천을 더 중시하는 성리학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열전, 문집 등의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이들의 성리학자적 면모를 밝혀낸다. 이러한 관점은 이렇다 할 철학 관련 저술이 남아 있지 않지만 절의(絕義)의 표상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비조로 손꼽히는 정몽주(鄭夢周, 1337~1392)에 대한 설명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된다.
그 밖에도 저자는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정치 권력,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배제된 일제 강점기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신남철과 박치우를 되살려냈으며, 한국 현대 철학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나 군사 정권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한 박종홍 같은 철학자도 철학 그 자체로 접근하여 객관적으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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