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잘못도 없는데, 몇 년이나 감옥에 있었다는 말인가요?”

[시사매거진=최유경 기자] 현재 일본 최고 ‘형사드라마의 여왕’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각본가 오타 아이의 소설이 국내 독자들을 처음 찾는다. 《잊혀진 소년》은 23년이란 세월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아동 실종 사건과 유괴 사건 현장에 동일하게 남겨진 표시, ‘슬래시, 슬래시, 이퀄, 버티컬 바(/ / = |)’를 둘러싼 수수께끼 풀이에 도전하는 경찰과 탐정의 콤비, 그리고 그들의 매력적인 사이드킥(조수)의 활약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사건이 전개될수록 늘어만 가는 의문들, 결말을 짐작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는 형사재판 대원칙의 모순과 오남용 되는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 등 오타 아이는 일본 최고 형사드라마의 작가답게 시종일관 범죄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뛰어난 필치가 일본 문학 번역의 대가 김난주 번역가의 손길을 거쳐 국내 독자들에게 무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23년의 공백을 두고, 두 아이가 사라진 장소에 남겨진 정체불명의 표시, // = |

‘슬래시, 슬래시, 이퀄, 버티컬 바’

“우리 아빠는 살인자야.” 하루하루가 찬란했던 13살 여름의 어느 날, 순직한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처음 사귄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들은 소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형사가 된 지금까지도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동갑내기 친구였던 나오가 그로부터 며칠 뒤 강가에 버려진 나뭇가지에 알 수 없는 표시를 남긴 채 갑자기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23년 후, 형사 소마는 여아 실종 사건 현장에서 어릴 적 친구 나오의 실종 현장에 남겨졌던 똑같은 표시를 발견하고, 두 사건의 해결을 위해 정체불명 표시의 비밀을 쫓기 시작한다.

한편, 작은 흥신소를 운영하는 야리미즈 역시 23년 전 사라진 아들 나오를 찾아달라는 어머니 가나에의 의뢰를 받게 된다. 야리미즈는 아르바이트 직원 슈지와 함께 조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기분에 휩싸인다. 더구나 의뢰인 가나에까지 사건 의뢰 직후에 실종돼 버린다. 같은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마와 야리미즈, 그리고 슈지는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물음표투성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힘을 합치기로 한다. 세 사람의 끈질긴 추적으로 인해 23년 전 벌어진 끔찍한 사건의 면모가 서서히 드러나는데 …….

“나도 전에는 법조계에 몸담았던 사람이라, 형사재판의 대원칙 정도는 알고 있네.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 그러나 자네는 정말 세상이 그런 사회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지키기 위해 열 명의 진범을 놓쳐도 상관없는 그런 사회 말일세. 그렇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회를, 세상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지 말이야.” ― 본문 중에서

매일이 한없이 즐거워도 모자랄 13살 소년에게, 23년 전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올바르게 조사하고, 올바르게 처벌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연 균형을 이루고 있을까? 잔혹한 현실에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한 소년의 비밀은 충격적인 반전과 함께 독자들의 마음을 압도한다.

실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변과 부조리, 지금 쓰지 않으면 늦는다!

작가로서의 사명감으로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다

일본 최고의 형사드라마 시리즈의 각본가로 아쉬울 것 없는 대성공을 거둔 오타 아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대체 무엇이 그녀에게 소설을 쓰게 만들었을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취재하고, 고발하기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음은 분명하다.

“요즘 들어 세상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듯합니다. 언론, 미디어계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특히 더 심해졌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는데, 그런 장면이 드물게 되었죠. 확실히 사회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사회의 중요한 정보들이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는 것인지 심히 걱정됩니다. 이런 정보들이 조작되었다면 잘못된 지도를 갖고 산을 오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잘못 든 길 끝에서 절벽을 마주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작가 인터뷰 중에서

작가로서의 사명감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 철저한 자료 조사와 취재를 통해 글을 쓰고 치밀하게 등장인물을 만들어 가는 그녀의 작품은 벌써 일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큰 인기와 함께 출판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소재, 작가가 만들어 둔 여러 복선과 치밀한 장치, 그리고 잔인한 진실의 배후에 숨은 범인의 존재는 지극히 사실적이어서 마지막 장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끝까지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작가 필치는 ‘자신이 고쳐 쓴 지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지도 위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경찰, 검찰, 판사가 결탁한 기소편의주의의 허와 실, 정의의 무기인가, 악마의 거래인가

‘원죄(冤罪)’의 민낯을 드러내다!

현대 사회는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위해 열 명의 범인을 포기할 수 있는가? 저자 오타 아이는 13살 소년의 입을 빌려 한 가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현대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은 작품 내 ‘원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억울함을 대변한다. 무고한 개인이 수사를 진행한 경찰에 의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행의 자백을 강요받는다. 강요로 인한 자백은 날조되거나 은폐되어 재판장에서 유죄 판결의 결정적 증거가 된다. 범인 체포라는 다수의 심리적 안도를 위해 한 개인이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 원죄는 경찰의 강압 수사, 검찰의 무성의한 기소, 사무적인 재판과 판결, 이 모든 과정에서 톱니바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연하게 맞물려 돌아가듯 한 명의 무고한 희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원죄(冤罪)’, 이 말은 죄를 짓지 않은 무고한 사람이 경찰과 검찰, 그리고 재판부의 유기적인 범죄 조작으로 죄를 뒤집어쓴 경우를 뜻하며, 이 소설 《잊혀진 소년》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를 위협하는 원죄 사건은 무릇 소설 속 픽션이 아니다.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 ‘삼례 나라 슈퍼마켓 강도 사건’로 대표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한편으로 조용히 넘어간 원죄 사건의 수가 그보다 더 많음을 시사한다. 범인 체포라는 다수의 심리적 안도를 위해 경찰의 강압 수사, 검찰의 무성의한 기소, 사무적인 재판과 판결, 이 모든 과정에서 톱니바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연하게 맞물려 돌아가듯 한 명의 무고한 희생을 만들어 낸다. 거대한 국가 권력이 여러 차례의 검증 기회를 무시하고 조직적으로 누명을 씌우기 때문에, 원죄 피해자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법 시스템의 덫에 걸린 채 절망에 서서히 무너져 간다.

이 작품은 원죄로 인한 누명을 쓰고 나서 평범했던 일가족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는지, 그 비극적 파탄을 통해 현대 사법 체계의 오류를 밝히고 있으며, 이상과 현실, 선과 악, 사회와 개인, 현대 사법체계의 실제적 문제 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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