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탄산의 대명사 코카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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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탄산의 대명사 코카콜라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8.04.0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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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200여 개국 진출, 코카콜라의 하루 소비량 18억 병
코카콜라의 탄생은 존 펨버튼 박사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그는 감기 두통약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하던 과정에서 우연히 코카의 잎과 콜라의 열매, 카페인 등 여러 가지 혼합물에 탄산수를 넣으면 맛이 독특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진_뉴시스)

(시사매거진240호=신혜영 기자) 세계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고 있는 탄산음료 하면 단연 코카콜라가 떠오른다. 감기 두통약을 만들다 우연히 발견된 탄산음료가 132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달달하면서 톡 쏘는 짜릿함으로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콜라인 코카콜라는 음료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오랜 역사와 대중성을 함께 지켜나가고 있다.

 

우리 생활 속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인류의 역사와 함께 나아가고 있는 것 대부분이 우연에서 찾아온다. 코카콜라 역시 그렇다. 1886년 미국 조지아(Georgia)주 애틀랜타(Atlanta)에 살던 존 펨버튼 박사(Dr. John Pemberton, 1831~1888)는 감기 두통약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다. 그런 과정에서 우연히 코카의 잎과 콜라의 열매, 카페인 등 여러 가지 혼합물에 탄산수를 넣으면 맛이 독특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야콥 약국(Jacob’s Pharmacy)에 이 음료를 납품해 판매한 것이 코카콜라의 시초다. 프랭크 로빈슨(Frank Robinson)이 두 개의 ‘C’자를 매치한 ‘코카-콜라(Coca-Cola)’라고 이름을 붙였고 이 이름으로 광고를 하며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당시 판매 금액은 한 잔당 5센트로 코카-콜라는 하루 평균 9잔이 판매되었고 첫 해 총 수입은 50달러에 불과했다.

그러자 펨버튼은 여러 파트너들에게 사업지분을 쪼개 팔았다. 그 중 한 사람이 에이서 캔들러(Asa G. Candle, 1851-1929r)가 1892년에 2,300달러(당시, 약 122만 원)에 코카-콜라 사업의 소유권을 확보하면서부터 코카콜라의 대중화 역사는 시작된다.

에이서 캔들러는 존 펨버튼의 전 동업자였던 프랭크 로빈슨(Frank Robinson)과 함께 1892년에 ‘코카-콜라 컴퍼니(The Coca-Cola Company, TCCC)’를 설립했다. 회사 설립 후 사람들이 시음을 할 수 있도록 무료 쿠폰을 발행하고 코카콜라를 판매하는 약국에는 코카콜라 상표가 들어가 있는 시계 달력을 주는 적극적인 마케팅도 전개했다. 그 다음해인 1893년 코카콜라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1894년 미시시피(Mississippi)주의 사업자인 조셉 비덴한(Joseph Biedenharn)는 미시시피 내에서 코카콜라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을 보고, 코카콜라 컴퍼니로부터 코카콜라 원액을 대량 사들여 미시시피 주 내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하겠다고 제안했다. 캔들러는 이를 받아들였고 정례화해 ‘보틀링 시스템(Bottling System)을 고안했다. 보틀링 시스템이란 지역별로 보틀러(Bottler, 병 제조업자)와의 계약을 통해 보틀러에게 그 지역 내에 코카콜라 독점 판매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들은 코카-콜라 컴퍼니로부터 대량의 원액을 납품 받아 자신들이 제조한 병에 원액을 넣어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매출은 급증하고 코카콜라 브랜드가 미국 남부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1920년대까지 코카콜라는 중국을 비롯해 홍콩, 필리핀, 중앙아메리카 및 유럽 시장에까지 진출하며 세계시장을 개척해나갔다. 사진은 콜라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기념해 경기가 펼쳐질 강릉과 평창에서 각각 ‘코카-콜라 자이언트 자판기’와 ‘코-크 큐브 갤러리’. (출처_뉴시스)

보틀링 시스템을 고안하며 성공적인 기업의 역사를 써내려가던 때 캔들러는 1919년 2,500만 달러를 받고 애틀랜타 사업가인 어니스트 우드러프(Robert Woodruff)에게 회사를 매각했다. 에이서 캔들러가 미국에서 코카콜라를 알리는데 주력했다면, 어니스트의 아들인 로버트 우드러프는 코카콜라의 사장으로 매우 오랫동안 재임하면서 코카콜라를 전 세계로 전파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로버트 우드러프는 기존의 보틀링 시스템을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코카콜라 컴퍼니는 보틀러 파트너십이라는 사업 모델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는 아사 캔들러가 고안한 보틀링 시스템을 프랜차이즈 계약 기반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보틀러들은 자신의 권역 내에서 코카-콜라 제품에 대해 독점권을 가지고 판매망을 구축한다.

1920년대까지 코카콜라는 중국을 비롯해 홍콩, 필리핀, 중앙아메리카 및 유럽 시장에까지 진출하며 세계시장을 개척해나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193~1945년) 당시 로버트 우드러프는 ‘회사가 부담이 되더라도 코카-콜라는 5센트에 마실 수 있어야 한다’라는 정책에 따라 미군이 배치되는 모든 전장에 1병 당 단돈 5센트에 코카콜라를 공급했다. 이러한 그의 정책에 2차 세계대전 동안 해외에 파병된 미군들은 값싼 코카콜라를 즐겨 마셨고 이것이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지면서 코카콜라가 미국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0여 개의 보틀러들이 약 2,000만 개의 유통 거래처에 코카콜라를 납품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20세기 미국의 아이콘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코카콜라가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큰 인기를 끌자 모방 제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에 차별화 전략을 내세운 코카콜라는 우선 콜라병 디자인부터 바꿨다. 1915년 코카콜라 컴퍼니는 1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공모를 실시, 인디애나 주의 한 유리병 공장의 디자이너로 일하던 알렉산더 새뮤얼슨(Alexander Samuelson)과 얼 딘(Earl Dean)의 독특한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수십 번의 디자인을 한 끝에 현재의 컨투어병을 고안한 것. 이들은 코카-콜라 나무의 열매를 연상하면서 병을 디자인했는데, 코카-콜라 열매에 대한 그림이 없어서 생김새가 비슷한 카카오나무 열매를 보고 디자인했다고 한다. 1919년부터 코카-콜라 컴퍼니는 생산되는 모든 코카-콜라를 단일한 병으로 통일해서 유통 시켰다. 이후에도 컨투어병 모양은 지속적으로 조금씩 변했는데 1955년 레이몬드 로위(Raymond Loewy, 미국의 산업 디자이너)는 병 허리가 잘록 들어가게 하여 병 디자인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레이몬드 로위가 코카-콜라에 세로선을 적용한 디자인을 선보였고 이는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 때 리뉴얼된 컨투어 병은 1950년에 타임(TIME)지의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엑스포 밀라노 식품 기술 콘퍼런스에서 페트병이 아닌 사탕수수로 만든 100% 식물성 소재 콜라병 ‘식물병(PlantBottle)’을 공개했다. 콜카콜라는 2009년 신재생 원료 용기를 만들기 위해 ‘식물병’을 처음 선보였다. 당시 식물병은 30% 식물성 소재였으나 이번엔 처음으로 100% 식물성 소재 식물병이 나왔다. 코카콜라는 2020년까지 모든 페트병을 식물병으로 교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0여 개의 보틀러들이 약 2,000만 개의 유통 거래처에 코카콜라를 납품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20세기 미국의 아이콘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출처_뉴시스)

1960년대 들어서 코카콜라 컴퍼니는 인수합병을 꾸준히 진행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청량음료 브랜드인 환타(Fanta)를 인수했고, 당시 미국의 청량음료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세븐업(7-UP)의 경쟁 브랜드로 1961년에 스프라이트(Sprite)를 출시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코카콜라가 주춤한 사이 펩시는 대단한 도약을 하여 1975년 코카콜라의 점유율은 24.2%, 펩시의 점유율은 17.4%로 격차가 6.8%로 줄어들었다. 위기에 빠진 코카콜라는 1981년 회장에 오른 고이수에타의 지휘 아래 1982년 다이어트 코크를 출시하여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사실 코카콜라는 1886년 개발된 이래 약 99년 동안 동일한 맛으로 계속 출시되어 왔다. 소비자들의 까다로워진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품을 늘려나간다. 1980년대부터 코카-콜라 컴퍼니는 더욱 치열해져 가는 시장 경쟁 속에서 1982년 새로운 브랜드인 코카콜라 라이트(Coca-Cola Light)와 1985년 체리 맛이 첨가된 ‘코카-콜라 체리맛’을 출시했다. 이후 1988년에는 스포츠 음료 브랜드인 파워에이드(POWERade)를 출시했다. 1990년대에 들어 코카콜라 컴퍼니는 어린이 과일음료인 쿠우(Qoo, 1999) 등 새로운 브랜드를 추가로 출시했다.

1985년 코카콜라는 소비자의 변화된 입맛을 고려하여 창립 99년 만에 오리지널 제조법에서 당도 함량을 줄인 ‘뉴 코크(New Coke)’를 출시했으나 소비자들로부터 심한 반감을 사게 됐고, 결국 2002년에 생산이 중단됐다.

2000년대에 들면서 건강 음료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하자 코카-콜라는 2004년부터 코카콜라 제로(Coca-Cola Zero)를 출시하고 성공적 정착을 위한 마케팅에 집중했다. 2005년에는 보스니아, 이태리, 멕시코 등에서 코카-콜라 M5(Coca-Cola M5)를 출시했고 2006년에는 코카콜라 블랙체리 맛이 출시되었다. 2007년에는 코카-콜라 오렌지(Coca-Cola Orange)가 영국에서 출시되었고 코카-콜라는 비탄산음료 부문의 매출 비중을 늘리기 위해 글라소 비타민워터(Glaceau Vitaminwater)를 인수했다.

오늘날 코카콜라 컴퍼니는 전 세계 200여 개국 이상에 진출했고 500여 개 브랜드에서 3,500여 종의 음료를 판매하고 있는 종합음료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마시고 있는 코카콜라의 하루 소비량은 18억 병에 이르고 있다.

한편 1886년 존 펨버튼이 코카콜라를 개발한 이후 13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그 제조법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코카콜라 제조에 관한 문서는 단 1부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애틀랜타에 위치한 코카콜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정확한 코카콜라의 제조법은 몇몇 소수의 이사진만이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코카콜라는 제조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존 펨버튼이 만들었던 코카-콜라 원액의 재료를 암호명으로 부르고 있다.

올해로 개발 130여 년이 되는 코카콜라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사랑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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