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지 않았는데 화났냐고 물어봐서 진짜 화났어요!”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화는 보복운전, 데이트폭력, 혐오범죄, 악성댓글 같은 사회문제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인생을 망가뜨린다. 폭발하는 것만이 화가 아니다. 짜증, 고집, 침묵, 스트레스, 조급함, 찌푸린 얼굴 등 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며 결국 상처를 남긴다. 그 대상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나 자신일 때도 적지 않다.

『나는 오늘부터 화를 끊기로 했다』는 25년간 진행되어온 화 다스리기 워크숍(Letting Go of Anger)의 핵심을 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과거의 특수한 경험이나 장기간 습관화된 패턴에 따라 잘못 해석할 때가 많다. 또한 ‘충족되지 않은 요구’와 마음속 ‘아픈 곳’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폭발하게 만든다.

화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저자는 ‘사실을 잘못 이해하지는 않았는지’, ‘나를 매번 욱하게 만드는 아픈 곳은 무엇인지’, ‘나의 요구는 중요하고 합리적인지’, ‘내가 바라는 것을 정확히 전달했는지’를 돌아보라고 권한다. 화는 나의 선택일 뿐, 누구도 나를 화나게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소소한 짜증부터 마음 깊이 박힌 분노까지 화를 이해하고 다스리는 법을 알려준다.

나는 왜 사소한 일에도 자꾸 폭발할까?

『나는 오늘부터 화를 끊기로 했다』는 화내는 이유를 비롯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개인 또는 모임에서 화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생각 거리를 던져준다.

주차자리를 찾아 마트 주차장을 빙빙 도는데 마침 앞차가 빠져나간다. 기다렸다 들어가려는데 반대쪽에서 나타난 차가 얌체같이 먼저 주차해버린다. 속에서 열불이 난다. 한바탕 욕을 해대면 기분이 좀 풀릴까? 그렇다면 같은 상황에서 차 대신 소가 내가 들어가려고 한 주차자리에 철퍼덕 먼저 주저앉았다고 해보자. 그러곤 ‘음메~’ 하고 운다. 이번에도 화가 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의 행동에는 웃어넘기지만 사람의 행동에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화를 낸다. 나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에게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내가 짐작하는 그의 의도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화의 진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습관화된 행동 패턴이 사고 대신 감정을 촉발시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화를 부르는 상황이 되면 즉각 감정과 행동이 앞서고 나중에 후회한다. 화가 나면 잠깐 멈추고 ‘왜 화가 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화는 습관이 되고 중독이 된다.

‘아픈 곳’과 ‘충족되지 않는 요구’가 화를 부른다

『나는 오늘부터 화를 끊기로 했다』는 화가 ‘충족되지 않는 요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 요구는 ‘배우자에게 사랑받고 싶다’와 같이 중요하고도 합리적인 것도 있지만 ‘초보운전자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다’와 같이 비합리적이고 심지어 불가능한 요구도 있다. 그러므로 화가 나면 우선 나의 어떤 요구 때문인지, 그리고 그 요구가 정당한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만일 그 요구가 정당하다면 어렵더라도 표현해야 한다. 저자가 화 다스리기 워크숍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 예상과 달리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요구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말 안 해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해버리면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와 같은 대답만 듣게 된다.

충족되지 않은 요구는 ‘아픈 곳’이 되어 찔리게 되면 자동적으로 폭발하게 만든다. 작은 비판에도 발끈하는 경우다. 사람들이 아파하는 범위는 명예, 독립성, 인정, 질투, 자존심, 존경 등 다양하며 과거 무력하고 불안했던 상황 속에서 생겨났다. 아픈 곳은 화로, 나아가 증오와 혐오로 발전한다. 그러므로 현재에는 유효하지 않은 아픈 곳을 치유하여 없애야 한다. 아픈 곳이 없으면 찔릴 곳도 없다.

화는 나의 선택일 뿐 누구도 나를 화나게 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부터 화를 끊기로 했다』는 화는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며, 우리는 궁극적으로 화를 연민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첫 단계는 독심술 대신 ‘의도’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다고 믿지만 일반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두 번째 단계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처럼 복과 화는 동전의 양면이며 아무도 그것이 무엇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화에 굴복한 상대방에게 연민을 갖는 것이다.

화에서 연민으로 나아가는 과정에는 관용과 용서가 있다. 위층의 소음 때문에 따지러 올라갔는데 알고 보니 몸이 불편한 할머니의 보행 보조도구 때문이었다거나 대학교의 학과회의 때마다 곯아떨어지는 교수에게 모욕을 주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기면증 때문이었다는 등 저자가 전하는 직간접적 경험은 왜 우리가 일상에서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하는지는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프로 분노러’ 변호사가 화 다스리기 워크숍을 열기까지

『나는 오늘부터 화를 끊기로 했다』는 불교적 세계관, 특히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불교 스승들의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 저자 레너드 셰프는 원래 베테랑 변호사였다. 그는 1960년부터 변호사 일을 했으며, 화가 직업상 필수이며, 심지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1993년 우연한 기회에 ‘화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받고 인생이 바뀌었다. 의심 속에서 가까스로 4일간의 가르침을 받고 집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그리고 들이받지는 못해도 욕설쯤을 퍼부어주려던 찰라 배운 것에 대해 생각했다. ‘왜 화가 나는 거지?’ 그 순간 깨달음을 얻는 그는 불교를 비롯해 뇌과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설명하는 화를 공부하고 결국 화 다스리기 워크숍(Letting Go of Anger)까지 열어 25년째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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