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부정에 이어 위안부 정당화 발언까지 거침없어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정치권의 우경화 흐름이 거센 물결을 타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비난의 목소리도 드세지고 있다. 최근 아사히신문이 3,600 가구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조사대상자의 75%가 극우 정치인의 발언을 두고 ‘문제가 있다’고 답했음에도 일본 극우 정당과 정치인들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여전히 망언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막말 대열에 나서고 있다. 극우 정당인 일본 유신회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공동대표가 그 선봉에 섰다. 현 오사카 시장이기도 한 그는 5월 초 오키나와의 미군 후텐마 기지를 방문해 “위안부 제도는 아니더라도 풍속업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미군 병사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풍속(성매매)업소를 이용해 달라”고 말했다.

오키나와 현지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기지-군대를 허락하지 않는 행동하는 여성들의 모임’의 공동대표인 스요스 씨는 “풍속 업소에서 성욕을 해소한다는 발상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라며 규탄했다.

하지만 하시모토 대표의 한번 열린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그는 13일 “전시 상황에서 위안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왜 일본의 종군 위안부 제도만 문제가 되느냐”고 주장했다. 이어 19일엔 “위안부를 성노예라고 부르는 것은 틀렸다”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내뱉었다. 이러자 ‘막말제조기’인 이시하라 신타로 유신회 공동대표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 “침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학일 뿐이다. 역사에 관해 무지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망언 이면엔 아베 총리 그릇된 과거사 인식과 맞닿아 있어

일본 우익들이 망언을 쏟아내는 데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크게 한 몫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참의원 예산의원회에서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며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담화(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 사과)에 배치되는 이 발언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합리화로 이어졌다. 미국 언론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일본의 지도자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기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발언으로 주변국들로부터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아베 총리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이) 과거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것에 역대 내각과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며 무라야마 담화 사과 부분을 언급하면서도 ‘일본의 침략’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자 배턴터치라도 하듯 ‘무라야마 담화에서 침략이란 표현을 빼야 한다’, ‘아예 침략이 아니었다’는 극우 정당인들의 발언이 뒤를 이었다. 아베 총리가 촉발만 시키고 한발 물러서면 우익 정치인들이 더 기괴한 망언을 이어가는 역할분담인 셈이다.


 

국제사회 일본 망언 맹비난 “日 정부 공식 사과하라”

국제사회는 일본의 이 같은 망언폭주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지난 21일 일본 정부에 “헤이트스피치(특정인종·성·종교 등에 대한 증오 섞인 발언)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표현을 막으라”고 권고했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AT)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CAT는 21, 22일 진행된 일본 국가보고서 심의에서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대표의 망언에 대해 “위안부 문제는 고문행위에 해당한다”며 “일본 정부는 위안부 희생자의 권리를 구제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본은 “지난 1999년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했고 위안부 문제는 70년 전에 발생한 것이므로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의의 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우방인 미국도 일제히 비난 사격에 나섰다. 미국 국무부의 젠 사키 대변인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망언은) 언어도단이며 불쾌한 말”이라며 “성을 목적으로 인신매매된 여성들에게 일어난 일은 매우 슬프고 엄청나게 중대한 인권 침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꼬집었다. 미국 정부 당국자가 하시모토 대표의 발언을 공식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미국 국방부의 조지 리틀 대변인이 ‘주일미군이 풍속업(매춘)을 좀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에 대해 “말할 가치도 없다”고 논평한 것이 전부였다. 사키 대변인은 “일본이 과거와 관련이 있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국과 함께 계속 대처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길 기대한다”며 “일본이 역사인식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 연방하원의 마이크 혼다 의원도 지난 15일 성명을 통해 “(위안부 망언에 대해) 경멸스럽고 협오스럽다”며 “하시모토 시장의 발언은 왜 일본정부가 과거사를 명백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공식 인정하고 사과할 필요가 있는지 뒷받침한다”고 꼬집었다.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도 “하시모토 시장의 발언에 구토감을 느낀다”며 “육체적·정신적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공직자가 그런 형편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난했다. 두 의원은 일본이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말까지 아시아와 태평양 열도를 점령하면서 한국과 중국, 태국, 필리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출신의 여성들, 심지어는 13세의 여야를 상대로 20만 명의 젊은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성노예로 삼은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중국 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21일 “인류양식을 버리고 사람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윤리 선을 넘었다”며 “피해자들에게 또 다시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세계 여성을 공개적으로 모욕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어 중국 외무부는 “인류와 역사적 정의에 반발하는 뻔뻔스러운 발언에 놀랐다”며 “(일본이) 과거를 어떻게 다루냐가 곧 그들이 걸어갈 미래”라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 “하시모토 이해할 수 없어”, 유신회 정당지지율 내리막

일본 내에서도 지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수 성향인 산케이신문마저 하시모토 대표의 현 상황에 대해 “미디어의 발신력을 무기로 성장해온 정치가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발언으로 번지는 반발에 붕괴하고 있다”며 그의 정치 생명이 ‘위안부발언’으로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산케이신문은 유엔 고문 금지위원회가 일본 정부에 그의 발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일을 거론하면서 ‘해외의 역풍’이 공무에까지 지장을 미치는 상황을 경고하기도 했다.

일본 전 총리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도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1995년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변명 같은 것을 반복해도 문제만 키울 뿐”이라며 “사과하려면 사과하고 정정하려면 정정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하시모토의 발언에 대해서도 “종군 위안부가 국제 문제화하고 있는 가운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여기에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마쓰모토 마사요시(91) 씨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 행위를 증언하며 잇따른 일본 우익들의 망언을 일축했다. 그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여성은 탈출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면서 위안부 여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증언한 뒤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또한 “단지 다른 사람이 도둑이라고 해서 자신이 도둑이 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냐”고 반문하면서 “군대 위안부 제도가 잘못이라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사히신문이 18, 19일 실시한 전국 전화여론조사 결과 하시모토의 발언으로 일본유신회에 대한 인상이 ‘나빠졌다’는 대답이 50%로 ‘변함없다’는 응답(44%)보다 많았다.

교도통신이 20일 발표한 주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70.9%로 지난달의 72.1%보다 하락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70%를 넘은 것은 작년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해 집권한 이후 네 번째지만 이번에는 간신히 70%선을 턱걸이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당지지율에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코앞에 닥친 7월 참의원 선거와 관련해서는 아베의 자민당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44.4%로 4월에 비해 1.9% 포인트 하락했다. 일본유신회는 4월 8.5%였던 지지율이 5.7%로 2.8% 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따라 정당지지도도 2위에서 3위로 밀려났다.

유신회 내부는 참의원 선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려 뒤숭숭한 분위기다. 거기에 유신회 비례대표 후보가 “하시모토와 같은 당에서 일할 수 없다”며 출마포기를 선언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하시모토를 두둔해온 이시하라 공동대표마저 최근 당 간부 회의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논문에 정리하라”며 하시모토 대표에 트위터 사용 중단을 촉구, 자제를 요청했다.


 

끝나지 않은 망언, 자극적 수준 넘어 파괴적으로 치달아

일본 내의 반발까지 거세고 당내에서조차 역풍이 이는데도 일본의 망언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시모토 대표는 유신회 행사에서 “일본이 전쟁터의 성 문제로 여성을 이용했던 건 틀림없다”고 운을 뗀 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전에서 한국군 등 모두가 여성을 이용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아베 내각의 여성 각료인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행정개혁담당상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위안부제도라는 것 자체가 슬픈 것이지만 전시 중엔 합법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발언은 ‘당시에는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시장의 망언과 맥락이 상통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외교부는 당국자 논평에서 “‘전시성 폭력이 합법’이라는 해당 발언은 여성 존엄과 인권을 중대히 모독하고 반인도적 범죄를 옹호코자 하는 상식 이하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외교부는 또 “일본의 지도급 인사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과거 잘못을 반성하고 시대착오적인 언행을 하지 말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전시 성폭력’으로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이라는 데 대한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24일 오사카 시청에서 예정됐던 하시모토 대표와의 면담을 취소한 것에 대해 나카야마 나리아키 일본 유신회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하시모토 대표에게 강제연행 내용을 날카롭게 추궁 당할까봐 두려웠냐며 “가면이 벗겨질 뻔했는데 유감”이라고 올렸다.


 

여야 “日 아베 정권 망언, 금도를 넘어섰다” 한 목소리 규탄

여야는 그칠 줄 모르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해 “망언이 금도를 넘어섰다”며 한 목소리로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여야는 또 망언을 쏟아낸 일본 정치인들에 대한 ‘처벌’과 일본 미래세대에 대한 올바른 역사교육을 촉구하는 한편,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다.

새누리당 여성 국회의원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인기를 위해 경멸과 혐오의 대상으로 추락시키는 작태가 너무나 안쓰럽다”며 “아베 총리의 전쟁범죄 부인 발언과 731부대 만행을 떠올리게 하는 전투기 탑승은 무엇을 노린 음모이며, 위안부 피해자 모욕발언을 일삼는 하시모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인 오사카에서 무엇을 노리는 것인가”라고 비난했다.

국회 외교통일위, 교육문화위, 여성가족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연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작금의 사태는 우경화 되어 가는 일본 정부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며, 잘못된 역사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엔은 물론이고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용서할 수 없는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일본의 법정 배상 책임을 촉구해왔음에도 일본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극우화의 흐름 속에서 반성 없는 역사왜곡으로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일본의 야스쿠니 참배로 인해 방일을 취소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7일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일본 망언 등과 관련해 “역사 퇴행적 언동”이라며 “일본의 망언이 계속될 경우, 한일간 정상급 교류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 장관은 또 “그 같은 발언을 유엔총회나 미국 의회에서 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본인을 위해서나 일본을 위해서 더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김희정·김현숙·류지영 의원과 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지난 24일 유승희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일본 정치인들의 일본군 위안부 망언에 대한 규탄 및 공식사과 촉구 결의안’을 일본 의원과 시민단체에 전달하기 위해 27일 일본을 방문했다. 결의안에는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와 피해배상을 촉구하는 내용과 함께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대표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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