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시선’으로 읽는 안데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여기 오랫동안 남아메리카를 동경해온 한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 김찬삼의 《세계여행》을 접하고 바깥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던 그는 마침내 두 달 동안 남미 여행을 떠날 기회를 얻는다. 대륙 하나를 단 두 달 만에 돌아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남미의 핵심 중 하나인 안데스산맥에 자리한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페루의 나스카 라인, 쿠스코와 마추픽추, 무지개산, 볼리비아의 티티카카호와 우유니 소금사막, 칠레의 이스터섬과 파타고니아 트레킹, 세상의 끝 도시 우수아이아와 아르헨티나의 이구아수 폭포처럼 그의 여정은 안데스를 여행한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가봐야 할 곳들로 촘촘하게 채워져 있다. 그런데 출발에 임박해 급히 콜롬비아의 보고타를 일정에 추가한다. 갑자기 보고타를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이 다른 여타의 남미 여행기와 달라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행 시작 즈음 콜롬비아에서는 반군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묻는 국민투표가 낙관적인 전망과 달리 불과 5만 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저자는 콜롬비아 사람들이 어떻게 ‘평화’를 거부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과연 그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보고타로 날아간다. 이처럼 지구 반대쪽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대사에 관심 많은 이는 바로 변호사 조용환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제안하고 관련법의 기틀을 만든 법률가로, 그의 관심은 민간인 학살과 고문, 간첩 조작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에게 향해 있다.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처벌받아야 하는 자, 곧 ‘호모 사케르’(homo sacer)와 같은 처지에 있던 이들을 인간의 법이 적용되는 영역으로 불러내는 역할을 천직처럼 해오고 있다.

역사의 희생자들과 사회적 약자에게 보내는 그의 따뜻한 시선과 연민은 한국과 비슷한 역사의 짐을 지고 있는 남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국제인권규범을 우리나라 법 이론과 실무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온 그답게 안데스의 숭고한 자연에 깃들인 다섯 나라의 굴곡 많은 역사를 ‘법률가의 시선’과 ‘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콜롬비아의 평화협상을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관련법 제정 과정을 중심으로 상세히 서술한 글을 비롯해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인 ‘진실을 알 권리’, 이에 기초한 보편적 법 원칙에 관한 나머지 네 나라의 법 이야기는 평소 그의 관심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보고타의 ‘기억・평화・화해 센터’, 페루 리마의 ‘기억・관용 및 사회적 포용의 장소’, 칠레 산티아고의 ‘기억과 인권 박물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과 인권을 위한 공간’같이 현대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저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인권과 기억을 위한 각 나라의 노력에 관심을 쏟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안데스를 걷다》는 남미에 대한 저자의 오랜 열정과 지적 탐구의 결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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