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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8.01.0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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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는 2000년에 초판 발행된 도서출판리수의 첫 책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다루는 시리즈 ‘타산지석’의 제1권이기도 하다. 이번에 리수의 또 다른 브랜드인 책읽는고양이에서 ‘스몰에디션’이라는 별칭을 붙여 출간함으로써 17년 동안 23쇄를 찍은, 스테디셀러이다.

이 책이 이처럼 오랜 기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콘텐츠의 힘에 있다. 출간된 해에 문화관광부 추천도서(현, 세종도서)로 선정되었으며,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에서 ‘영국과 가장 어울리는 책’, 론리플래닛 추천 ‘유럽 여행 전에 읽으면 좋은 책’에 선정되었다. 또 조금씩 변화하는 독자들에 맞춰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의 새로운 버전을 준비해온 출판사의 노력도 주요하다.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신간 위주의 출판 환경에서 구간에 신경 쓰기란 쉽지 않지만, 반응이 시들해진다고 절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유로화 사용을 거부하고, 민주주의의 원조이면서도 여태 귀족의 존재를 인정하는 나라 영국. 급변하는 시대에 걸맞지 않는 시스템이 공존하는 나라이면서도 여전히 선진국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힘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오페라의 유령, 캐츠, 레미제라블 등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들 작품은 모두 ‘영국산 문화 상품’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때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통했던 영국은 이처럼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로서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이 책은 영국의 힘의 원천을 ‘이성’과 ‘합리’ 그리고 ‘전통’이라는 코드로 흥미진진하게 읽어내고 있다. 변화에 둔하고 느리게만 보이는 영국인들이지만 그 속에 배어있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읽노라면 어느새 우리의 정체성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총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역사 민족성 정치 경제 왕실과 귀족제 시민의 일상을 통하여 ‘왜 어떻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지’를 말하고 있다. 2부에서는 언론과 사회 문화 날씨 습관 등을 통하여 영국 그 힘의 원천을 알려준다. 마지막 3부에서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몇 백 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도시 케임브리지를 통해 ‘왜 교육이고 어째서 전통이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성과 합리가 가져다주는 삶의 질

영국인의 삶은 가난해 보일 정도로 검소하지만 삶의 느긋한 향기가 배어 있다. 그리고 ‘빨리’보다 ‘제대로’가 훨씬 중요하다고 깊이 느끼며 산다. “최고급 스포츠카보다도 예쁜 정원과 오후의 차 한 잔에 더 큰 가치를 둔다”는 영국 사람들은 전국민이 휴일만 되면 정원을 가꾸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이러한 양질의 삶을 위해 영국은 그 무엇보다도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도 영국은 유럽 내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낮은’ 나라이다. 백작의 딸임에도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유치원 보모로 일을 하다 왕세자비가 된 다이애나처럼 성적이 평범한 영국의 청소년들이 별스트레스 없이 취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영국에서는 흔히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 대학 교수들은 15년쯤 된 고물차를 타거나 자전거로 출근하는 데 비해 연관공은 벤츠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흔하다. 그만큼 영국에서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대학이 부와 성공의 그 어떤 척도도 수단도 아닌 것이다. 나아가 부와 성공이 행복의 그 어떤 척도도 수단도 아닌 것처럼.

이뿐이 아니다. 영국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원조 나라답게 개인의 행복과 평등에 대해 올바른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였음은 물론 타인의 행복과 평등에도 엄정할 수 있도록 ‘이성’과 ‘합리’의 원칙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근로자든 유학생이든 6개월 이상 체류한 외국인 누구에게나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영국의 복지 혜택이 열려 있으며, 심지어는 고양이의 ‘권리’가 <더 타임스> 1면 톱기사가 될 정도로 동물의 권리까지 챙긴다. 한마디로 영국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회 곳곳에 배어 있는 나라다.

 

새것을 싫어하는 사람들

새로운 것에 대해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 사람들이다. 이들은 커피잔, 시계, 옷 등의 작은 물건들에서부터 자동차, 집은 물론이고 법률과 정책 등의 사회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잘 안 바꾸는 습관이 있다. 그렇다고 전혀 안 바꾸는 건 아니다. 바꾸더라도 아주 더디게 바꾼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번 산 물건은 망가질 때까지 쓰고, 망가진 다음에도 버리지 않는 영국 사람들은 뭔가 필요한 것이 생기면 우선 ‘중고’부터 고려한다. 자동차, 10년 타는 것은 예삿일이고 2-30년 된 차들도 멀쩡히 거리를 활보한다. 영국의 ‘오른쪽 핸들’은 과거 마차가 다니던 시절 마부의 채찍질에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이 없도록 고안된 것으로, 옛것을 선호하는 영국인에게는 전세계가 ‘왼쪽 핸들’의 자동차 시대로 바뀐 지금도 불편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이렇듯 완고한 영국 사람들의 삶은 얼핏 보기에 가난해 보이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실제 영국에 가서 직접 부딪히면 훨씬 심하게 느껴진다. 우리로 치면 고려, 조선의 생활 방식을 삶 구석구석에서 그대로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불편하다거나 답답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옛것이 뭐가 나쁘냐”. 한술 더떠 “새로운 현명한 일을 하느니 옛부터 해오던 바보짓을 하는 게 낫다”고 한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오늘날 비록 경제 열강에서 영국의 모습이 희미해졌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꼿꼿한 기품과 자존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바꾸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영국 사람들에게는 천년도 더 걸려 힘들게 바꾸어낸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민족의 천성’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의 천성도 바꾸기 힘들거늘 한마디로, 합심해서 국민성을 바꾸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영국을 ‘신사의 나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알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이 두 가지 컨셉이 서로 모순된다는 생각은 특별히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본디 침략과 싸움을 좋아하는 옛 조상 덕에 어떤 싸움이든지 출전만 했다 하면 특유의 야만성으로 반드시 승리하곤 한 영국 사람들은 그들의 민족성을 ‘야만의 나라’, ‘약탈의 나라’가 아닌 ‘신사의 나라’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장구한 시간을 들여 피나는 노력을 해왔던 것이다.

지금도 딴 나라와의 축구 시합만 있으면 평소엔 얌전하고 선량했던 영국의 남성들은 경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폭도(훌리건)로 변해 버린다. 그들의 핏속을 흐르는 야만의 본성이 이런 식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적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이 국가의 제1목표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영국식 삶의 질’이 구현되고 철저한 ‘영국식 개혁의 특징’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영국을 과거의 해가 지지 않는 한물 간 그저 그런 나라로 간주해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선영 기자  sunneeh@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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