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 237호=유광남 작가] 이순신이 꿈꾸던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 1 592년 임진년에 발생한 조선과 일본의 조일전쟁, 즉 임진왜란은 조선왕조 역사 중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위기의 조선을 구한 명장이 바로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이다. 그가 남긴 난중일기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으로 가득하며 왜적과의 전쟁에 소홀함이 없는 위대한 장군의 기록이다. 그러한 이순신이 반역을 꾀하였다? 이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낸 픽션 소설이다.

 

“대관절 누구인가? 누구 길래 이렇듯 무례한 것인가?”

그래도 일국의 재상(宰相)이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유성룡은 사내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환도(還刀)를 눈여겨보면서도 호령했다.

 

 

“사야가, 김충선이라 하옵니다.”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항복한 왜적 출신으로 조일전쟁(朝日戰爭)의 선봉에서 조선을 위해 맹 활략을 펼쳤던 일본인이었다. 왕은 그에게 조선의 이름과 벼슬을 주었다. 그리고 사실 손꼽아 만나 보고픈 사람이었다.

“김충선, 무엄하구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침입을 하는가?”

김충선은 고개를 숙였다.

“서애대감님에게 무례를 범했음을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사태가 급박하여 예의를 차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당장 물러가거라!”

“그럴 생각이었다면 어찌 방문을 했겠습니까?”

“하인들을 부르랴?”

“대감이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하실 분이 아니란 것을 알고 왔습니다. 잠시 고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듣고 싶지 않다. 남의 눈을 피해서 침범한 작자라면 그 뜻이 어떠하던 간에 필경 옳지 않으리라.”

유성룡은 단호히 소리치며 김충선을 노려보았다.

상대는 특이한 품성의 소유자였다. 재상의 위엄 따위나 왕의 권위에도 절대 주눅 들지 않는,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 멋 대로인 기인에 가까웠다.

“저는 대감의 안채를 내 집 드나들 듯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밤에는 임금의 침전에도 다녀왔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허풍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사내가 너무 진지했다.

“어떻게?”

“저는 일본에서 닌자(忍者) 훈련을 받았습니다. 조선의 궁궐은 벽 높이나 방비가 영주가 있는 성만도 못합니다. 제 입장에서 궁궐에 침투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자네는 제 정신이 아니로군.”

“왕은 젖가슴이 예쁜 궁녀를 안고 있었습니다.”

“임금을 희롱하는 것은 대역죄다!”

“왕은 그녀에게서 거북이 냄새가 난다고 호통 쳤습니다. 그리고 내관에게 명하여 헌부의 지평을 들라 하였습니다.”

유성룡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그 날 새벽에 강두명이 어명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보고를 받은 터였다. 또한 그 일의 내막을 알고 있는 이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데, 이 사내가 그런 사실을 어찌 파악하고 있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왕을 주살(誅殺) 할까요?”

유성룡의 안면 근육이 심하게 요동쳤다.

“이놈! 불손하기 그지없구나.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다니, 진정 대역죄(大逆罪)로 죽어 마땅할 놈이로다.”

사야가 김충선은 이 순간 말이 없다. 그는 단지 고요한 눈빛으로 유성룡의 노안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은 마치 달관한 노승이 세속을 바라보는 것처럼 잔잔하다. 풍진 세상에 물욕을 위해 인성을 저버린 군상(群像)들의 행렬을 주시하는 어린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와 닮아 있었다. 유성룡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감은 새로운 나라를 꿈꿔 본 적이 없습니까?”

아련한 메아리 마냥 울려오는 음성에 유성룡은 새삼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나라라니?”

“백성이 굶주리고 고통 받는 더러운 세상이 아닌, 임금이 무능하고 신하가 아첨하는 절망의 나라가 아닌, 강대국의 침략에 혼비백산(魂飛魄散) 하여 왕이 백성을 버리고 몽진(蒙塵)하고 항복하는 패자의 나라가 아닌, 그런 나라를 세우고 싶지 않으십니까?”

서애 유성룡의 머릿속에 큰 범종(梵鐘) 소리가 울렸다.

“넌 누구냐?”

“바른 나라를 세우십시오!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을 멈추지 않게 해주십시오. 백성을 위한, 백성들의 나라를 건국하십시오.”

“통제사의 사람인가? 정녕 이순신이 보냈는가?”

김충선이 고개를 저었다.

“대감을 뵈라 하신적은 있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습니다. 장군을 모르십니까? 장군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임금에 대한 충성과 백성의 안위만으로 가득합니다. 거기, 새로운 조선을 심어야 합니다. 그 불씨를, 뿌리를. 대감만이 심으실 수 있습니다.”

“그건......”

“고려 왕실이 무엇 때문에 조선으로 바뀐 것입니까? 누구를 위해서 조선이 건국 되었습니까? 그건 이 겨레, 이 민족, 이 백성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대감, 남으로는 왜적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북으로는 여진족(女眞族)이 흉맹하고, 서쪽에는 대명(大明)의 무리들이 군신관계를 자처하며 도사리고 있습니다. 조선은 강해져야 합니다. 절대의 강함으로 그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그것은 조선의 신하 유성룡도 꿈꾸던 일이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유성룡은 강하게 부정했다.

“아니요. 절대로 가능 합니다. 어떠한 분이 새 하늘을 여느냐에 따라 그 모든 것은 가능합니다. 잊으셨습니까? 이순신장군의 함대는 임진년의 일본 함대를 맞이해서 옥포, 합포, 적진포,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한산도 대첩에 이르기 까지 전 해전(海戰)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전승이었습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전과였다. 그 때문에 오늘날 까지 조일전쟁에서 패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성룡은 냉정하게 지적했다.

“이순신함대의 승전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부분이 존재했다.”

“귀선을 말함입니까?”

“거북선뿐만 아니라 단단한 판옥선(板屋船)과 우리의 천자(天字), 지자(地字), 현자(玄字) 등의 총통(銃筒)이나 수군들의 훈련이 매우 뛰어났다. 화약과 대포의 성능, 이순신장군의 지도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 뿐인가? 우리의 의병(義兵)들이 전국에서 봉기(蜂起) 했으며 명나라의 참전(參戰)도 한 역할을 했다.”

일국의 재상답게 전란에 대한 분석을 유성룡은 하고 있었다. 김충선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이채가 번뜩였다. 그리고 그의 음성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소생은 이 모든 것이 바로 대감의 공이라 생각 합니다.”

유성룡의 안색이 급변했다. 애초의 그는 일본인도 아니고 조선인도 아닌 그저 담대한 사내쯤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체를 분간할 수 없다.

“무슨 소리인가?”

“이순신장군을 천거하시지 않았습니까.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여 전라좌수사에 임명한 것이 바로 대감이었습니다. 대감은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 허성을 통하여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공을 파악하고 있으셨던 것이지요.”

“조정에서는 일본의 무모한 도발이 없을 것으로 결론 내렸었네.”

“그건 무능한 왕의 선택이었지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도피는 소인배들이 항상 원하는 선택이니까요.”

“상감마마를 폄하하는 발언은 삼가 하게나.”

“대감 역시 고루한 충성을 언제까지 다하실 작정이십니까?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인재를 중용하시고, 당파를 초월하여 서인이던 정사 황윤길의 일본 야욕을 신뢰하시었지요. 그리하여 이순신장군을 기용하시어 전란에 대비하신 것이 아닌지요... 부인하시겠습니까?”

말문이 막혀왔다. 이렇듯 정곡을 찔린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눈치 채지 못했던 유성룡의 선택이었다.

“그건 이미 통신사들의 주장이 있기 이전부터 일본의 침략 가능성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왔었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준비했던 목민관(牧民官)은 없었습니다. 단지 이순신장군이 하셨을 뿐입니다. 대감은 그럴 기회를 제공해 줬습니다. 대감이 아니셨다면 어찌 이순신장군님이 준비된 전쟁을 치룰 수 있었겠습니까?

대감은 이미 이순신장군의 능력을 파악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그 선견지명(先見之明)을 발휘해 주십시오.”

“대관절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대감은 이미 알고 계시옵니다.”

“무엇을 말인가?”

“이순신의 나라에 동참해 주십시오!”

유성룡은 한 순간 전신(全身)의 기력이 정지되는 느낌을 받았다.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아주 급속도로 빠르게 그것은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

“대감으로 인해서 이순신장군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이제 그 운명을 대감의 손으로 다시 되돌려 주시는 길이 정도(正道)입니다. 이순신의 나라는 백성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순신의 나라는 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순신의 나라?”

“이순신장군이시라면 결코 당쟁만 일삼으며 백성을 토탄에 빠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고?”

“백성들이 꿈꾸는 나라가 될 것이옵니다.”

“이순신이라면......”

“대감이 선택한 구국의 명장입니다. 무장으로서의 탁월함은 이미 입증이 되었고, 삼도수군의 통제사로서의 신망(信望)은 절대적입니다. 엄격한 군율과 백성들을 위한 사랑 또한 넘치십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태조대왕 보다도 월등한 장군이십니다.”

이 사내의 말은 틀리지 않다. 조선인 보다 더 조선인다운 일본인 김충선의 이순신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거침이 없다. 그랬다. 이순신은 만사에 신중했고 치밀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깊은 충효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색(思索)하면서도 행동했고, 행동 하면서도 사색하는 문무를 겸비한 지장이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이순신을 나라에 중용 하도록 천거(薦擧) 하였고 단계를 무시한 파격적 임용을 강행 했었다.

“자네는 이순신을 신(神)처럼 섬기고 있군.”

김충선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의 몸과 마음은 남해바다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은 이순신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벌써 5년 전이던 임진년부터 비롯되었다. 자신의 조국 일본을 배신하고 조선으로 투항 했을 때 그는 이순신을 만나게 되었고 감화 되었다. 그때 이순신은 김충선을 깊이 안아 주었다. ‘너의 모든 것을 버렸으니 얼마나 아프냐?’ 그 말에 김충선은 울었다. ‘내 둘째 아들 울과 동갑이니 날 아비라 불러라.’ 그 말에 김충선은 울며 웃었다.

“이순신의 나라를 내게 원한다는 말이지!”

꿈처럼 폭풍이 지나가고 있었다. 유성룡의 가슴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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