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끝없는 변화의 폭주가 아니라 ‘생성변화의 절제’다!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들뢰즈를 비롯한 이른바 ‘프랑스 현대사상’은 주체나 자아, 동일성, 질서, 요컨대 ‘상식’의 범주에 속한 것을 모두 괄호에 넣고 거부한 것처럼 생각된다. 특히 들뢰즈는 만물을 ‘생성변화’의 흐름 속에 용해시켜버린 사상가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들뢰즈는 ‘정도’의 문제를 잊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들뢰즈의 생성변화 이론에서 발견되는 것은 사물 자체라기보다 사물들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이다. 이 책은 들뢰즈 철학의 ‘생성・변화’ 개념에서 ‘정도’의 문제에 집중해 지나친 운동이나 끊임없는 변화가 오히려 생성・변화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과도한 자의식의 폭주를 멈추고 적당한 수준으로 타자로부터 분리되어야 진정한 자아의 발견에 도달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기존의 해석을 뒤집어엎는

도발적인 들뢰즈 해석

이 책 《너무 움직이지 마라》 일본어판에는 1980년대 일본 사상계를 주름 잡은 아사다 아키라浅田彰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그는 추천사에서 “들뢰즈 철학의 올바른 해설? 그런 것은 따분한 우등생들한테나 맡겨라. 들뢰즈 철학을 변주하고, 스스로도 그것을 따라 변신하는 이 책은 멋지고도 거친 안내서다”라고 하였다.

기존의 들뢰즈 해석을 거부하고, 흄과 베르그송을 끌어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들뢰즈를 해석하는 지바 마사야의 철학에 일본의 몇몇 철학자들은 거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의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는 이 책에 대해 “초월론적이지도 경험적이지도 않고,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없는 ‘어중간한’ 철학”이라고 평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들뢰즈 철학에 관한 책이지만, 서술 방식이나 지향은 기존의 연구서와는 맥락을 달리 한다. 이 책은 일상생활을 말하면서도, 철학의 통속화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철학 자체 속에, 새로운 논술의 수준을 창조하고 있다. 여기서는 흄의 철학이 해리성 동일성 장애론으로 말해지고, 들뢰즈의 이름이 하마사키 아유미나 말미잘과 나란히 놓인다.

이 책에서 이뤄지고 있는 빼어난 철학 연구와 융합은 새로운 논술 수준의 창조, 결국은 새로운 말의 창조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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