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언어로 세계를 다시 읽는 김언 시인,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를 재해석하다.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1998년 등단하여 시집 《숨 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를 펴낸 김언 시인이 시집이 아닌, 그렇다고 산문집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책을 펴냈다. 시인 스스로는 ‘한 줄 일기’라고 이름 붙였다. 책에 실린 낱낱의 글들은 제목 아래에 한 줄, 또는 두세 줄 정도에 불과해서 문득 시처럼 보이기도 하나 김언 시인은 시가 아니라고 말한다.

 

미당문학상과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2009), 박인환문학상(2012)을 수상한 김언 시인은 시와 언어, 세계에 대한 첨단적인 탐구와 실험을 확장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단어를 운용하고 장악하는 자신의 세계가 어떤가에 따라 시어의 쓰임이 달라지고 시도 달라지며 세계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한 《숨 쉬는 무덤》의 개정판을 펴내며 “말은 블랙홀이다.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말에 닿는 순간, 내부가 된다. 말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내부를 거느린다. 바깥이 없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언어,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새롭게 펼치는 그는 글을 쓰는 자신의 이름마저 언(言)이라 일컬었다. 평론가 신형철은 그를 “세계의 한계는 곧 언어의 한계이므로 세계를 바꾸는 일은 언어를 바꾸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믿는 시의 근본주의자”라고 평했다. 어떤 의미에서 언어와 김언은 같은 단어이다.

 

다음은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에 실린 ‘작가의 말’ 전문이다. 짧지만 이 책의 의미를, 필요를, 무엇보다 그의 지향을 모두 담은 글이다.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고 그걸 다 써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고 나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는 않다. 기껏해야 한 줄. 그걸 들려주려고 너무 먼 길을 둘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 김언 시인의 가슴에서 밖으로 나온 문장들은 산문과 시의 경계에 서서 앞과 뒤를 넘나든다. 책을 읽은 누군가는 시라 주장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시가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둘 다 옳은데 둘 다 틀렸다. 둘 다 다르고 둘 다 같다. 독자가 읽어 보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물론 말은 쉽다.

 

익숙한 단어들을 뜯어 낯설게 재해석하는 작업은 얼핏 앰브로스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을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랄한 풍자와 비판보다 김언 시인 특유의 언어 감각(시어는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과 세계에 대한 통찰이 앞선다. 그토록 언어를 파고드는 시인이 끄집어낸 문장에 부딪히다 보면 머릿속에서 별이 반짝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프지 않고 환하게 밝은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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