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의 작은 동네 출신 열아홉 살 병사 빌리 린,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모든 게 특별합니다.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빌리 린의 전쟁 같은 휴가'는 적확한 산문으로 최고 수준의 미국 문학에 인상적인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 벤 파운틴이 2012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로, 승전여행중인 병사 빌리 린이 이라크 귀환 전 본국에서 보내는 하루를 통해 국가적 관념 속 전쟁과 그 실체, 또는 후방에서의 전쟁과 지옥 같은 전장의 간극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이야기다. 벤 파운틴은 순수하고 순진하지만 동시에 냉소로 완전 무장한 주인공의 시선으로 미국의 전쟁 강박, 전쟁을 시청하고 소비하는 대중, 성과 폭력, 돈과 유명세에 대한 과도한 욕구를 예리하게 꿰뚫어보고 통렬하게 비판하며, 때로는 블랙유머로, 때로는 깊이 있는 사유로 압도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영웅은 없다, 높으신 분의 졸卒이 되는 것이 군인의 일일 뿐

영웅으로 불리길 주저하는 영웅의 초상

이라크군과의 교전 장면이 폭스뉴스 카메라에 잡히고 이 3분 43초짜리 짧은 전투 영상으로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빌리와 브라보 대원들은 국방부 지원으로 이 주간의 승전여행에 오른다. 전쟁 지지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마케팅 전사로서 미디어 투어라는 임무를 수행중인 이들 여정의 종착지는 댈러스 카우보이스 스타디움. 추수감사절, 미국 풋볼을 대표하는 일명 ‘미국의 팀’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홈경기가 열리게 될 이곳은 ‘미국의 영웅’ 브라보 대원들의 승전여행 그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장소로 더할 나위 없다. 소설은 브라보 대원들이 리무진을 타고 스타디움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해 스타디움을 떠나는 데서 끝나며, 그곳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고향집 방문 같은 에피소드나 공포의 전장 장면이 플래시백으로 섞여든다.

 

추수감사절, 풋볼, 텔레비전, 열광하는 관중과 시청자들……

전쟁과 엔터테인먼트가 뒤섞여 충돌하는 블랙코미디

'빌리 린의 전쟁 같은 휴가'는 인물의 혼란스러운 내면, 스타디움의 들뜬 분위기, 예의 하프타임 공연 장면 등을 구체시와도 같은 형태와 다양한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대단히 ‘비주얼한’ 소설이기도 하다. 전쟁의 광기가 최고치를 갱신한 후방의 맹목적 지지와 참혹한 전쟁의 기억이 뒤섞인 혼돈의 소용돌이, 그 안에 휩쓸린 빌리와 브라보 대원들의 시간이 그와 같은 효과적인 장치를 통해 독자들에게 감각적 현실로 육박해온다.

추수감사절 동안 댈러스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 브라보 대원들이 보내는 몇 시간에는 미국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 스포츠, 유명세, 전쟁에 대한 집착. 무엇보다 후방에서 무수히 많은 ‘기본적으로는 좋은 사람들’이 꾸는 순진한 꿈이야말로 전쟁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어리석고 잔혹한 진실을 조소와 비애를 담아 소설로 승화시킨 작가는 진지하게 묻고 있다. 군대를, 군인을 지지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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