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정치에서 왜 비정상이 정상을 이기는가

우리에게는 새로운 계몽주의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정치는 이념이나 철학, 토론이 아니라 엄청난 속도와 과잉 정보, 감정과 정념에 호소하는 메시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가짜 뉴스나 조작된 정보에 의존하는 정치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저자 조지프 히스는 ‘제정신’ 정치를 위해 갱신된 계몽주의인 ‘계몽주의 2.0’을 선언한다. 그는 철학과 심리학, 인지과학 분야 최근 연구들의 반합리주의적 조류를 반박하며 합리적 사고가 가능한 사회적 환경 조성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 집합행동과 ‘느린 정치Slow Politics’를 주장한다.

◈ 속도와 감정의 언어가 망쳐 놓은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현재의 정치 문화가 이념이나 철학, 토론이 아니라 엄청난 속도와 과잉 정보, 반복적으로 쏟아지는 뉴스, 감정과 정념에 호소하는 메시지에 지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정치는 우파와 좌파가 아닌 비정상적인 것과 정상적인 것으로 양분되었고 비정상적인 것이 우위를 차지했다. 이념이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유권자의 감정에 호소하여 선거에서 이기는 현실에서 합리적 사고의 자리는 없다.

저자는 이러한 정치 문화가 합리적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18세기 계몽주의를 촉발했던 이성 개념의 문제점은 이성을 온전히 개인에게 속하는 것으로 보았고 고립적으로 작동하는 지성의 힘을 과대평가했으며, 그 결과 개인이 속한 물질적․사회적 환경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점이다. 이 책은 집단 프로젝트인 합리성에 기반을 둔 정치 문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 반합리주의의 득세: 이 세상은 미쳐 버렸는가? 아니면 나만 미친 것인가?

2010년 10월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 앞에서는 ‘제정신 회복을 위한 집회Rally to Restore Sanity’가 열렸다. 이 집회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정치 지형에서 분출되던 극단적 비정상에 대한 저항 운동의 출발점이었으며 ‘이성’이 대규모 정치적 저항의 주제로 등장한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우파에는 전통적 주류 분파인 총기 애호가와 종교 근본주의자뿐만 아니라 조세에 반대하는 티파티Tea Party 운동, 오바마가 미국 태생이 아니라고 믿는 ‘버서birther’, 9․11이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믿는 ‘트루서truther’, 진화론과 기후 변화, 그 밖의 자명한 과학적 사실들을 의심하는 반反과학론자 등 다양한 분파가 존재했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이전 수십 년간 미국의 정치 문화에서 반합리주의가 축적된 결과의 일부다.

지난해 미국 대선과 최근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떠올리면(이 책이 2014년에 출간된 점을 감안하자) 저자의 진단과 문제의식은 매우 탁월하다. 또한 이러한 반이성․반합리적 정치 문화와 그 신봉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득세하고 있다. 최소한의 팩트체크도 거치지 않은 정보와 여론의 조작과 유통, 가짜 뉴스의 확산으로 중요한 정치적 국면들이 결정되었던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 계몽주의 2.0, 우리에게는 새로운 계몽주의가 필요하다

사회를 더 낫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진보적’ 주장과 세력은 그 반대쪽에 비해 늘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개는 패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주의 정당과 정치인이 ‘감感’과 거짓 주장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각인시키고 손쉽게 승리를 거두는 현실에서 진보 진영 역시 간명하고 효과적인 메시지와 프레임으로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전략이 설득력을 얻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전략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진보적인 사회 변화는 그 속성상 매우 복잡하고 달성하기가 어려우며 또 단순하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사람들 사이의 타협과 신뢰와 집합행동collective action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슴’(감, 감성)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고 ‘머리’(이성)가 아주 많이 관여해야 한다. 이 점을 인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환경 개선에 힘쓰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저자는 ‘슬로 푸드 선언’에 착안하여 ‘슬로 폴리틱스Slow Politics 선언’으로 끝을 맺는다. 이 선언은 속도와 효율의 유혹에서 벗어나 이성과 토론을 거친 느린 정치, 개인을 넘어 많은 구성원의 집합행동에 의한 정치를 주장한다. 공동체 구성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숙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막 주목을 받고 있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저자의 제안은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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