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서 발현된 박완서의 작품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꿈을 찍는 사진사』의 출간 의미

『꿈을 찍는 사진사』는 1978년 4월 15일 열화당에서 초판이 나온 이후 절판되어, 4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단행본으로 엮이지 않은 채 잠들어 있던 책으로, 치열한 작가정신이 담긴 박완서의 초기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집이다. 박완서 작가 자신도 이 책을 소장하고 있지 못한 관계로, 생전에 다시 출간하기를 원했으나 갑작스레 타계하여 안타깝게도 이제야 책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집에는 「창밖은 봄」 「꿈을 찍는 사진사」 「꼭둑각시의 꿈」 「우리들의 부자」 등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등단한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그러나 중년(48세)에서 50대로 진입하기 전의 ‘치열한 작가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박완서 작품이 원숙기로 접어들기 전의 예리한 비판의식은 예외 없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사회가 산업사회로 진입한 1970년대는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심화되던 시대였다. 국가적으로는 50년대와 60년대를 지나오며 굳어진 반공이데올로기와 근대성을 상징하는 계몽주의가 여전히 국민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다. 비판이론가 하버마스와 해체주의자 푸꼬가 계몽사상을 근대성의 핵심으로 본 것에서 알 수 있듯, 1970년대 한국은 현대로 진입하지 못한 채 근대에 머물러 있었고, 이 시대에 박정희 유신체제는 산업전사를 일컬어 ‘조국 근대화의 역군’이라 불렀다. 즉 전후 재편된 냉전의식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억압된 것들이 사회문제화 되던 시대였다.

박완서의 작품들은 이러한 동시대의 억압을 뚫고 돌출하는 것들에 대해 조응한다. 특히 그의 특기라 할 수 있는 생활 현장의 중산층이 가진 허위의식을 비수로 날카롭게 도려내 조소하고 비판하는 장면은 독자들이 그를 사랑하게 만든 미덕 중의 하나이다.

『꿈을 찍는 사진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박완서는 동시대의 독자 앞에서 자기성찰을 통한 각성으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이중적 행태를 소설적 재미를 더해 꼬집는다. 박완서는 이 책의 초판에 실린 자전적 연보의 짧은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가로서의 최소한의 조건, 사물의 허위에 속지 않고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직관의 눈과, 이 시대의 문학이 이 시대의 작가에게 지워 준 짐이 아무리 벅차도 결코 그것을 피하거나 덜려고 잔꾀를 부리지 않을 성실성만은 갖추었다는 자부심 역시 나는 갖고 있다.”

이 말은 박완서 문학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 말을 시인 김수영이 「히프레스 문학론」에서 말한 어사로 바꿔 말하면 “우리는 무슨 소리를 해도 반 토막 소리밖에는 못하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대해, ‘이 시대의 문학이 이 시대의 작가에게 지워 준 짐이 아무리 벅차도 결코 그것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꿈을 찍는 사진사』가 나올 무렵(1978) 박완서의 문학정신이 뿌리내린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바, 그는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소시민과 중산층의 부르주아 의식을 비틀어 풍자하고 비판하며 인간이 가진 허위의식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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