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행사와 문화체험 등으로 각광받는 볼거리 가득한 대한민국 ‘5대궁’

[시사매거진236호=신혜영 기자] 궁궐이라는 말은 궁(宮)과 궐(闕)을 합친 말로 궁은 왕의 주거를 담당하는 주거 공간이고, 궐은 임금이나 신하들이 정사를 보고, 일반 업무 등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건축의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의 궁은 조상들의 지혜와 과학이 묻어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상당수의 건물이 불타 없어진 아픔을 갖고 있으며,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주도 아래 7,700여 칸에 이르는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또 다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면서 왕조의 몰락과 함께 경복궁도 왕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출처_뉴시스]

경복궁 사적 제117호 경복궁(서울 종로구 세종로 1-1)은 1395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새로운 조선왕조의 법궁으로 지어졌다. 경복궁은 동궐(창덕궁)이나 서궐(경희궁)에 비해 위치가 북쪽에 있어 ‘북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가진 왕들을 보면 제2대 정종, 제4대 세종, 제6대 단종, 제7대 세조, 제9대 성종, 제11대 중종, 제13대 명종 등이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상당수의 건물이 불타 없어진 아픔을 갖고 있으며,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주도 아래 7,700여 칸에 이르는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또 다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면서 왕조의 몰락과 함께 경복궁도 왕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경복궁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경회루와 향원정의 연못이 원형대로 남아있으며, 근정전의 월대와 조각상들은 당시의 조각미술을 대표한다. 현재 흥례문 밖 서편에는 국립고궁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고, 경복궁 내 향원정의 동편에는 국립민속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주요 문화재 : 경복궁(사적 제 117호),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 223호),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 224호), 경복궁 자경전(보물 제 809호),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보물 제 810호), 경복궁 아미산굴뚝 (보물 제 811호),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보물 제 812호), 경복궁 풍기대(보물 제 847호)

■주변명소 : 조계사, 세종문화회관, 경희궁공원(사적 271호)

■연계여행코스 : 경복궁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나오면 삼청동 갤러리 골목이 이어진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면, 삼청동이 나오는데 옛날건물과 신식건물이 혼재되어 있는 거리로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청와대쪽으로 올라가면 청와대 앞에 역대 대통령들이 외국에서 받아온 선물을 전시해 놓은 곳이 있다.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부르게 된 덕수궁. 이런 까닭에 요즘 와서는 경운궁이라는 본래의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출처_뉴시스]

덕수궁 사적 제124호 덕수궁(서울 중구 정동 5-1)은 본디 왕궁이 아니었다.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1454∼1488)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선조임금은 의주로 피난 갔다가 한양으로 환도한 뒤 덕수궁에서 머무른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고쳐 부르고 7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인 인목 대비만을 유폐시켰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하고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규모도 다시 넓혔다. 그리고 고종 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후,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긴 후에도 이곳에 거처했는데, 이때부터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요즘 와서는 경운궁이라는 본래의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주요시설물 : ▶대한문-대한문은 현재 덕수궁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고, 궁궐의 동문이었다. 대안문은 1906년에 다시 지으면서 ‘대한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광명문-왕의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으로 광무 8년(1904)에 큰불이 나서 타 버린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었다. 1938년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정동에 있던 홍천사의 범종과 창덕궁 보루각에 있던 자격루를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같이 옮겨 세웠다. ▶석조전-대한제국 때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광무 4년(1900)에 착공하여 융희 3년(1909)에 준공한 석조 건물로, 조선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지은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건물의 외관은 19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정면에 있는 기둥의 윗부분은 이오니아식으로 처리하고 실내는 로코코풍으로 장식하였다. 전체는 3층인데 1층은 접견 장소로, 반지하층은 시종인들의 대기 장소로 사용되었고, 2층에는 황제가 거처했다.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했다. ▶함녕전-보물 제 820호로 지정된 함녕전은 1897년 건축하여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건물로, 1904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을 같은 해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밖에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정관헌, 덕홍전, 중화전, 보루각 자격루 등이 있다.

■주변명소 : 정동극장, 원구단, 영국문화원, 정동교회(사적 제 256호), 구러시아 공사관 (사적 제 253호), 프레스센터, 세종문화회관, 서울 성공회 성당(유형문화재 제 35호)

■데이트코스 : 덕수궁 돌담길(덕수궁 입구에서 경향신문사로 이어지는 900여m)을 따라 걷다 보면 전통예술 공연장 정동극장이 있다. 정동길 보도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살구나무가 심어져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갈림길에 있는 로터리 분수대, 곳곳의 벤치로 정동길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덕수궁에서 광화문쪽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영국대사관 옆 성공회 성당도 고풍스런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난 9월 23일 서울 경희궁 숭정전 앞에서 열린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행사’. 이 행사는 주어진 시제에 따른 과문(답안지) 작성을 원칙으로 하며, ‘세종실록’133권 오례(五禮) 가례의식(嘉禮儀式) 중 문과전시의(文科殿試儀)에 따라 재현된다.[출처_뉴시스]

경희궁 사적 제271호 경희궁(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번지)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살았던 곳으로, 새문안 대궐 또는 서쪽의 궁궐이다 해서 서궐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왕족의 사저로 쓰이다가 광해군 8년(1616)에 이 새문안 대궐 자리에 왕기(王氣)가 있어 이를 눌러 없애기 위해 별궁을 짓고 경덕궁이라 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축출되었으며 영조36년 (1760)에는 궁의 이름을 경희궁이라 개칭했다. 경희궁에는 회상전, 흥정당, 집경당, 숭정전, 흥화문 등의 건축물이 있었으나, 순조 29년(1829)에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어 1831년에 중건했다. 한일합방 뒤에 건물은 없어지고 그 터에 경성중학교(지금의 서울고등학교)가 세워졌으며 1987년 서울고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뒤 공원으로 가꾸었다. 공원 내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산책길 등이 있고 신라호텔로 옮겼던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이 다시 제자리에 옮겨졌으며, 정전인 숭정전의 복원작업이 1994년 11월에 완료되었다.

■주변명소 : 덕수궁, 황학정, 세종문화회관, 구러시아공사관, 정동교회(사적256호)

창경궁에는 아픈 사연이 많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적이 있고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 때에도 화를 입었다. 숙종 때의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조 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이야기 등이 창경궁 뜰에 묻혀있다. 사진은 창경궁 춘당지[출처_뉴시스]

창경궁 사적 제 123호 창경궁(서울 종로구 와룡동 2-1)은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고자 1418년에 지은 수강궁이 그 전신이다. 이후 성종 임금대로 와서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짓고 창경궁이라 명명했다. 창경궁에는 아픈 사연이 많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적이 있고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 때에도 화를 입었다. 숙종 때의 인현왕후와 장희빈, 영조 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이야기 등이 창경궁 뜰에 묻혀있다. 창경궁은 일제시대에 일제에 의하여 창경원이라 격하되고 동물원으로 탈바꿈 했었으나,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온 겨레의 노력으로 1987년부터 그 옛날 본래 궁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홍화문, 명정전(조선 왕조의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통명전, 양화당, 춘당지 등이 있으며 구름다리를 통하여 종묘와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다.

■주요 문화재 : 홍화문(보물 제 384호), 명정문(보물 제 385호), 명정전(국보 제 226호), 통명전(보물 제 818호), 옥천교(보물 제 386호)

■주변명소 : 창덕궁(사적 제 122호), 종묘, 대학로, 동대문, 경복궁

■방문코스 : 입구에서 매표를 하고 들어서면 옥천교를 지나서 곧바로 명정문이다. 명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명정전이고, 양쪽으로 길게 회랑이 있다. 회랑 중간에도 각 곳으로 나가는 길이 나 있다. 명정전을 보고 왼쪽으로 나가면 문정전, 뒤를 돌아나가면 숭덕전이다. 숭덕전를 돌아보고는 함인정과 경춘전 앞을 지나 통명전 양쪽의 계단을 올라가면 풍기대 앞의 쉼터에 닿는다. 여기서 뒷길로 나가면 성종태실비를 지나 연못과 식물원으로 나갈 수 있다. 또 문정전 앞의 담장을 돌아나가면 관천대가 있고, 관천대 앞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종묘로 넘어가게 된다. 창경궁과 종묘는 하나의 입장권으로 서로 넘나들 수 있어 이용하기에 좋다.

창덕궁은 1611년 광해군에 의해 다시 지어진 궁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인정전, 대조전, 선정전, 낙선재 등 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있어 눈길을 끈다. 사진은 창덕궁 부용지 [출처_뉴시스]

창덕궁 사적 122호 창덕궁(서울 종로구 와룡동 1)은 1405년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별궁이었다.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 방면에 있다 해서 ‘동궐’이라고도 했다. 금천교가 세워지고(1411) 돈화문이 건립되는가 하면(1412) 조선 제 9대 성종 때부터는 여러 임금들이 여기서 지내 본궁역할을 하는 궁궐이 됐다. 임진왜란 때에는 창덕궁은 불에 타고 만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이에 화가 난 백성들이 궁궐을 방화한 것이다. 1611년 광해군에 의해 다시 지어진 궁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인정전, 대조전, 선정전, 낙선재 등 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있어 눈길을 끈다.

창덕궁 후원은 태종 때 만들어 진 곳으로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이 휴식하던 곳이다. 후원은 북원(北苑), 금원(禁苑)이라고도 불렀으며, 고종 이후 비원(秘苑)으로 불렀다. 낮은 야산과 골짜기에 원래 자연 그대로 모습을 간직한 채 꼭 필요한 곳에만 사람의 손을 댄 우리나라의 으뜸가는 정원이다. 부용정과 부용지, 주합루와 어수문, 영화당, 불로문, 애련정, 연경당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정자와 샘들이 곳곳에 있다. 특히 가을 날 단풍 들 때와 낙엽 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창덕궁을 찾으면 가장 먼저 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만난다. 보물 383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문은 1609년 광해군 때의 건축된 것으로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돈화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관리소와 안내판이 서 있고 그 끝에 오른쪽으로 금천교가 걸려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세계 유산위원회에서 수원 화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주요 문화재 : 인정전(국보 제 225호), 돈화문(보물 제 383호), 인정문(보물 제 813호), 선정전(보물 제 814호), 희정당(보물 제 815호), 대조전(보물 제 816호), 구선원전(보물 제 817호), 향나무(천연기념물 제 194호)

■주변명소 : 창경궁, 종묘, 종묘공원, 대학로, 경복궁, 가회동 한옥마을

■사진 찍기 좋은 곳 : 창덕궁의 최고 명소라면 단연 부용지다. 영화당 안에서 또는 부용정 옆에서 부용지를 배경 삼으면 좋다. 또한 애련지에 걸린 애련정은 크기가 작고, 난간 양 사방이 액자 같은 틀로 짜여져 있어,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액자 속에 든 모양의 인물사진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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