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직장 내 성범죄, 형식적인 예방교육보다 피해대처법 교육 시급

[출처_뉴시스]

[시사매거진236호=신혜영 기자] 지난 10월 29일 한편의 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강간 제발 도와주세요. 입사 3일 만에 신입사원 강간, 성폭행, 화장실 몰래카메라’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글은 네티즌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번지며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한샘 성폭행’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그동안 암암리에 묻혀왔던 직장 내 성폭행의 심각성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사실 그동안 직장 내 성폭행은 크게 이슈화 되지 않았다. 조직 문화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보니 대부분의 가해자가 직장 상사란 점에서 피해자는 제대로 된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샘 성폭행’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직장 내 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알아본다.


사회 고질적 폭력 직장 내 성폭력

한샘 여직원 성폭행을 시작으로 현대카드 성폭력, 한국씨티은행 몰카, 성심병원 간호사 선정적 장기자랑, 한국국토정보공사 여직원 성추행 등 최근 한 달 사이에 언론에서 보도된 직장 내 성폭력 사건들이다. 최근 ‘한샘 성폭행’ 사건이 알려진 이후로 그동안 잠잠했던 직장 내 성폭력 사건들이 봇물 터지듯 보도되고 있다. 해당 사건들을 보면 직장 내 권력형 성희롱 실태가 생각보다도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직장 내 성폭력의 심각성을 수면위로 올린 한샘 사건의 사건 발단은 이렇다. 지난 10월 29일 네이트 ‘판’에 장문의 성폭행 관련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을 올린 사람은 사건의 피해자 A씨로 복직을 얼만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꽃뱀’ 혹은 ‘어떤 의도가 있어서 이런 상황이 발생을 했었다’는 소문이 나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A씨가 올린 글에 따르면 지난 1월 회식이 끝나고 교육담당자 C씨가 A유인해 모텔을 가게 됐고 새벽부터 오전까지 감금 및 강간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성심병원은 올해 9월 일송재단 주관 ‘일송가족의 날’ 행사에서 간호사들에게 짧은 바지, 배꼽이 드러나는 옷 등을 입고 야한 춤을 추도록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간호사들은 업무시간이 끝난 후에 수당도 받지 못한 채 연습을 해야 했고, 휴일에도 동원됐다.

한국국토정보공사 간부 A씨는 2015년 12월 만취해 여직원 B씨에게 폭언과 성추행을 하고, 간부 3명은 올해 2월과 4월 회사에 실습 나온 여성 대학생 3명을 상대로 수차례 성희롱과 성추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회식 후 실습 대학생 A씨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따라 나서는가 하면 A씨의 집에서 술을 마시자고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계 한국씨티은행 차장급 직원 A씨는 지난 9월말 사내에서 근무시간 중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여직원의 특정 신체부위를 촬영해 직원들에 의해 적발됐다.

사실 직장 내 성폭력은 늘 있어왔다. 단지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 심각성을 묵인해 왔다. ‘한샘 성폭행’으로 촉발된 직장 내 성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폭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2015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비중은 6.4%로 남성은 1.8%, 여성은 9.6%가 성희롱을 경험했다. 직급과 고용형태에서는 일반직원(6.9%)이 관리직(4.6%)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피해 경험을 나타냈다.

경찰청 자료에서도 직장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성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 341건에서 2016년 545건으로 증가했다. 이는 신고 된 건수로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샘 성폭행’ 사건은 그동안 암암리에 묻혀왔던 직장 내 성폭행의 심각성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사실 그동안 직장 내 성폭행은 크게 이슈화 되지 않았다. 조직 문화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보니 대부분의 가해자가 직장 상사란 점에서 피해자는 제대로 된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처_뉴시스]

직장 내 성희롱 교육 형식적…피해자 대처법은 글쎄

최근 기업에서 일하는 사회초년생과 비정규직, 인턴, 실습생 등 여성들에 대한 성희롱·성범죄 피해가 연이어 발생한데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여전히 기업 내 성희롱 예방 시스템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의무사항이다. 그러나 대부분 형식적인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와 함께 피해자들의 대처법에 대한 교육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 조사에서도 직장인 절반 이상이 성희롱 피해 구제절차에 대해 교육받은 적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5년 8월 30일부터 11월 9일까지 50인 이상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체 일반 직원 78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근로자의 고충상담과 구제 절차를 교육받은 비중은 절반 이하(49%)에 그쳤다. 피해를 경험한 응답자들 가운데 ‘참고 넘어갔다’고 답한 비중은 78%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가 업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피해자들이 대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울여성노동조합회 황현숙 부회장은 “성희롱을 겪은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데다 업무 관계에서 일어났다는 특수성이 있어 피해자들이 문제제기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성희롱 발생 시 접근할 수 있는 해결책은 사내 절차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지방고용노동관서 고소·고발, 민사소송 등 외부기관을 통한 구제제도가 있다. 피해자는 사내 제도를 통해 행위자의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을 전제로 합의를 하거나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할 수 있다. 또 외부기관의 구제제도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으므로 상담기관의 조언을 받아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 사건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우월적 지위에 있는 고용주나 상급자 등이 부하 직원을 성희롱하고도 오히려 피해자를 회유·협박·보복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진은 현대카드 성폭행 사건 관련 문자내용.(출처_뉴시스)

기업 안일한 대처, 가해자 회유·협박 등으로 2차 피해

사내 성범죄가 발생하면 대다수의 기업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직장 내 성추문이 잇따라 외부에 폭로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기업들의 관행이 근원에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씨티은행도 직원들의 적극적인 고발과는 달리 내부의 조치는 미온적인 모습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넘도록 A씨에 대한 징계위조차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위해제 조치는 일선 업무에서 배제되긴 하지만 언제든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일종의 ‘대기발령’ 상태다. 기업이 징계위 절차를 밟아 공식적으로 징벌을 내리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한샘도 지난 1월 24일 교육담당자 C씨에 대해 인사위원회를 열고 징계 해고를 의결했다. 이틀 뒤 C씨가 재심을 청구하자 2월 3일 열린 2차 인사위원회에선 A씨가 인사팀장 B씨에 대한 형사고소를 취하한 점 등을 고려해 해고 조치를 철회했다. C씨는 이후 타 부서로 옮긴 상태다.

성범죄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이재용 변호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떠나 업무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면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대부분 회사의 관심사는 사안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는 데에 있다”며 “이런 일이 벌어지면 회사가 즉각 조사에 나서서 징계를 내려 2차 피해가 없도록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의 예방·처리에 관한 모든 책임을 사업주에게 지우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판례는 성희롱 행위자뿐 아니라 사업주에 대해서도 민법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행위자의 성희롱 행위에 대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한다. 회사가 문제제기한 피해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내렸다면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2항에 따라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김두나 변호사는 “주로 상사에 의해 부하 직원이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회사가 상사를 오히려 보호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한다”며 “이는 법 위반일 뿐 아니라 피해자에 이중 삼중의 피해를 주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 사건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우월적 지위에 있는 고용주나 상급자 등이 부하 직원을 성희롱하고도 오히려 피해자를 회유·협박·보복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샘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 A의 진술에 따르면 인사팀 개입,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지만 처벌은 원치 않는다’, ‘강제수준은 아니었고 형사처벌과 회사 징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가이드 가이드라인을 잡아 준 것으로 드러났다.

A씨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문서는 인사팀장 B씨가 A씨에게 경고하면서 직접 필기한 내용”이라며 “그 중에는 ‘경찰서·법원→회사에 영향을 미치게 하지 X’, ‘해직’ 등의 문구들이 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B씨의 협박은 A씨가 고소 취하를 하는 데 큰 원인이 됐다”며 “이 때문에 A씨는 고소를 취하했고 경찰에 이 문서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현대카드 성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피해자 A씨는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사측은 “서로 실수한 걸로 문제 삼으면 안 된다”며 사직서를 찢어버렸고 인사이동을 요청해도 ‘남녀사이의 일이다’,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을 구분하라’며 피해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 11월 14일 임서정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가 함께 마련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직장 내 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출처_뉴시스)

‘직장 성희롱 특별 전담반’ 설치

최근 한샘 성폭행 사건을 비롯해 직장 내 성폭력이 문제가 도마위에 오르자 인권위가 직장 내 권력형 성희롱 실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인권위는 ‘직장 성희롱 특별 전담반’을 설치하고 올 연말까지 직장 내 권력형 성희롱 집중 진정기간을 운영한다고 지난 11월 14일 밝혔다.

올해 10월 말 현재 인권위에서 처리한 성희롱 진정사건은 217건으로 징계권고 9건, 조정 8건, 합의 종결 4건, 조사중 해결 5건 등이었다. 지난해 인권위가 처리한 성희롱 진정사건은 모두 173건이었다. 조사대상 57건 중 실질적 구제가 이뤄진 사건은 38건으로 실질 구제율은 약 67%였다.

인권위 관계자는 “주위의 시선과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문제 제기조차 못하는 피해자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인권위에 진정되는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보인다”며 “결국 피해자들의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갖고 있으므로 기업 등에 대한 성희롱 예방 인권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은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직장 내 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민주당은 9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조치를 사업주에 의무화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발의해 법사위를 통과했다”며 “노동부, 여가부 등 관련 부처와 함께 피해자 상담 및 구제절차 개선 방안을 포함해 직장 내 성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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