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들, 바다 등 자연을 작가만의 조형적 해석으로 내면세계 표현

[시사매거진236호=신혜영 기자] 그리스에서는 자연을 피시스(physis)라 하였다. 이 말은 ‘피오마이(태어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 본래 ‘생성(生成)’을 뜻한다. 그리스의 자연관에서 자연은 조금도 인간에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생명적 자연의 일부로써 그것에 포괄되어 있다. 자연은 인간에 대하여 이질적·대립적이 아니고 포괄하고 살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 것이다.

야경-북성포구 2017, Acrylic, Mixed Media 116.8cm x 80.3cm[출처_홍성호]

# 자연은 지나친 꾸밈도 지나친 욕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과 공존한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치료받고 위로 받는다. 그래서 자연은 위대하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홍성호 작가는 이러한 자연의 모습에 선과 면, 색채에 감정을 담아 사물을 바라보고 느껴지는 조형적인 깊은 내면을 표현하며 자신만의 감각으로 자연을 새롭게 그려나가고 있다. 그의 회화세계는 정신적 안식처로서의 자연과 화려한 도시의 환상 속에서 항상 불안해하며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는 현대인의 고독한 자화상을 그만의 조형화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지난 7월 열렸던 네 번째 개인전 ‘여행을 담다’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홍 작가는 평범한 대상들,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의 풍경을 담아 자신만의 조형적인 해석으로 그려가고 있다.

홍성호 작가는 평범한 대상들,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의 풍경을 담아 자신만의 조형적인 해석으로 그려가고 있다. [출처_홍성호]

대부분의 작품 소재가 자연이다. 자연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내 고향의 풍취를 바탕으로 서정성과 감수성이 내재된 소재와 자연의 상징적 생명력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아왔다. 사생에서 직접 경험한 살아있는 자연의 느낌이자 내가 항상 그리워했던 추억속의 흔적들로 여겨졌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연의 이미지는 내가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실제 경험의 산물이며 상상 속에 그려지는 풍경만은 아니다. 나는 자연의 이미지를 표출할 때 자연에 대해 스스로 받은 느낌이나 감동 없이는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인간의 끊임없는 대상이며 나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경험과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렇게 표현된 자연은 대상 자체의 질서와는 또 다른 새로운 질서를 갖게 되며 그러한 내적인 정신세계를 형상화시켰다. 그래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내면을 대상으로 조형화했고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바다, 산 등의 풍경을 매개물로 그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 중요시 여기는 요소가 있나.

예술작품에서 선은 명료성과 동적인 리듬을 주는 반면, 색채는 톤으로서 공간적 표현을 완성하는 요소이며, 면은 공간을 채워야 하는 무한적 사색의 리듬을 작가에게 부여하고 있다. 선과 색채를 채움으로써 면은 나에게 무한한 감정과 은유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나는 색채를 통해서 회화를 더욱 실물에 가깝게 표현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서 작품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으며 이는 내 그림의 풍부한 내적 묘사를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색을 처음 시작할 때 물리적 인상은 정신적 동요로 이어지고 심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미적체험을 느끼게 한다. 때문에 내 작품에서 색채는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는 상징적 역할뿐만 아니라 그것을 증폭시켜 마음을 울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화려한 색보다는 보편적인 상황에서 서정적이며 은유적인 색상을 표현한다. 기교적이고 정식적인 표현 대신 인간의 내적인 속성을 드러내고자 채색 과정 전반에서 은은하고 잔잔한 색채표현기법을 채택했고 깊은 색채와 부드러운 질감을 통해서 인간의 내적깊이감과 서민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영흥도의가을(붉은갯벌) 2017, Acrylic, 100.0cm x 72.7cm [출처_홍성호]


# 자연에 내재된 생명력을 사유적 조형 언어로 얘기해 왔던 홍 작가의 작품은 청색계열의 주된 색조위에 화면의 공간을 단순하게 분할하는 구도의 특성을 견지해 오고 있으며 그 위에 사물의 이미지를 간결하게 투영시켜 무한한 사색의 공간으로 이끌어가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표현하는데 있어 다양한 기법이 느껴진다.

파운더나 아크릴물감 등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표현된 반추상적 경향의 회화이면서도 마치 한 폭의 서정적 풍경화나 현대문인화를 보는 것과 같은 은유적 형상의 형태미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화면의 재질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문지르거나, 긁어내고, 파내거나 뿌리는, 주제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매재를 이용한 이런 표현기법들이 내가 의도하는 작품의 표현미를 강조하는데 있는 것이지 결코 이러한 기법이 재질 자체의 효과만을 이용하여 회화의 본질을 벗어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홍 작가는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 그만의 기법으로 밑 작업을 한 후 면 처리를 한다. 그리고 그 위해 선과 색을 채워나가며 그림을 완성한다.

야경-대관령의겨울2009 Acrylic on Canvas 180.0cm x 97.0cm[출처_홍성호]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회화예술은 무엇인가.

17,8세기 네덜란드 풍경화파나 터너를 비롯한 근대 영국풍경화의 사조가 자연이 고귀한 이상을 담은 상상의 풍경이 아니라 사실적 풍경에 근접한 친숙한 회화로서 또 하나의 예술 사조를 탄생 시킬 수 있었듯이 작품 속에서 자연과 사물에 대한 과거의 경험과 순화된 이미지를 중요시하고 있는 나의 작품들은 이제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회화예술에 대한 해답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해준다. 처음 대상의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에 시각을 집중하던 나는 이제 점차 내 작품세계에 대한 철학적 이해와 정신적 고찰의 과정을 통해 현재의 작품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고 있으며 이러한 나의 노력들은 최근 작품을 통해서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중반이후 제작된 작품에서 나타나는 실험의식과 표현기법에 대한 변화된 시각은 나의 작품세계가 어느덧 기존의 미술사적 양식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또 다른 세계의 회화적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남해의 일출(아침) 2010 Acrylic, Mixed Media 116.8cm x 91.0cm[출처_홍성호]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남고 싶나.

89년 처음 배낭여행을 떠나 전국을 여행하면서 캔버스에 자연을 담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자연을 그리고 있다.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아름답게 평생 자연을 그리는 작가로 활동할 것이며 자연을 사랑한 작가로 남길 바란다.

# 홍 작가에게 있어 그림은 곧 삶이다. 비록 미대를 졸업하고 다시 그림을 시작하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그림이었다. 자연이 주는 감동을 캔버스에 자신만의 화법으로 담아내는 홍 작가.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연을 그리는 작가로서의 삶이 오롯이 전해진다.
 

새벽-도시 2009 Acrylic. Mixed Media 116.8cm x 91.0cm[출처_홍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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