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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 - 제 2장 사야가의 난중일기(亂中日記)
  • 유광남작가
  • 승인 2017.12.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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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 236호 = 유광남 작가)제 2장 사야가의 난중일기(亂中日記)

왕답지 못한 왕을 주군으로 모시는 것은 조선의 불행이다.

왕실은 존엄(尊嚴)하지 못하고 신하들은 당쟁(黨爭)과 아첨(阿諂)

으로 역사(歷史)를 오염시킨다.

조선은 희망(希望)이 없는 나라.

누가 구원 할 수 있는가?

나는 영의정에게 간구(干求)할 것이다.

유일한 조선의 대안은 이순신의 나라!

새로운 역사! 이순신의 나라!

(사야가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년 2월 27일 무자)

비는 섬광을 동반하였다. 침전(寢殿)을 가로 지르는 푸른빛에 궁녀(宮女)를 안고 있던 조선의 14대 왕 선조(宣祖)는 화들짝 놀라 깨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궁녀가 놀란 눈으로 몸을 일으키며 불을 밝혔다. 그녀의 유방(乳房)이 출렁거렸다.

“마마, 무슨 일이시옵니까? 이 땀...흉몽이라도 꾸신 겁니까?”

20 여세를 채 넘기지 않음직한 궁녀는 분홍빛 부풀은 가슴으로 선조를 끌어안았다. 왕은 감흥(感興)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꿈이었다. 바닷가에서 거북이들이 떼를 지어 기어 올라왔다. 한꺼번에 무리를 지어 백사장을 뒤덮어 버리는 거북이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선조는 놀라서 주저앉았다. 그의 몸으로 거북들이 하나 둘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하나하나 거북의 등껍질에는 임금 왕(王)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신기했다. 왕에게 달려드는 왕의 글자를 등껍질로 삼고 있는 거북이들.

“짐이 너희들의 왕인가?”

선조는 꿈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귀갑선(龜甲船)을 떠올렸다. 일시에 호흡이 멈췄다. 거북이들이 떼 지어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기어들었다. 공포감이 전신으로 엄습했다. 바다거북의 짜고 비린 냄새가 역하게 후각을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물러나라!”

선조는 황망히 궁녀를 밀어버렸다. 벌거벗은 나신(裸身)이 저만치 날아가 금빛 찬란한 촛대와 함께 병풍 끝에 나뒹굴었다. 궁녀가 몸을 사리면서 덜덜 떨었다.

“마마, 고정하옵소서. 왜 이러시옵니까?”

선조가 궁녀를 노려봤다.

“네년의 젖통에서 거북이 냄새가 난다.”

궁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수줍은 유방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풍성하고 도발적인 육감(肉感)은 여전히 유혹적이었다. 이 가슴으로 선조를 매혹 시켰었다.

“마마,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간밤에는 소첩의 가슴에 식은땀을 흘리시어......거북의 냄새라 하오시면......혹......”

“당장 물러가라!”

선조는 고함을 지르며 궁녀를 외면했다. 놀란 것은 궁녀만이 아니었다. 선조를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내관이 졸고 있다가 벼락을 당하여 허둥댔다.

“주상전하, 고 내관 이옵니다.”

“헌부(憲府)의 지평 강두명을 부르라.”

왕은 순라군에게 쫒기는 도둑처럼 서둘렀다. 내관은 영문도 모르고 급히 왕명을 받았다.

“이 계집도 끌어내라!”

궁녀는 미처 의복도 챙겨 입지 못하고 끌려 나갔다. 선조가 한차례 경기를 치루고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석가래 위 천정에 작은 금속형의 조각 하나가 반짝였다. 순금과 놋쇠로 제조된 직사각형의 형태로, 고리 끝에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는 문금(聞金=일종의 도청기로 일본의 닌자들이 사용하는 기구)이었다.

사헌부 지평 강두명은 새벽에 어명을 받았다. 전례가 없었던 왕명을 받은 강두명은 놀란 걸음으로 입궐하였다. 선조는 그를 내려다보며 불안이 팽배한 어투로 꿈 이야기를 늘어놨다.

“귀선(龜船)을 보았다. 왕이 되고자 하는 거북이들의 반란을 꿈꾸었다. 그건 생시와도 같았다.”

“고정하옵소서. 마마......”

선조는 멈추지 않았다.

“바다의 거북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통제사 이순신이다. 그는 과인의 명을 수행하지 않고 출전을 포기했다. 왜적을 물리쳐야 하건만 스스로 불충하고, 이제 그 힘으로 감히 조정을 능멸하려 한다.”

강두명은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사헌부 지평에 임명된 기간이 짧았지만 선조가 이른 아침부터 자신을 불러들인 까닭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머리를 지닌 자였다.

“통제사 이순신의 죄과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옵니다. 헌부에서는 즉시 응징 하도록 조치할 것이옵니다.”

선조는 뒤숭숭한 꿈의 마무리를 이순신의 제거로 작정하고 있었다. 그에게로 쏠려 있는 민심은 선조에게 있어 불안 정도가 아니라 극심한 두통과 소화불량의 복통을 동반하고 있었다.

“통제사가 이제는 꿈속에서 조차 과인을 괴롭히고 있도다.”

강두명은 엎드려 물러난 후 즉시 헌부의 이름으로 이순신을 포박 압송하여 벌을 내리자고 청하였다. 이 소식은 즉각 서애 유성룡에게도 날아갔다.

“사헌부에서 말인가?”

영의정 유성룡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대관절 사헌부가 전란의 현장에서 구국을 위한 장수들의 피나는 노고를 어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순신이 누구인가? 임진 원년에 패배의 조선을 위기에서 구원한 명장이 아니던가.

“이건 아니다.”

눈을 감았다. 외고집의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이순신의 결연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이번 위기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유성룡은 이대로 눈을 감고 영영 귀를 닫았으면 싶었다. 조정에서 물러나기를 여러 번 선조에게 간청했으나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끝내는 이런 추잡한 모의(謀議)를 공동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끝내 조선이 자멸하려는가?”

탄성이 나직이 새어 나왔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지키지 못하는 남해 바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적은 갖은 술수로 이순신을 고립 시켰고, 조선의 조정은 이순신을 시기했다. 왜적으로부터 남해를 사수한 유일의 승장이며 명장으로의 이순신은 조선 백성들의 우상(偶像)이었으며 전 수군의 신화(神話)였다. 유성룡은 눈을 떴다. 눈물이 촉촉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대에게는 면목이 없구나. 차라리 내 그대를 조선에 천거하지 않았었다면...... 그대는 오늘의 화를 당하지 않았을지니!”

이미 유성룡은 짐작하고 있었다. 이순신이 격어야 할 참상(慘狀)에 몸서리를 쳤다. 국문(鞠問)을 당하고 전신을 갈가리 난도질당하여 끝내 죽게 되리라. 왕의 분노는 극도의 시기심에서 비롯되었고, 그 질투의 칼끝은 이순신을 향해 있다. 피할 수는 없다. 도망칠 수도 없다. 이순신은 이제 죽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미안하구나. 정녕 미안하구나.”

유성룡의 눈물은 샘처럼 솟아나왔다. 그때였다.

“대감은 누구를 위해 눈물을 쏟는 것이오?”

나직한 음성이었으나 유성룡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분명 이 곳은 그의 내당이었고 인적은 더욱이 없었다. 머리끝이 하늘로 치솟았다. 누군가? 누가 대관절 암암리에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던가?

“그 눈물이 통제사 이순신장군을 향한 것이리라 믿어도 되옵니까?”

유성룡이 등지고 있던 병풍 뒤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일면식도 없던 사내였다. 눈빛은 맑고 예리 했으며 콧날이 당당했다. 건장한 체구였으나 군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범상치 않은 젊은이였다.

유광남작가  sisamagazine1@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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