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맞은편엔 대화의 문 열어놔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미 대통령의 연설은 1993년 빌 클리턴 대통령에 이어 24년 만이다. (사진 = 뉴시스)

(시사매거진 236호 = 김옥경기자) ‘힘을 통한 평화’ 일명 ‘트럼프 독트린’이 이목을 끌고 있다.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는 유인책이 될 가능성도 긍정적으로 점쳐진다. 이를 위해 올 연말부터 미국의 최첨단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순환배치될 전망이다. 방위비 분담금은 차치하고라도 한반도 평화를 되레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과연 트럼프 독트린은 한반도 당사자인 남·북한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 11월 7일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튿날 대한민국 국회에 서서 연설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24년 만에 행해진 국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힘을 통한 평화’를 언급했다.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에 맞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의 원천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자산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날 오후 청와대에서 있은 한·미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이미 확인된 바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국군의 자체 방위능력과 한·미 연합방위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적 전략자산의 획득에 대해 양국 간 협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미 일부 승인된 부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러한 ‘힘을 통한 평화’ 구상이 제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한반도를 화약고로 만들어 위기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연말부터 정찰자산 등 첨단 전략무기 본격 도입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8일 오후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한·미 관계가 오랜 동맹국이 아닌 그 이상의 위대한 동맹임을 재확인했다”고 언급하며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순환배치를 확대키로 하는 등 방위공약을 재확인하고 한미 연합방위 태세도 강화됐다”라고 자평했다.

여기에는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완전 해제와 첨단 정찰체계를 포함한 최첨단 군사자산 획득·개발 협력, 공평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방위비 분담 원칙 확인,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 포기와 함께 대화의 장으로 견인한다는 원칙 확인 등이 포함된다. 이를 위한 첫 수순으로 한국 정부는 올 연말부터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미국 전략무기 순환배치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새롭게 추가될 순환배치 전력에는 F-22랩터와 F-35B 스텔스 전투기, 패트리엇 미사일(PAC-3)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어 이미 한반도에 전개하고 있는 전략폭격기 B-1B랜서와 핵추진 항공모함, 핵추진 잠수함 같은 경우는 출동을 정례화하는 동시에 횟수를 늘린다는 방안이다. 이중 B-1B랜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동안 11차례 한반도에 전개한 전력이 있다.

B-1B랜서는 최대 음속 1.25배(시속1530㎞)로 날 수 있어 유사시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한반도까지 약 2시간이면 도달 가능하며, 한번에 2000파운드(약900㎏)급 합동정밀직격탄(JDAM) 24발과 500파운드(약226㎏)급 재래식 폭탄 84발, 공대지 정밀유도폭탄 20~30발 등 약 57t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의 출격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지, 핵심지휘부 시설 등에 폭탄을 대거 투하해 무력화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자신인 셈이다. 그 동안 11차례나 한반도에 전개한 이유 또한 이러한 막강한 화력 때문이다.

F-22랩터 또한 ‘현존하는 최강의 전투기’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며, 한반도에 전개한 전력도 있다. 마하 2.5(시속 3060여㎞)의 속도로, 5000㎏ 가까운 폭탄과 미사일 8기를 탑재할 수 있으며, 작전 반경이 3000㎞를 넘어 괌에서 출발해 중간 급유 없이 한반도까지 단번에 전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까지 장착하고 있어 식별이 어렵기 때문에 최강의 전투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한국에는 아직 이들 전투기를 관리할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순환배치가 이뤄질 경우에는 기지변경이 필요한 상황이다. 당연히 이에 따르는 예산소요가 발생하고,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논의가 추가적으로 필요할 수 있다.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17 서울 아덱스(서울 ADEX 2017)’ 미디어데이가 열린 10월 16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에 F-22와 F-35가 계류되어 있다. (사진= 뉴시스)

힘을 통한 평화의 상징적 정점 ‘전술핵’

2018년 10월 10일은 북한 정권이 수립된 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김정은은 이때까지 ICBM 개발을 완성하기 위해 향후 수차례 더 시험발사를 감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 적절한 시점으로는 내년 1월 8일 김정은 생일, 2월 16일 김정일 생일, 4월 15일 김일성 생일, 9월 9일 당창건기념일 등이 꼽힌다. 이 경우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북한이 ICBM을 실전배치라도 하게 된다면 남한에 대한 도발은 더욱 거세질 것이란 의견도 분분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만약 북한이 ICBM을 실전배치하게 되면 이후 김정은 정권은 핵이 없는 남한에 대해 더욱 공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같은 노력이 북한의 비타협적인 태도로 인해 좌절되었을 경우에 대한 옵션의 고려도 필요하다. 이미 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며 전술핵의 재배치를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억제에만 계속 의존한다면 한국의 대미 안보 의존은 더욱 심화되고 북한은 계속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할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한다고 해도 이 같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독자적 핵보유로 남북 핵 균형이 이루어지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더 이상 한국과 미·일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못하고, 비로소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베를린 구상’, 특히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도 이행에 옮길 수 있게 되어 한반도와 동북아에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이어 정 연구실장은 “북한은 재래식 무기 분야에서 남한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핵을 포기할 수 없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핵을 개발하게 된 배경에는 소련의 해체 후 더 이상 첨단 재래식 무기를 구입할 수 없게 된 상황이 있다. 핵 개발을 통해 비로소 북한은 대남 군사력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경제력뿐만 아니라 군사력에서도 심각한 대남 열세에 놓이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핵을 포기할 수 없다. 다음으로는 핵무기 개발이 재래식 무기 구입이나 개발보다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방부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2013년 초까지 최대 15억 달러(약 1조6400억원)를 지출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1조6400억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사드 1기의 가격이 약 1조4000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핵무기의 위협 효과에 비해 비용은 매우 적게 들어가는 셈이다. 남한이 북한의 비대칭 전력인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북측 개발비용의 10배 이상이나 되지만 한국이 그 같은 막대한 비용을 쓰면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한국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존의 이상적인 목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북 핵 균형을 통한 북핵 위협 관리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역설한다.

힘을 통한 평화, 반드시 대화와 병행해야

지난 11월 9일(현지시각) 문재인 대통령의 대미(對美) 특사였던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문 하나를 게재했다. ‘트럼프의 새 대북전략이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Trump’s new North Korea strategy might actually work)’라는 제하의 이 기고문에서 홍 이사장은 ‘힘을 통한 평화’라는 ‘트럼프 독트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국 국회 연단에 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충동적 비난을 하던 트럼프와는 달랐다. 세계를 향한 보편적 메시지와 평양을 향한 특별한 메시지는 충분히 명확했다. 9월 유엔총회에서 했던 연설처럼 완전파괴와 같은 단어로 북한을 위협하지도 않았고,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리틀 로켓맨’이라고 칭하지도 않았다”라며 “한국 국민은 힘을 과시하는 목적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불러내 비핵화뿐 아니라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트럼프의 발언을 환영한다”라며 “김정은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성공해 그것을 지렛대로 미국과 협상할 때까지 시험발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김정은이 무모하게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을 가속화한다면 한반도에서 일어날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훨씬 커진다. 만약 트럼프가 군사적 옵션으로 옮겨간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하기 전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많지 않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전 협상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계속해서 홍 이사장은 “북한의 원유수입이나 해외노동자 감축, 외교관계 단절 등을 포함한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을 코너로 몰아야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대화를 위한 모든 문은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포 노스(four nos)’ 원칙이 의미있는 대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가 될 수 있다. 미국은 북한 정권 교체, 북한 붕괴, 한반도 통일 촉진,38선 이북쪽으로 군사 비파견을 주장해 왔다. 이들 ‘노스’를 이행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 또는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거나 제3국에서 북한 관계자를 만나야 한다”라고 홍 이사장은 충고했다.

이 기고문은 비단 홍 이사장만의 견해는 아닌 것이, 유엔을 비롯한 많은 국제사회의 움직임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을 두고 북·미 간 물밑접촉의 진전을 예견하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앞서 이번 아시아 순방에 함께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과 2~3개 채널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힌 바도 있다.

韓, 北 핵 동결 후 어떤 보상 줄지 고민해야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28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핵 동결은 대화의 입구이고 그 대화의 출구는 완전한 핵 폐기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북핵 해결을 위한 2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지난 7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안보·경제적 우려 해소, 북미관계와 북일관계 개선 등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비전도 밝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북핵 해법과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 그리고 중국 정부의 ‘쌍중단(雙中斷:북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한미연합훈련 중단)’,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동시진행)’ 방안 간에는 중요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정 연구실장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과 중국 정부의 대한반도정책 간 접점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11월 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압박 공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한중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이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핵동결까지 수용하면 국제사회가 북한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대북 관여 공조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한·미·중 간 고위급 정책협의 채널의 구축을 고려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더불어 정 연구실장은 “대북 특사 파견을 통해 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과 긴장완화 의지를 북한에 직접 전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또 특사를 통해 내년에 있을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참가를 권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영철 대남 담당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올림픽 개막식에 초청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라고 덧붙인다.

현재 북한은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375호에 의해 유류 도입이 약 30%, 정유제품 수입은 56%나 감축되고, 북한의 섬유제품 수출도 금지되며, 내년 1월 9일까지 중국에 진출한 북한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고 전면적으로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중국기업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은 비자 기간이 종료되면 연장 없이 무조건 철수해야 하는 전무후무한 고립상황에 처해있다. 뿐만 아니라 정유제품 수입 감축으로 공장가동율 저하, 물류 수송 차질, 섬유제품 수출 중단과 중국 내 근로자 철수로 인한 외화 수입 급감, 그로 인한 긴축재정 편성, 귀국하는 식당 종업원과 근로자들의 일자리 제공 등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정 연구실장은 설명한다.

“지금은 북한이 핵 포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정상회담에는 절대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이고, 평화체제 구축에도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기 때문에 내년에도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리고 남북 민간교류협력 재개도 아직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이 더욱 심각한 고립으로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이 보다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고, 북핵에 대한 공포 때문에 폐쇄한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금강산관광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홍 이사장도 언급한 바와 같이 시간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그때는 다시 ICBM 시험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렇게 되면 미국은 북한의 정유제품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중국의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하기 위해 더욱 강력하게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더불어 대북 군사 옵션을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