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타당한 이론보다는 현실적 대안 필요

(사진 = 뉴시스)

(시사매거진 236호 = 주성진 기자)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한 ‘건강관리서비스’와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은 헬스케어 서비스와 보험산업의 융·복합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 민간 보험회사에서 개인의 건강정보를 빅데이터화해 보험상품을 개발·판매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의료민영화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게 반대여론의 가장 큰 이유다. 다시 논란의 핵으로 부상한 의료민영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짚어보기로 한다.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이란 보험과 헬스케어를 결합해 가입자가 건강관리 활동을 한 만큼 보험료 할인 등 혜택을 주는 보험상품이다. 지난 4월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공동으로 개발한 이 가이드라인은 질병이나 사망보험 등 건강관리 노력과 관련한 모든 보험상품에 적용된다. 크게 웨어러블 기기, 건강관리 프로그램, 만성질환 관리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웨어러블기기를 연계한 상품은 계약자가 스마트워치, 스마트밴드 등 각종 웨어러블기기를 통해 하루 만보걷기 같은 건강관리 활동을 꾸준히 하면 보험료 할인 혜택을 주거나 할인되는 금액만큼 일시금을 지급한다. 둘째 건강관리 프로그램 연계 상품은 가입자가 보험사와 제휴를 맺은 헬스케어 회사의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따라 건강지표를 달성할 때마다 건강관리 서비스나 보험료 할인 등을 혜택으로 받는 것이고, 셋째 만성질환 관리는 만성질환을 관리하면서 관련 질환이나 질병지수를 적정하게 관리하면 보험료 할인(환급) 등 혜택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상품을 말한다. 예를 들면 당뇨병 환자가 당화혈색소를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면 보험료를 할인해 주거나 환급해주는 식이다.

의료민영화저지범국본과 무상의료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2015년 12월 21일 오전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제주 녹지국제영리병원 승인 및 입원료 본인부담률 인상 박근혜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문제는 상품개발을 이유로 보험사가 가입자의 건강관리노력을 직접 측정하고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보험사는 계약자에게 사전에 약정한 바에 따라 건강관리노력에 관한 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고, 특히 보험사가 가입자의 건강관리노력에 관해 측정하고 수집한 정보를 보관하고 보험요율 산출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업계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경우 현행 법령 기준이 모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간 제기된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다양한 혁신상품 개발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번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의료민영화 논란, 핵심은 의료법인의 인수합병 허용

의료민영화 폐단의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미국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의료민영화 역사를 살펴보면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건강관리기구)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병원과 보험이 결합된 복합기업이다. 1970년대 당시 백악관 자문 존 에릭먼이 의료서비스를 적게 제공하는 만큼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만들면 알아서 적게 공급할 것이라며 이 제도를 제안했고, 닉슨이 동의하면서 통과됐다는 설이 돌고 있다. 영화 <식코(Sicko)>에 나오는 내과의사 린다 피노의 참회처럼 미국의 병원들은 치료로 병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치료를 거부해서 보험회사가 돈을 벌게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아담은 사고로 다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지만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집에서 직접 자기 다리를 꿰매고, 손가락 두 개를 절단한 릭은 중지를 봉합하는 데 6만 달러, 검지를 봉합하는 데 1만2천 달러가 들어가 결국 검지만 봉합한다. 선례가 이렇다 보니 보험회사가 개입하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개발과 판매에 대해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아직 한국 정부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보험자를 민영화한 미국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의료민영화 논란이 이어지는 것은 미국의 의료민영화 과정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이 의료민영화 논란이 뜨거웠던 2014년 한 강연에서 한 내용을 보면 “1980년대 중반까지는 일반적인 민영보험이 많았다가 민영보험과 병원이 계약해 거대 의료기업이 탄생하는 것이 미국의 의료 민영화 역사이다. 그 과정에 닉슨에서 시작해 레이건, 부시 정권으로 이어진 복지 재정 삭감이 있다. 이 과정에서 거대 의료기업의 탄생이 촉발되었고, 복지 재정의 삭감을 위해 만들어 놨는데 실제로는 의료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그 부담은 연방 정부나 주 정부가 아니라 개인이 질 수밖에 없다. 민영화의 전형적인 황당한 사례가 미국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우 위원장은 이번 가이드라인 발표에서도 금융위원회가 사례로 든 당화혈색소 검사에 주목한다. 이런 검사는 보험회사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가이드라인 속 ‘보험회사와 업무제휴를 체결한 자’는 의료기관을 가리킨다고 지적한다. 즉 보험회사가 개별 의료기관과 직접 계약해 상품을 만드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이와 더불어 거론되는 문제점이 의료법인의 인수합병 허용이다. 이 또한 거대 의료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바,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종합계획인 ‘4차 투자활성화 방안’으로 추진되었다. 앞서 2006년부터 병원장들의 모임인 병원협회는 비영리병원을 영리병원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박근혜 정부는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과 인수합병 허용을 추진한 것이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지난해 보건복지위에서 통과되었다. 이로써 병원의 합법적 매각과 합병이 가능해졌고, 대형 체인병원이 만들어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우 위원장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의 의료민영화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미국의 영리병원들은 의사가 소유한 병원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인수합병을 거쳐 3~4개의 체인병원으로 대형화되었다. 이 영리 체인병원들은 돈 되는 부분은 남기는 반면 환자들에게는 필수적이지만 돈이 안 되는 부분인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등은 폐쇄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식 ‘동네병원 중심 원격의료’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의 또 하나의 축은 원격의료다. 주로 섬이나 산골마을 등에 거주하거나 연세가 많거나 장애로 인해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이들에게 원격으로 진료를 하게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동네병원을 중심으로 이런 원격의료를 시행할 방침이기 때문에 동네병원에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환자 편에서 생각해보면 최신식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는 대형병원이 더 신뢰가 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비용이다. 조그만 동네병원이 고가의 원격의료 설비를 제대로 갖춘다는 것은 당연히 큰 부담일 것이다. 물론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만성질환 같은 가벼운 질병을 다루기 때문에 고가의 의료장비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환자의 생각이 중요하다. 아무리 가벼운 질병이라 해도 제대로 된 병원에서 제대로 된 진료를 받고 싶은 것은 모든 환자의 바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저 보편타당한 이론적인 해석만 앞세우며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때문에 이러한 대형병원 쏠림현상이나 동네병원의 보호를 위한 대책이나 보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의료민영화의 지름길인 병원의 인수합병과 대형 체인병원 건립을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동네병원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 중에는 영리자회사 설립도 해당된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병원 내 부대사업 확장은 현재도 많은 이익을 남기는 분야다. 향후 이것이 지금의 편의점이나 장례식장, 주차장 등 환자들의 편의시설을 넘어 의료기기, 의약품, 운동시설, 건물 임대업 등으로 확장될 경우 동네병원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고, 무리하게 경쟁에 뛰어들었다 적자라도 보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운영이 어려워진 동네병원이 대형병원에 인수합병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동네병원이 하나둘 문을 닫게 된다면 자연스레 몇 안 되는 대형병원만 남게 될 것이고, 이는 곧 모두 우려하는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이런 가능성의 경우를 최대한 막아내지 못한다면 의료민영화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 건강정보 빅데이터화, 오·남용 막아야

헬스케어 서비스와 보험상품이 결합한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의 주된 내용은 민간보험사가 개인의 생활습관과 건강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해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이 정책이 개인정보의 유출 문제와 의료민영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폐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정범 상임대표는 지난 11월 3일 금융위원회(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개최한 ‘금융위원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사가 국민의 건강정보를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수집·관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보험계약자를 상대로 건강관리 노력에 따라 보험료 부담을 완화하는 상품을 활성화하겠다고 하는데, 바꿔 말하면 건강관리 노력을 미처 못한 사람에게는 보험료 부담을 더 지우겠다는 것과 같다”라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서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건강관리가 미흡하다. 결국 이들에게 거액의 보험료를 안기든가, 아예 보험계약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으로 건강의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부추기는 정책이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상임대표는 “민간보험사가 환자의 진료내용을 세밀히 들여다보면서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것은 미국식 의료제도로 가는 길이며 의료비 폭등은 명약관화하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지난 정부의 적폐정책을 청산하기는커녕 왜 이름만 바꿔 계승하려는지 모르겠다.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더불어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건강보험 보장 영역인 건강관리, 질병예방, 사후관리 등을 민간기업인 보험회사에 넘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질타하며 이는 국민의 건강증진과 사후관리를 공식적으로 건강보험 보장 영역에서 제외시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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