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_이은진 기자) 신간소개 

21세기 디아스포라의 화두, 혼종성
지구화 시대, 탈장소화 흐름에 맞서 유동하는 삶에 수반되는 각종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디아스포라 휴머니티즈 총서>의 다섯 번째 화두는 ‘혼종성hyperbridity’이다. 이를 위해 국내 인문학 연구자들이 20세기 후반부터 디아스포라 연구의 주요 이론적 기반이 되고 있는 혼종성 연구의 가능성과 한계를 펼쳐 보인다.

이 책의 의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혼종성 또는 이 관념에 기반한 사유의 이론적 힘을 계발하고 발굴하는 것이고, 혼종성 개념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적 연구 성과들을 종합하고 체계화함으로써 이후 연구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두 번째 의도이다.

 

지구화의 문화 논리라는 비판
오늘날 혼종성은 지구화 시대 자본의 운동을 합리화하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지원하는 관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혼종성 관념에 대한 비판가들은 혼종성 개념의 방만한 사용과 문화 제국주의 사이의 친연성, 그리고 이 둘을 뒷받침하는 물질적 힘으로서 자본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암묵적 승인에 주목한다. 그러나 혼종성 관념에는 모든 지역을 식민화하는 지구화의 혼종적 동일화 ‘외부’ 또는 ‘너머’에 대한 감각 또한 내재해 있다. 우리 시대 혼종화는 보통 서로 다른 문화들 간의 만남과 상호작용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창조성을 촉발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유발하는 긍정적 과정으로 평가 받는다. 지구적인 것과 로컬적인 것, 서구와 제3세계, 인간과 동물, 실재와 가상의 뒤섞임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냄으로써 사회의 창조적 변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인 생산은 너무 쉽게 상업화될 수 있고, 혼종성의 출현은 “핸드폰을 가진 젊은이들”을 점점 더 주류, 문화산업, 더 일반적으로는 혼종화된 양식의 자본주의로 편입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혼종적 조화란 문화적 이질성보다 ‘글로벌 정체성’을 부각시키고,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주의적 축적과 소비 시스템을 용인하게 된다는 비판이다.

 

글로벌 정체성이 처한 이론적 난국
이 책은 이 같은 혼종성에 대한 전혀 다른 논의, 즉 지지와 비판을 전제하고 혼종성 관념을 둘러싼, 혹은 그로부터 분기한 다양한 사유의 흐름을 제시함으로써 이 관념의 힘을 시험에 부쳐 보려는 시도이다. 우리 시대 혼종성은 지구화 또는 혼종적 자본주의에 대한 문화적 비판자이자 동시에 그에 대한 이론적 지지자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이론적 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이런 양면의 현실 위에서 다시금 이론적 탐구 작업을 수행하고, 거기서 어떤 이론적 가능성 또는 잠재력을 발굴하는 일이라고 이 책은 주장하고 있다. 이 작업이 자본의 혼종적 동일화와 문화 제국주의, 실질적 불균등과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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