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 235호_권추호)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영국의 BBC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기자는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영국의 수많은 시청자가 융이 어떤 대답을 할지 귀를 기울이며 긴장했다. 융은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학문적인 저작에서 융은 “인간 마음속에 있는 신의 형상’에 대해 말할 뿐이었지만 개인적·주관적으로 그는 ‘신이라는 존재야말로 가장 확실한 직접적인 체험의 하나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숭실대 조성기 교수는 융의 자서전을 번역하면서 ‘융의 일생을 통하는 주제는 종교다’라고 했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그의 자서전 「카를 융, 기억의 꿈 사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이다.’

자기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들으며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무의식 밑바닥의 ‘자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무수한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융은 ‘자아’의 소리를 듣는 데 꿈과 종교의 상징을 매개로 이용했다. 따라서 융의 생애는 꿈과 종교의 상징을 통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를 포착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융은 하나님을 직접 체험(증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상징과 신화의 언어를 상실한 채 교회와 신학적 사고에 붙들려 하나님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성이야말로 신과의 교류를 차단하는 가장 위험한 접근 방법론이라고 간주한 융은 여기에서 탈피하여 꿈과 신화와 종교의 상징 등을 매개로 원형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자기’의 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융은 자신이 많은 신을 경험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는 존재의 최고 의미는 오직 그것이 존재한다는 데 있으며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해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은 인격 철학의 재창조, 즉 하늘의 뜻을 땅에서 인간이 중심이 되어 정치, 문화예술, 심지어 경제적으로까지 직접적으로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유의 세계와 같다는 것이다. 또한 조성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융은 분명히 기독교를 신봉했지만, 교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외자다. 개인이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개인마다 고유의 숙명적인 길을 가야 하는데 예수를 모방하거나 이성에 기대는 신학으로 가는 바람에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융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당신들은 신이다(요한복음 10장 34절)’라고 외쳤건만 사람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악이 문제에 대해 그는 신이 선하기만 하거나 사랑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봤다. 이 때문에 융은 증세였더라면 화형 됐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죽은 뒤에 융은 교회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신학자들의 인식이 커져가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