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최고의 관료 에노모토 다케아키

(시사매거진_이은진 기자) 신간 소개

"1879년 2월 12일, 시베리아 횡단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에노모토에게 조약개정 담당관(条約改正取調御用掛)이라는 외무성 특별직책이 주어졌다. 사실 러시아와의 사할린-쿠릴 열도 교환조약에 대한 일반 여론은 극히 부정적이었고, 각종 언론은 에노모토의 굴종적 외교를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정작 담당 부서인 외무성은 사할린의 대체 영토로 쿠릴 열도 전체 중에서 얼마만큼을 얻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지만, 조약 결과가 쿠릴 열도 전부 획득이라는 놀랄 만한 성과에 대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에노모토의 외무성 발탁은 그의 업적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 스스로 이 발탁에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는 알 수 없다." - 본문 중

19세기 막부, 메이지 초기 일본의 다이내믹
난학자들의 지적 행보를 통해 문화사적으로 접근한다

메이지 유신은 마지막 막부 시대인 300년 도쿠가와 막부 체제를 무너뜨리고 천황친정 형태의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를 이룬 정치·사회적 대변혁이었다. 이것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 중 하나로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많은 도서를 배출해 내는 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메이지 유신을 주제로 국내와 국외에서 출간된 많은 저서들은 주로 ‘어떻게’ 가능하였나 하는 분석적이고도 정치사적 관점에서 쓰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幕末의 풍운아 에노모토 다케아키와 메이지 유신』은 동양 어느 나라도 성공하지 못한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의 계기가 된 19세기 말 일본의 선택, 그리고 그 정점에 있던 메이지 유신의 배경과 과정을 ‘막말의 풍운아, 메이지의 만능인, 하코다테 정권 총재’라는 다채로운 수식어를 지닌 인물 에노모토 다케아키의 삶을 통해서 보여 준다.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보신 전쟁과 하코다테 전쟁에서 메이지 유신 공훈자들의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에서 체신대신, 문부대신, 외무대신, 농상무대신 등 다방면에 걸쳐 활약했으며 특히 자신의 지질학적 능력을 발휘해 홋카이도 및 사할린 개척과 개발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사건들에 의해 막말의 혼돈을 온몸으로 겪었고 이어진 메이지 시대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긴 에노모토 다케아키의 인생 역정과 난학자들의 지적 행보를 통해서 이 책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메이지 유신을 정리하였다.

 

메이지 최고의 관료 에노모토 다케아키

메이지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서고 싶었던 저자는 전 인류를 빨아들인 19세기 다이내믹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대항해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16세기부터의 세계사를 뒤졌다. 대항해시대는 저자에게 그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을 정도로 흥미로운 시대였다. 그 시대를 더 알고 싶어 저자가 읽었던 책들이 이 책에 여럿 소개되어 있는데 그것 또한 이 책의 자랑거리이다. 16세기부터의 세계사를 뒤지다가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를 만나기도 하고 사카모토 료마를 만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쓰와노의 3천재(니시, 고토, 모리) 중 고토 분지로의 연구와 행적을 좇는 일도 계속하면서. 그렇게 그의 곁을 맴도는 많은 인물 가운데 에노모토 다케아키가 주인공으로 낙점된 배경은 다름 아닌 쓰와노 여행이었다.

쓰와노는 일본 지질학의 아버지 고토 분지로의 생가 터가 있는 마을이었고, 산지지형학을 전공한 저자에게 이 마을을 방문하는 것은 당위성마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조차 찾지 않는 잊힌 지질학자의 생가 터는 에도 풍의 거리가 늘어선 작은 마을에 있었고, 뜻밖에 그곳에서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던 메이지 시대를 만났고, 결과적으로 ‘막말에 지질학 조사가 가능했던 희귀한 인물’ 에노모토 다케아키를 만나게 했다. 또한 니시였다. 니시는 막신이었고 메이지 정부에서 군인으로 활약하기는 했지만 학자였다. ‘다이내믹’이 화두인 저자에게 학자인 니시와 고토가 탐탁치 않은 와중에 니시의 네덜란드 유학 동기생 중에 스와 가네노리(고토 분지로의 기념비를 쓴 사람)가 그의 책 『지구과학의 개척자들(地球科学の開拓者たち)』(2015)에 ‘희귀한 인물’로 소개했던 에노모토가 있었다. 저자의 여행은 책의 맨 뒤에 부록으로 수록된 ‘사진 여행: 에노모토 다케아키의 발자취를 따라’에서 컬러의 사진으로 살펴볼 수 있다.

쓰와노와도 고토 분지로와도 관련이 없는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우리에게도, 일본에게도 에도 시대의 군인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들어본 적도 별로 없는 인물인 에노모토 다케아키를 야후 재팬에서 검색하면 이토 히로부미 수준으로 어마어마한 양이 나온다.

에노모토는 막신의 자제로, 일본 최고의 지도학자 이노 다다타카의 『대일본연해여지전도』 제작에도 참여했으며, 일본에서 지구과학에 관한 한 가장 오래된(140년) 학회인 ‘도쿄지학협회’의 창립 발기인이자 부회장 중 한 명이다. 네덜란드에서 후원한 막부 최초의 근대식 군사학교인 나가사키 해군전습소 출신이라는 점과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막부의 홋카이도·사할린 조사에 나선 별난 이력도 가지고 있다. 막부 해군 부총재로서 최신예 군함 가이요마루(開陽丸) 등 8척의 군함을 이끌고 에도를 탈주해 홋카이도의 하코다테(箱館)에서 혁명정부를 수립했고, 선거를 통해 총재(대통령)가 된 후 신정부군과 일전을 벌이다가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이 패배가 우리가 그를 통해 메이지 유신에 다가서는 데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 오히려 승자의 역사인 유신사에서 패적이라는 오명을 썼기에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그에 관한 기록들이 저자로 하여금 이 인물에 대한 평가나 사건이 일어난 과정을 분석하게 하는 대신, 일어난 사실들을 덤덤하게 나열하며 “~알 수 없다.”로 문장을 마무리하게 했다. 역사적 사실 앞에서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그가 처한 상황에서 그 시대를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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