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SNS 글쓰기의 진실

(시사매거진_이은진 기자) 신간 소개

"창작자 3000명, 주간 페이지뷰 300만, 후원자 34만 명, 총 후원액 100억을 돌파한 카카오 스토리펀딩 팀의 좌충우돌 분투기. 《스토리의 모험》은 총 1600편의 프로젝트에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27편을 엄선했다. 수능을 앞둔 고3 친구들의 ‘내 친구 시인 만들기’, 난생 처음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생애 첫 편지 쓰기’,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성들의 ‘곰신 이야기’ 등 일상의 재기발랄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진우와 김제동의 ‘발칙한 애국 프로젝트’, 배우 조윤희의 ‘유기견 구조’, 재심 변호사 박준영의 ‘하나도 거룩하지 이야기’ 등 세상을 향한 작은 용기와 지혜를 전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

스토리펀딩은 선한 일을 하고서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왔다. 특히 《스토리의 모험》은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파산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를 김귀현 파트장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스토리펀딩 최고 후원액을 달성한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8분’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는지, 내부에서는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그간 스토리만으로는 알지 못했던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을 진행할 당시 피고인들을 위해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피고인들에게 무궁화호 말고 KTX를 타게 하고, 편의점에서 밥 대신 따뜻한 밥을 먹이느라 자신의 삶을 미처 돌보지 못해 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스토리펀딩 팀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박준영 변호사를 위해 그의 빚을 갚으려는 프로젝트에 사활을 건다. 빚 때문에 정의로운 마음마저 흔들리게 할 수 없다는 취지 아래 SNS를 통해 프로젝트를 예고하고, 어떻게든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내부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스토리펀딩은 영화 <귀향>의 마지막 8분을 제작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과연 될까? 하는 의문 속에서 띄운 프로젝트는 가파른 후원 그래프를 그리지만, 팀원들은 이전처럼 기뻐할 수가 없었다. 스토리펀딩 팀에서 제작하려는 마지막 8분은 패전 후 위안부 소각명령에 따라 사살당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토리펀딩은 영화 <귀향> 프로젝트를 통해 창작자들의 플랫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론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커져버린 영향력을 어딘가에 행사하고 싶을 법도 한데, 스토리펀딩 사람들은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여전히 이들의 꿈은 생계 걱정 없는 창작자 생태계 구축이기 때문이다.

 

경계와 한계를 모르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출현

“스토리펀딩도 언제나 소수자를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면 그곳은 스토리펀딩이 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 창작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성적 소수자들에게도 그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 무지갯빛 세상을 꿈꿉니다 중에서(145쪽)

 

스토리펀딩을 르포르타주의 부활과 선한 연대의 촉구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스토리펀딩의 가장 큰 장점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창작자의 경계와 한계를 만들지 않고, 누구든 이야기가 있다면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든 데 있다. <스토리의 모험>에 실린 ‘무지갯빛 세상을 꿈꿉니다’와 ‘어쩌면 우린 모두 예비 장애인’은 스토리펀딩이 추진해온 ‘모든 창작자’라는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글이다.

트랜스젠더의 건강 문제를 연구하는 ‘무지갯빛 세상을 꿈꿉니다’는 처음으로 트랜스젠더들의 건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후원한 글이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첫 크라우드 펀딩이라 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 역시 뇌졸중을 겪고 난 후, 글쓰기로 재활 훈련을 하는 프로젝트였다. 장애를 사회적 낙인으로만 생각했던 독자들에게 ‘장애인’도 글을 쓸 수 있고, 장애가 우연히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한계와 경계가 사라지면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다양한 물건들이다. 유기동물을 위한 리워드를 찾다가, 리워드가 아예 스토리가 된 ‘미소 팔찌’ 이야기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까지 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계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우리도 몰랐던 시각장애인의 세계를 생생하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장안의 화제 ‘열정의 기름붓기’가 만든 ‘스케줄러’는 진짜 변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꾸준한 열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모르는 SNS 글쓰기의 진실 - 짧은 게 전부가 아니다

《스토리의 모험》은 꿈이 있는 창작자들에게 콘텐츠 제작 매뉴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스토리펀딩 팀원들이 좋은 콘텐츠를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발굴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 만들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창작자가 되고 싶은 독자들에게 넌지시 창작의 핵심을 짚어주기도 한다.

스토리펀딩에서 연재된 글들은 모두 인터넷용으로 쓰인 글들이다. 독자들은 대부분 인터넷 글쓰기 혹은 블로그 글쓰기는 ‘절대 길어서는 안 된다’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리펀딩에서 연재된 글들은 짧지 않다. 박준영 변호사의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이야기’는 한 회당 원고지 30매를 넘는 글이었다. 그런데 독자들은 어떻게 그 긴 글을 읽고, 거기에 빠져들어 후원까지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책에 실린 27편의 글들은 말한다. 글의 길이는 창작의 조건이 아니다. 창작의 핵심은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독자들이 문장이 유려하든가 아니면 전문가가 써야만 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곰신 문학상’ 프로젝트를 보면, 과연 잘 쓴 글이란 무엇인가를 더 생각하게 된다. <스토리의 모험>에 실린 글들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글들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화려하진 않지만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진심이 담긴 따뜻한 글이다. 나는 글을 못 쓰는데, 과연 창작자가 될 수 있을까? 창작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독자들에게 <스토리의 모험>은 사람들은 ’진심은 통한다‘라는 오래된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스토리는 글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남은 질문에 이 책의 5장이 답한다. 5장에서 독자들이 환호한 것은 글이 아니라 상품이었다. 5장에서 소개하는 열정의 기름붓기가 만든 스케줄러, 문재인 대통령 굿즈, 점자시계 브래들리 타임피스, 유기동물을 위한 미소 팔찌를 과연 스토리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글이 아니라 상품들에 담긴 이야기에 독자들은 환호했다. 상품이 주는 매력과 그 안에 담긴 대체할 수 없는 철학이 후원자들과 공명하면서 글보다 더 크고 빠른 파급력을 갖는 모습을 보여준다. 콘텐츠가 꼭 글이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스토리펀딩 팀은 ‘아니’라고 답한다. 어떤 사물이 각별하게 다가온다면, 그것에 이유가 있다면, 작은 사물이 오히려 이야기를 압축해 전달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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