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 세계’의 창조자이자 다재다능한 예술가

(시사매거진_이은진 기자) 신간 소개

"토베의 삶은 진정 흥미롭다. 낡은 편견, 특히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문제에 대해 편견이 강한 나라에서 그녀는 인습에 갇힌 사고방식과 도덕 규율에 반기를 들었다. 토베는 혁명가였지만, 전도사나 선동가는 아니었다. 그 시대의 가치관과 태도에 영향을 미쳤지만, 기수 노릇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한 성정에 맞게, 자신의 선택들을 끝까지 고수했을 뿐이다. 남성과 대등한 여성의 지위와 독립성, 창의성, 평가가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녀는 일에서도 삶에서도 평범한 여성의 역할에 굴복하지 않았다. 어린 토베는 “자유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썼었다. 그녀가 눈감는 날까지 그 무엇보다 가치 있게 여긴 진리였다." - 10쪽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지만 저평가되기도 했던 예술가,
전쟁에 열렬히 반대했던 평화주의자

조각가인 아버지 빅토르 얀손과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우표 디자이너인 어머니 시그네 함마르스텐 얀손 사이에서 태어난 토베 얀손은 예술가인 부모의 창작활동을 보며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다. 걸음마도 떼기 전, 엄마 품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십대 때 이미 드로잉 작품들을 묶어 발간하고 여러 신문에 일러스트를 싣는 등 어린 시절부터 숙련된 일러스트레이터로 인정받았다. 열여섯 살 때 스톡홀름 콘스트파크로 미술 유학을 떠나 이후 헬싱키 아네테움, 자유예술학교, 파리 에콜 다리앙 올리 등에서 수학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고, 194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수많은 회화 작품과 벽화, 프레스코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젊은 예술가에게 주는 두카드 상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으나 전쟁 발발과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토베의 인생은 다르게 흘러간다.

토베는 생계를 위해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용 일러스트를 그렸고, 다양한 출판사와 언론사를 위해 캐리커처와 책 표지 삽화를 그렸다. 『가름』 『스웨덴 프레스』 등 핀란드와 스웨덴의 주요 잡지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고정 수입과 좋은 평판을 얻었으나, 전쟁중에도 스스로를 “먹물 기계”라고 신세를 한탄할 정도로 쉼없이 일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가름』에 날카로운 풍자로 무장한 전쟁을 비판하는 일러스트를 꾸준히 실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라는 고단한 현실

에서 도피하고자 무민 세계를 창조한다. 무민 시리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지만 무엇보다 화가이고 싶었던 토베는 이러한 성공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화풍과 색채로 회화 작업에 전력을 다해 자유와 빛, 충동과 욕망을 화폭에 담아낸다. 토베 얀손은 작가로서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눈부신 성공을 거뒀지만, 그 성공 때문에 상업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회화에 있어서는 기대만큼은 세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토베는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인 시각예술 분야에서 여성 예술가로서 자존감을 유지하고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고군분투했다.

1970년 마지막 무민 동화인 『무민 골짜기의 11월』을 발표하며 무민 세계에 작별을 고하나 『진정한 사기꾼』 『자갈밭』 『페어플레이』 같은 성인 독자 대상의 소설을 써내려가며 작품활동은 계속해나갔다. 이렇듯 토베는 일평생 창작욕을 불태웠다. 회화와 동화, 단편과 장편 소설, 연극, 시, 노래, 무대미술, 벽화, 일러스트레이션, 광고, 심지어 정치풍자화와 연재만화까지 2001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광범위한 예술 분야를 종횡무진했다.


▶무민 가족, 세상에 태어나다

재능 있고 열정 넘치는 화가였던 토베 얀손은 왜 무민 이야기를 쓰게 된 걸까? 책으로 큰돈을 벌어들일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았으니 경제적인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적어도 초반에는 자신을 위해서였다. 무민 골짜기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쓰면서 토베는 전쟁통이라는 잔혹한 세상에서 무민 세계라는 다른 세상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 즉 무민 골짜기는 추악함으로 가득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30년대만 해도 무민 캐릭터는 장식 수준으로 작은 조각 그림 혹은 토베 서명의 일부로 쓰였고 무민 동화도 일부 쓰다만 상태였으나 이를 마무리해 어린이책으로 내도 되겠다는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아토스의 지지에 토베는 작업을 재개한다. 그렇게 토베는 무민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다.

무민 동화는 토베가 어린 시절에 읽은 『닐스의 이상한 모험』이라든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정글북』, 성서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토베 얀손은 전쟁과 결핍 속에서 무민 시리즈를 쓰면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되살려내려 했다. 1945년 『무민 가족과 대홍수』를 시작으로 『무민 골짜기에 나타난 혜성』 『마법사의 모자와 무민』 등 토베 얀손은 30년 이상 무민 동화를 창작했고, 런던 <이브닝 뉴스>에 7년간 무민 연재만화를 싣는 등 무민 시리즈는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이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5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돼 수백만 부 이상 팔린 무민 시리즈는 현재도 연극, 오페라, 애니메이션 시리즈, 영화 등의 작품이 이어지고 각종 캐릭터 상품도 사랑받고 있다.

 

▶금기와 편견을 사랑으로 뛰어넘다
연애할 때 토베는 격정적인 감정에 휩쓸려 자신을 놓아버리거나 상대에게 복종하는 경향이 강했다. 스승이자 롤모델인 사무엘 베스프로스반니와의 연애를 통해 화풍이나 색채 등 회화 작품 세계에 영향을 받았고, 타피오 타피오바라와의 연애를 통해 좌파 사상에 눈을 떴으며, 아토스 비르타넨과의 만남을 통해서는 글쓰기에 빠져든다. 젊은 시절, 토베 얀손은 그의 의견과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싶어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들과의 연애를 통해 문화적 토양을 넓혔고 사상이나 가치관을 변화시키며 예술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당시 사회가 요구한 결혼이라는 제도의 승인 없이 살았고, 자유분방하고 공개적인 내연 관계를 이어갔으며 주변 사람들의 비판에도 비교적 당당했다.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흔치 않은 능력이 있었던 토베는 불같은 연애가 불행하게 끝난 뒤에도 그 상대와 교류를 평생 이어갔다.

연극연출가 비비카 반들레르와 사랑에 빠지며 토베는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발견하게 됐고, 직업적 자존감도 더 단단해졌다. 둘의 관계가 밝혀지면 어떤 비난과 비방이 쏟아질지 예상했으면서도 비비카와 격정적이면서도 지적인 관계를 이어간다. 이후 인생의 동반자 툴리키 피에틸레를 만나 말년까지 거의 반세기를 함께한다. 예술가이면서 비슷한 성향의 토베와 툴리키는 여행과 영화 촬영, 무민 골짜기 실사 제작하기, 낚시 등의 취미를 공유했으며, 서로를 사랑하고 지지하면서도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독립적인 인간끼리의 결합을 이뤄냈다. 핀란드와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서 성평등 의식 고취를 위해 힘쓰는 기관들에서 토베에게 성소수자들을 위해 선구적 역할을 해줬다며 상을 줄 정도로, 토베는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극히 중요한 롤모델이자 작가였다. 모든 것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사생활을 온힘으로 지켜냈고,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련해 때로는 드러냈다가도 때로는 진실을 감추곤 했다. 여자의 혼전순결이 당연했던 시대에, 동성애가 법으로 금지돼 있고 질병으로 분류되던 시대에 토베는 늘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졌고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숨기려들지 않았으며, 연애에서 얻은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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