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단순하게 구조화되는 카타르시스!

(시사매거진_이은진 기자) 신간 소개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에 따라 철학, 과학, 예술, 종교가 단순하게 정리된다. 자연스럽게 지식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고, 삶에 대한 태도를 정할 수 있다. 자, 이제 지적 대화 속에서 타인을 놀라게 할 준비가 되었는가."


화해하기 어려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고정되고 불변하는 보편적 진리를 찾는 사람과, 그러한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철학, 과학, 예술, 종교의 영역을 넘나들며 토론하고 논쟁한다.

우선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철학에서 절대주의, 과학에서 고전물리학, 예술에서 고전주의, 종교에서 유일신교를 지지한다. 변하지 않는 엄격한 이성과 논리가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다음으로 변화하는 상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철학에서 상대주의, 과학에서 현대 물리학, 예술에서 낭만주의, 종교에서 다신교를 선호한다.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견해의 인정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두 종류의 사람들 외에 진리에 대한 접근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회의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의 견해는 오랜 기간 동안 무시되고 억압의 대상이 되어왔다. 다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종교와 이성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함께 이들의 견해가 주목받았다. 철학에서 회의주의, 과학에서 과학철학, 예술에서 현대 미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에필로그 중)


현대철학의 거물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책 《철학적 탐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다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21세기 한국의 건물숲 속에서도 우리는 사자들을 만난다. 업무를 던져주는 사자도 있고, 지하철에 앉아 핸드폰에 빠져 있는 사자도 있으며, 오랜만에 만나서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는 사자도 있다. 수많은 사자에게 시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몸을 누일 때, 우리는 피로하고 지친 또 다른 사자를 대면하기도 한다.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공통분모다. 그리고 인류의 공통분모는 내가 잘 모르고 있었을 뿐 이미 마련되어 있다. 지금의 너와 나뿐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사람들까지 아울러서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공통분모. 그것을 교양, 인문학이라고 부른다.

교양은 클래식을 들으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그 무엇이 아니다. 교양과 인문학은 단적으로 말해서 넓고 얕은 지식을 의미한다. 개인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은 먹고사는 데 필수적이지만, 타인과 대화할 때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교양과 인문학으로서의 넓고 얕은 지식이 우리를 심오한 어른들의 대화놀이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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