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진실을 폭로하다

(시사매거진_이은진 기자) 신간 소개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들 둘 다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고자 한다면, 과거로 떠나는 이런 고통스러운 여정이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은 바로 이 길을 열고자 하는 시도이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난 일의 진실

<가장 용감하고 강직하고 날카로운 이스라엘 역사가> 일란 파페의 대표작 󰡔팔레스타인 비극사󰡕가 출간됐다. 파페는 자신의 만행을 감추려는 이스라엘의 주류적 역사관에 반대하며 198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이스라엘역사가들 중 한 명으로, 모국의 역사 왜곡을 계속해서 고발해 왔다. 이 때문에 파페는 이스라엘 사회의 눈엣가시가 되어 13년간 몸담았던 대학에서 파면당하고 살인 협박에도 시달렸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이스라엘의 비윤리적 행위를 계속 들춰내고 있다. 노암 촘스키는 그를 <현존하는 이스라엘 지식인 가운데 가장 양심적인 사람>으로, 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가장 뛰어나고 도발적인 학자>로 평가한 적 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을 <종족 청소>라는 시각으로 파헤친 역사서다. 파페에 따르면 1948년 3월부터 이스라엘 건국 세력인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만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주로 아랍인인 팔레스타인인들을 본격적으로 추방했다. 추방이 일단락되었을 때 난민이 된 사람은 80만 명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은 위의 사실을 왜곡한다. 이스라엘 건국을 <비어 있는 땅에 정착해서 사막에 꽃을 피우는 데 성공>한 것으로 미화하는 한편,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강제 추방에 관해서는, 이미 건국된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아랍군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다고 주장한다. 강제 추방은 없었고, 아랍의 침략에 맞선 이스라엘의 <독립 전쟁>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파페는 이스라엘의 이러한 기만적인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스라엘 핵심 인사들의 일기, 군사 기록, 구술사 자료 등을 토대로 학살, 파괴, 겁탈 등 이스라엘 건국 세력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얼마나 잔인한 일을 계획적으로 저질렀는지 폭로하고, 이를 종족 청소라는 전쟁 범죄로 정의한다. 그러고는 이스라엘을 향해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그것만이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종족 청소란 무엇인가? 파페는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계기로 생겨난> 이 개념을 <특정한 지역이나 영토에서 종족이 뒤섞인 인구를 균일화하기 위해> 특정 인구를 <강제로 쫓아내는 것>으로 정의한다. 나아가 주택을 파괴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지역의 역사를 지워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종족 청소 개념이 생겨나기 40여 년 전에 일어났지만, 파페는 당시에 이스라엘 건국 세력이 벌인 행동을 명백한 종족 청소의 사례로 규정한다. 한편으로는 아랍인, 유대인이 섞여 살던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도록 아랍인을 강제로 쫓아내려 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건국 세력이 <플랜 달렛>이라는 종족 청소 계획를 세우고, 이를 토대로 군대를 지휘해 <주택, 재산, 물건 등을 방화>하고, <사람들을 추방>했으며, <쫓겨난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잔해에 지뢰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가장 악명 높은 청소는 <데이르야신>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났다. 파페에 따르면, <유대 군인들은 마을에 쳐들어가면서 집마다 기관총을 난사해서> 주민을 죽였고, 그들의 시체를 훼손했다. 여성을 강간했으며 아이들을 벽에 세워 놓고 그들에게 <재미 삼아> 총을 쐈다.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집을 포기하고 도망치지 않으면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위와 같은 끔찍한 이야기들은 이스라엘의 공식적, 대중적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1948년의 상황에 대해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에 이어 아랍에 의한 <제2의 홀로코스트>가 임박했던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군사적 수단을 정당화했고, 이스라엘 교과서는 <유대 쪽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냥 남으라고 설득했다>는 거짓 역사를 서술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1948년 3월에 위협받은 쪽이 자신들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때 잠시 팔레스타인인들을 도우려고 주변 아랍 국가에서 파견한 군대가 유대 쪽 군대에 피해를 줬지만, 파페에 따르면 <유대인 공동체는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항복해야 하는 사태를 걱정할 일이 전혀 없었>고 이스라엘은 별 어려움 없이 팔레스타인 청소를 수월하게 진행해 나갔다. 그 결과 1948년 팔레스타인인의 85퍼센트가 난민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의 78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렇다. 팔레스타인 내부에는 시온주의 세력에 저항할 지도부가 거의 없었고 전투 조직들도 자취를 감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조직들은 모두 <유대 민족의 고국을 팔레스타인에 세워주겠다>고 약속한 영국의 친유대적 기조에 반발해 일으킨 1936년 반란에서 영국군에 의해 망명길에 오르거나 해산되었다. 팔레스타인은 당시에 영국의 위임 통치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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