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철학적 성찰

(시사매거진_이은진 기자) 신간 소개

"미래는 예측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비전의 영역이다. 우리가 미래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찾으려 하고 어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따라 비전의 내용도 결정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기술 중심적 미래 연구는 인간을 탐구의 중심에 두는 인문학적 성찰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필요성에 대한 응답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책이 출발하는 지점은 우선 개념적 혼란을 바로잡는 것이다. 인간 성능의 증강을 가리키는 ‘포스트휴먼’은 ‘트랜스휴먼’이라는 용어와 함께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트랜스휴머니즘과 달리 ‘포스트휴머니즘’은 근대의 인간중심주의(humanism)을 비판하며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측면을 지칭하는 것일 뿐, ‘포스트휴먼’이라는 미래의 인간상과는 전혀 무관한 용어이다.(이 책의 시리즈 이름인 ‘포스트휴머니즘 총서’도 마찬가지다.) 포스트휴먼의 개념적 윤곽은 1998년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에서 말한 내용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응용이성을 통하여, 다시 말해서 노화를 제거하고 인간의 지적, 신체적, 심리적 능력을 대폭 향상시키는 데 두루 이용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을 통하여 인간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가능성과 희망을 높이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운동이다.”(본문 28쪽) 한마디로 ‘트랜스휴먼’ 또는 ‘포스트휴먼’이란 첨단 기술을 통해 성능이 향상된 인간을 가리키며, 트랜스휴머니즘은 이를 통해 인간의 가능성을 넓히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에 숨겨진 유물론적 환원주의와 기능주의의 문제

그렇다면 포스트휴먼 또는 트랜스휴먼의 비전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일까? 이 책의 목적은 트랜스휴머니즘의 기술적 수준을 확인하고 평가하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트랜스휴먼 담론에 숨은 철학적 전제들을 검토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저자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유물론적 환원주의’와 ‘기능주의’라는 두 가지 결정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물론적 환원주의는 인간 두뇌의 기능을 물질로 환원하여 재구성하려는 시도로서, 뇌과학이나 나노기술의 철학적 바탕을 이룬다. 그러나 이 입장은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의 체계를 물질로 환원함으로써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화폐를 그 물질적 기반인 종이로 환원할 수 없듯이 지능이나 의식 역시 뇌세포나 반도체라는 매체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기능주의는 지능이 물질적 기반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라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지능을 ‘몸’과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는 어떤 기능으로 본다는 데 오류가 있다. 인간의 지능이란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행동양식에 따라 가변적이고 지향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몸을 실체적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을 통해 몸에 고유한 방식으로 생각한다. 결국 몸이 구현하는 지능과 반도체의 지능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인공지능 내지 인공생명 기술이 말하는 지능과 생명의 완전한 재현이란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능과 생명은 단순히 탄소라는 물질에 기초하거나 그것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라, 생명체로 활동함으로써 자신의 환경을 구성하고 통일된 의미 체계로 재조직하는 실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과 도구,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깊이 탐구했던 하이데거를 통해 이러한 논의를 심도 깊게 펼쳐간다.

 

아이패드, 가상현실, 3DTV, 구글 글래스의 가능성과 한계

이 책은 트랜스휴머니즘의 미래 비전을 단순히 이론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 실제로 침투하고 있는 첨단기기들의 분석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패드와 같은 휴대형 첨단기기, 가상현실과 3DTV, 구글글래스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들이다.

저자는 우선 아이패드를 인간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도구의 의미를 잘 구현한 기기로 평가한다. 도구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인간에게 밀착된 기기로서 도구의 존재방식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가상현실이나 3DTV는 인간의 지각을 교란함으로써 의식을 파괴하는 위험성이 있다. 그것들은 사용자의 눈과 몸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그의 지각에 개입함으로써 실재보다 나은 모사현실을 제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지각은 단순히 데이터로 환산될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을 교란할 때 인간의 경험세계는 무너져버릴 수 있음을 경고한다. 구글 글래스와 같은 웨어러블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지각과 행동은 입출력되는 데이터들이 아니라, 지각되는 세상을 지각과 동시에 구성해내는 적극적 활동이다. 그러나 구글 글래스는 인간의 눈과 몸을 단순한 렌즈나 기계적 구성요소로 간주함으로써 인간-환경 간의 상호작용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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