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제로 선언’ 오히려 사회적 갈등만 키워

[시사매거진 234호=신혜영 기자] J노믹스 ‘비정규직 제로 선언’. 누구에게는 현실이 되어 희망을 줬지만, 누구에게는 달콤한 말뿐인 희망고문이었다. 지난 9월 11일 교육부의 발표는 정규직을 꿈꾸고 있는 교육 분야 비정규직들에겐 희망고문이었다. 특히 정규직 교사로의 희망을 안고 있었던 기간제 교사들의 실망이 더 컸다. 기간제 교사들은 연일 ‘전면 재검토’를 외치며 교육부 심의 결과를 강력 규탄했다. 이번 교육부 발표로 오히려 학교 구성원들의 갈등만 커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출처_뉴시스]

지난 9월 11일 교육부는 교육분야 비정규직 근로자중 5분의 1가량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 차별된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적용받아 ‘중규직’이라고 불린다.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는 이날 교육 분야 비정규직 6만 9000명중 단위학교 회계를 통해 임금을 받는 영양사나 사서, 과학실험 보조원 등 국공립 학교회계 직원 약 1만 2000명과 유치원 돌봄교실 강사·방과후과정강사 1034명 등 1만 3000여 명만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교육분야 비정규직중 절반가량인 기간제교사(3만 2734명)를 비롯해 학교강사 직군 7개중 비중이 큰 영어회화 전문강사 3255명과 초등 스포츠강사 1983명, 산학겸임교사 404명, 교과교실제 강사 1240명 등 3만 9616명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다.
별도의 법률 개정 없이 기간제 교사와 강사 등의 정규직 전환은 어렵다는 것이 교육부의 이유다. 정부 가이드라인에는 기간제 교사, 초등 스포츠강사 등이 정규직 예외 사유로 규정(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예외 인정)돼 있는데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채용 절차상 공정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익현 교육부 지방교육지원국장은 “심의위에서 전환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준은 한마디로 채용상 공정성의 원칙을 지켜야 된다는 것”이라며 “기존 정규교원 임용에서의 공정성 원칙이 다른 방법을 통해 무너진다면 다른 원칙들보다 사회적인 영향이나 형평성 측면에서 논란이 우려돼 그 부분을 가장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의 이러한 방안에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기간제 교사들은 연일 ‘전면 재검토’를 외치며 교육부 심의 결과를 강력 규탄하고 나섰다.
기간제 교사들은 “전국 4만 7000여 기간제 교사들을 농락한 행위”라며 “실망과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간제 교사들은 20여 년간 교육현장에서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당하면서도 교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학교교육 발전에 헌신했다”며 “정규직 열망을 이토록 잔인하게 짓밟은 문재인 정부가 과연 진정으로 비정규직 제로화를 하고자 했던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심의위가 권고하기로 한 기간제 교사 처우개선도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족쇄는 채워둔 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미봉책”이라며 “심의위 결과를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는 “앞으로 모든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가 관철될 때까지 대정부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신익현 교육부 지방교육지원국장은 심의위에서 전환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준에 대해 “채용상 공정성의 원칙을 지켜야 된다는 것”이라며 “기존 정규교원 임용에서의 공정성 원칙이 다른 방법을 통해 무너진다면 다른 원칙들보다 사회적인 영향이나 형평성 측면에서 논란이 우려돼 그 부분을 가장 고려했다”고 설명했다.[출처_뉴시스]

섣부른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언, 갈등만 키워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공공부문에서 정규직 전환이 확산되면서 교육계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렇기에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의 입장에서는 교육부의 방침에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방안으로 섣부른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언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아닌 사회적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규직 기대감에 부풀었던 기간제 교사와 강사, 채용상 역차별을 우려한 임용준비생 간 적지 않은 갈등이 초래됐다는 비판이다.
기간제 교사는 교육감의 발령을 거치지 않고 학교 측과의 계약을 통해 정해진 기간 동안 일하는 교사로 현재 학교에 이들의 비중은 10% 정도다. 정규직 교사는 임용시험을 보고 정식으로 교육감의 발령을 받은 교사다. 경쟁이 치열한 임용시험을 치르고 정규직 교사가 된 이들 입장에서는 기간제 교사가 정규직 교사로 전환되는 것이 반갑지 않은 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임용시험에 합격해도 발령 받지 못한 대기자만 초‧중등 전체적으로 4000여 명이 넘는 상황에서 단순 정규직 전환에 반대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애초 교육 정규직 전환심의를 두고 정류직 교사들 사이에서는 “임용시험을 보지 않고는 정교사가 될 수 없다”며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시간 정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시험을 본 입장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이 정규직 전환이 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남양주의 한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A씨는 “시험을 보고 교사가 된 입장에서 아무런 과정 없이 단지 정부의 방안대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자신들이 치열하게 공부한 대가가 무의미하다”며 조심스레 속내를 내비쳤다.
교총은 ‘기간제 교사는 정규직 전환 심의대상이 아니다’며 청원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교육부의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강하게 반대했다. 심의위는 사용자측 4명, 교총 1명, 학부모 1명, 외부전문가 2명,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추천 전문가 각 1명 등으로 구성됐는데, 이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추천 전문가로 심의위에 참여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당사자 빠진 심의위가 시작부터 결과까지 파행으로 이어진 게 드러났다”며 “심의위는 11명이 성원이었으나 문제를 제기한 전교조 불참, 아프다는 이유로 불참한 위원 등 출발부터 파행이 예고됐다”고 말했다.
지난 8월 8일 구성된 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는 7차례에 걸쳐 교육부와 교육부 소속기관(6개), 국립 특수학교(5개교)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범위와 방식 등을 논의해왔다.
 

교육부 정규직 대신 처우 개선 방안 마련

이번 기간제 교원의 정규직화 추진은 임용고시 출신 교사와의 형평성 문제와 관련법으로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낮았다는 지적이다.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은 “서로 특성이 다른 기간제 교사와 강사들을 한 곳에서 동시에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논의한 것은 잘못됐다”며 “공감대가 있는 직종을 묶어서 협상하도록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교육 정규직 전환 무산에 대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교육당국이 기간제 교사와 학교강사에 대한 합당한 처우개선 방안을 빠른 시알 내에 내놓고, 교육현장의 소외감이나 갈등에 대한 해소 방안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교직사회의 화해와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면서 “기간제 교사와 강사가 일한만큼 대우받을 수 있도록 처우와 근로조건 향상에 힘써 달라”고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학교 비정규직 양산 진단과 정부의 책임 규명, 교원의 양성·임용·정원관리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 비정규직의 요구에 대한 사실 확인 등 심층적이고 정밀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일단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려우니까 처우를 개선해 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방학 기간을 채용 기간에서 제외해 이른바 쪼개기 계약이나 과다한 업무 등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성과 상여금을 비롯해 복지비 등도 정규직 수준으로 올려주는 방안도 발표했다.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간제 교사도 단계적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교육부 지방교육지원국의 신익현 국장은 “교원 정원 확대 등을 통해 정외 외 기간제 교원과 사립학교의 기간제 교원도 단계적으로 축소해 나갈 예정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섣부른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언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아닌 사회적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이다. 정규직 기대감에 부풀었던 기간제 교사와 강사, 채용상 역차별을 우려한 임용준비생 간 적지 않은 갈등이 초래됐다.[사진_뉴시스]

비정규직 정규직화 부정적 영향 우려

노동계에선 이번 결정이 향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조할 권리 보장 등을 촉구하며 하반기 ‘총력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조할 권리 보장 등 정부의 노동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투쟁의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다.
민노총은 지난 9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정부의 ‘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은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면서 “요란한 빈수레,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촛불항쟁으로 뜨거웠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또 다시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J노믹스 출범 초기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였을 때부터 줄곧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며 일자리 공약을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에서 약 4조 2000억 원을 투입해 OECD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공공부문 고용 비중을 절반 수준으로 올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10조 원 규모의 추가 경정 예산 편성 추진과 81만 개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소방관, 사회복지전담공무원, 교사, 경찰관 등 국민의 안전과 치안,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 일자리 17만 개와 공공의료 등 사회서비스 공공기관 일자리 34만 개,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30만 개 내외를 확충하겠다고 했다. 민간부문 일자리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줄이고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일자리 관련 방안은 먹고 사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이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연봉에서부터 복리후생까지 다르다.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정부의 방안대로 정규직화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정규직이 된 이들의 입장에서는 비정규직들과이 형평성을 운운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방안은 좋다. 국민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한 건 모두가 바라는 염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지속되어왔던 보이지 않은 선을 넘기엔 그만큼의 노고와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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