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한목소리 시행 전 ‘신중 검토’

지난 2015년 코엑스에서 개최된 채용박람회 '스펙깨기 능력중심 채용박람회'에 참석한 취업준비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사진_뉴시스)

(시사매거진233호 / 김옥경 기자) ‘블라인드 채용’이 한창 언론에 오르내리던 지난 7월 잡코리아는 인사담당자 418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차별 없는 공정한 채용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는가’라는 질문에 82.5%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7.5%에 그쳤다. 이어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 공평한 평가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는 69.1%가 ‘동의한다’고 응답했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11.0%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 ‘스펙 위주의 채용 관행이 사라지고 인성과 직무능력 중심으로 바뀔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응답이 55.5%로 겨우 절반을 넘는데 그쳤다. 더불어 또 다른 스펙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34.9%로 다른 질문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조사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블라인드 채용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복수응답)다. 잡코리아의 발표에 따르면 ‘인재 채용을 위한 일정한 기준, 판단 근거가 모호해져서(47.5%)’ ‘블라인드 채용에 맞춘 새로운 스펙이 등장할 것이라서(45.0%)’ ‘외모나 임기응변과 같은 단편적인 면들로만 지원자를 판단할 우려가 있어서(45.0%)’ 등이 대표적이다. 결론은 블라인드 채용 시 인사담당자들이 확신할 수 있는 면접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정부의 교육이 실시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공공부문에 한정되어 있어 민간 기업까지 확대되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당분간은 일반채용과 블라인드 채용이 함께 시행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인크루트가 대기업 19곳, 중견기업 37곳, 중소기업 53곳 등 상장사 109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이런 사정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기업 규모별 이력서 항목별 중요도’라
는 이 설문조사에서 ‘출신대와 전공’이 여전히 중요한 항목으로 집계되었다. 이어 ‘학점’ ‘어학·자격’ 순으로 조사되었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쪽이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져,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노하우가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취업준비생은 기업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입수해 자기에게 맞는 취업 방식을 선호하는 기업에 우선 지원하는 것이 유리할 전망이다.

취준생 ‘신중 검토’ 한목소리, 역차별 주장도
정부에서 밝힌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는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이다. 채용 과정에서 학연이나 지연, 어학점수 같은 스펙 등으로 차별받지 않고, 직무와 관련한 경험이나 교육, 능력 등으로 공정한 평가를 받게 하겠다는 의미다. 때문에 올 하반기부터 모든 지방공공기관 응시생들은 입사지원서에 학력이나 어학점수 같은 사항을 기재할 수 없고, 면접관들은 인적사항에 대해 질문할 수 없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혼재한다. 너무 급박하다는 것이다.
청년 시민단체인 ‘청년이여는미래’도 ‘블라인드채용 트렌드리포트’를 발간하며 이러한 점을 지적하였다. 명확한 채용툴(tool)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취업시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시행 전 면밀한 검토와 점검사항에 대한 보완작업을 요청하고 있다. 더불어 찬성하는 의견은 ‘공정한 채용문화 확산과 학벌사회 타파’에 방점을 찍는 반면 반대하는 의견은 ‘개인 노력에 대한 역차별과 모순’을 문제점으로 들고 있다. 일례로 서비스업에서는 외모나 목소리가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말 인크루트가 취준생 3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블라인드 채용과 취업 사교육’이라는 설문조사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다면 어학·학점·인턴 등 기존의 스펙 준비를 계속할 의향
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6%가 ‘있다’고 답변하였다. 이유로는 ‘어차피 기본스펙은 갖춰야 할 것 같아서(39%)’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지 않는 기업들도 별도로 준비해야 함으로(21%)’ ‘(스펙이) 기업 실무에는 꼭 필요한 요소일
것 같아서(19%)’ ‘자기만족 또는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13%)’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명문대생들을 중심으로 ‘역차별’에 대한 주장도 일고 있다. 이들 대학의 학생 커뮤니티에는 지난 7월 초부터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학벌도 노력의 결과물로 볼 수 있는데, 무조건 평가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또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공공기관은 본사가 이전한 지역의 광역자치단체에서 최종 학교를 졸업한 자’를 신규 채용인원의 30% 이상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한다. 때문에 초·중·고등학교를 해당 지역에서 나왔다 해도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면 해당사항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블라인드 채용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현장의 불만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블라인드 채용 성공사례 꼽히는 ‘코바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이하 코바코)는 선도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미 2015년부터 전면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며 시스템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채용 실시 후 바뀐 코바코의 면면들을 살펴보자면, 첫째 비수도권 대학 출신이 20%에서 26%로 늘었고, 직무능력 위주로 뽑다보니 수습기간도 12주에서 6주로 단축되었다. 여성 입사자 비율도 36%에서 48.2%로 확대되었고, 이직율은 0%에 가깝다. 또한 내부 설문조사 결과 직무 중심 채용과정에 따른 만족도도 80%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 코바코에 입사한 신입사원 A 씨는 “지방대학 졸업자에게 서류통과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관심 있는 분야가 있어 오래 전부터 열심히 준비하고 경험을 쌓아왔지만 그간의 노력을 보여줄 기회를 잡기도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또 다른 신입사원 B 씨는 “마케팅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한 우물만 팠다. 학교 축제 콘텐츠를 제작하고, 파워포인트 디자인을 개발했던 경험 등은 마케팅 전문가가 되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었다”라고 털어놓는다.
코바코의 블라인드 채용은 2015년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신공사 출범과 함께 대내외적으로 전문 역량 향상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었는데, 핵심 사업에 인력을 집중해 사업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부적으로도 직무 중심의 인력운영체제 확립이 필요해지면서 채용에서부터 인사, 평가 등 인사 전반에 ‘직무중심 인력운영’이 화두가 되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있었다.
김민정 코바코 인사과장은 2차에 걸친 면접전형의 경우 면접과정, 면접방식, 면접문제 등을 필요한 인재상에 최적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전제하며 내부적으로 창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창의 면접’을 가장 치열하게 구상한다고 설명한다. 또 질문 구상은 면접 전날까지 이어지고, 질문 내용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동봉해 지원자에게 전달한다. 이외에도 코바코 면접관들은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를 밑줄까지 그어가며 탐독한다고 말하며 여타 서류에서 개인의 인적사항을 전면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별 특성에 맞는 질문을 하려면 자기소개서를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고 귀띔한다. 그러면서 김 과장은 가장 적절한 인재를 뽑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경주해갈 것이라고 덧붙인다. 한편 한국철도공사, 한국예금보험공사 등도 블라인드 채용의 우수사례로 꼽히고 있다.

대기업 하반기 공채 9~10월 집중할 듯
잡코리아가 지난해 하반기 대졸 신입 공채를 진행한 1,000대 기업 중 468곳의 채용일정을 분석한 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그 결과 9월에 모집을 시작하는 기업이 52.8%로 절반 이상에 달하고, 10월에 모집을 시작하는 기업도 23.1%로 대부분 기업의 하반기 공채가 9~10월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실제 지난해 9월 첫째 주 대졸 공채를 시작한 기업이 148개 사로, 하반기 공채를 진행한 기업의 31.6%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대졸 신입 공채 10건 중 3건 정도가 첫째 주에 시작했다는 것이다.
잡코리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대기업 공채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는 만큼 예년의 채용 일정을 미리 파악해 빠른 시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는 것이 유리하다. 때문에 올 하반기 신입 공채 또한 9~10월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며,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져 더 많은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이에 일자리위원회와 고용노동부는 ‘청년일자리 선도기업 현장 간담회’를 개최하며 취준생들에게 가중되는 부담과 혼선을 해소하기 노력하고 있다.
지난 8월 16일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이성기 차관, 중소벤처기업부 조주현 기술인재정책관은 ㈜마이다스아이티 세미나실에서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일자리 창출은 중소·벤처기업 활성화에 달려있다는 인식하에 이날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행사에 참석한 이 부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일자리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중소·벤처기업육성방안과 ‘청년 구직난-중소기업 구인난’의 심각한 미스매치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6개 우수 기업 대표들과 근로자들과의 현장 간담회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들 6개 중소기업들의 공통점은 첫째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람중심경영을 하는 것이며 둘째는 기업별로 차이는 있지만 블라인드 채용과 낮은 비정규직, 그리고 높은 수준의 복리후생, 체계적 인력 양성 등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자리위원회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들 기업을 모델화하여 다른 중소기업들에도 적절한 시스템을 적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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