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희생, 그리고 탁월한 경영 전략으로 위기 극복

[시사매거진 232호=신혜영 기자]  치열한 비즈니스 사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탄탄한 기업경쟁력을 갖추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50년만 넘어도 우량기업으로 꼽히는 기업환경에서 무려 170년이란 세월 동안 기업의 자리를 지켜온 지멘스는 가히 글로벌 기업이라 칭할 만 하다.

 

독일 베를린과 뮌헨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전기전자기업 지멘스(Siemens)는 다국적 기업으로 현재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약 35만 명의 직원이 산업, 에너지, 헬스케어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첨단 제품과 솔루션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등과 같은 전 세계가 당면한 이슈와 관련해 연구개발비의 50% 이상을 환경 및 기후 보호에 사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는 등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에너지 기술과 환경 보호분야에서 중점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해상 풍력 터빈 분야에서 전 세계 1위이며, 복합화력발전 터빈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멘스는 1847년 10월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에른스트 베르너 폰 지멘스(Ernst Werner von Siemens, 1816∼1892)와 기계공인 할스케가 함께 창업한 ‘지멘스-할스케 사’가 시초다.

발명가, 전기기술자, 공업가 등으로 유명한 집안에서 태어난 지멘스는 가난 탓에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포병학교 사관후보생이 되어 탄도학 수학 물리학 등의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포병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연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 베르너는 1833∼1848년 조병창에 근무하던 중에 병기 개량에 두각을 나타내고 지침전시기 개량과 구타페르카를 감은 지하 케이블 발명에 자신감을 얻어 전신사업의 장래성을 예상하게 되었다. 1846년 장거리 무선전신에 쓰일 수 있는 다이얼 전신기를 발명한 베르너는 이듬해, 기계공이었던 J.G. 할스케와 함께 전신기 제작과 부설을 하는 지멘스-할스케 회사를 베를린에 창설했다. 설립 초기에는 전신기를 제작해 부설하는 업체로 출발, 당시 유럽에서 전신망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멘스-할스케는 설립과 동시에 대규모 전신망 사업을 수주했다. 1848년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에 이르는 500킬로미터 구간에 전선을 놓았다. 이것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전선이었다. 1850년대에는 러시아 전역을 연결하는 전신망 사업을 진행했다.

영국에서 동생인 빌헬름과 협력해 해저 케이블 부설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유럽 전기제작업계에서 지멘스-할스케의 지위를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후 1857년에는 발전기의 실용화를 꾀해 전기자를 개량했고, 1867년에는 자동발전의 원리를 발견했다. 이 자동발전 원리는 발전기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한편, 1866년은 베르너에게 잊지 못할 해였다. 기계의 주요 동력이었던 증기터빈을 대체할 수 있는 전기 동력 장치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세계 100대 발명’으로 꼽힐 정도로 전기 동력 장치는 중대한 발명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로서 지멘스-할스케사는 전기를 이용한 조명기기와 전기철도 전기모터 등의 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여기에 자신이 태어난 프로이센의 하원의원이 되어 독일 공업의 지위를 국제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실현시켰으며 특허법을 공포하고, 물리공학, 국립연구소 창설, 공과대학 내 전기공학강좌 독립 자국의 공업을 위해 다각도로 힘썼다.

특히 1874년 아일랜드와 캐나다를 잇는 대서양 횡단 해저케이블 건설로 일약 세계적인 기업가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1897년 법인으로 전환되었고 여러 회사와 합병을 거듭하면서 1966년 오늘날의 지멘스가 탄생되었다. 1880년대 조명 부문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이후 인공 심장박동기, 실시간 진단 초음파기계, 컬러 액정휴대폰 등이 모두 지멘스 기술력으로 탄생했다. 1919년 6월 지멘스-할스케, 독일 가스, AEG 등 3사의 조명사업 부문이 통합

조 케저(Joe Kaeser) 지멘스그룹 회장이 지난 2015년 10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 2층 다이너스티 홀에서 열린 한국공학한림원(NAEK) 20주년 국제 컨퍼런스에서 ‘제조업 패러다임의 전환, 제 4차 산업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강연 하고 있다. [사진출처_뉴시스]

되어 오스람이 탄생했다.

1892년 베르너가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 지멘스의 경영권은 동생인 칼 폰 지멘스에게 넘어갔다. 형 살아생전에 러시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도 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해 베르너의 두 아들 아놀드와 빌헬름에게 경영권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내 1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맞아 지멘스-할스케는 영국과 러시아 등에 있는 해외 자산을 대부분 몰수당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놀드와 빌헬름마저 1918년, 1919년 연이어 사망하고 말았다.

경영권은 다시 베르너의 두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막내아들 칼 프리드리히에게 돌아갔다. 경영권을 넘겨받을 당시만 해도 지멘스에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1차 대전으로 잃은 자본은 40%가량이었으며 해외 자산은 물론 특허권도 상실된 상태였다. 하지만 칼 프리드리히는 굴하지 않았다. 모든 사업부문들 지멘스-할스케와 지멘스-슈커트라는 두 개의 지주회사 체제로 조직을 개편하고 경영이사회, 감독이사회를 통해 지배구조를 탄탄하게 다져나갔다. 그러면서 지멘스는 다시 제 모습을 서서히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시련이 지멘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치.

대부분의 독일 기업들이 그랬듯이 히틀러의 나치정권에는 지멘스도 손 쓸 수 없는 위기와 직면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지멘스는 민간용 제품 생산이 전면 금지됐고 전쟁물자 생산만 가능하게 됐다. 또한 연합군의 폭격에 따른 피해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또한 연합군측이 지멘스를 비롯한 독일의 대기업들을 해체하려 들었다. 대기업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나치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칼 프리드리히가 연합군측을 끈질기게 설득해 겨우 그룹 해체를 막았고 결국 연합군측의 지멘스 해체계획은 1951년 철회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지멘스는 유럽에서 네덜란드의 필립스에 버금가는 전기기기 제조회사가 되었다.

지멘스는 독일의 대표적인 콘체른(Konzern·대규모 기업집단)이다. 전선케이블, 원자력발전소, 의료기기, 조명기구, 고속철도, 자동차부품 등 15개의 서로 다른 사업 분야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콘체른의 중핵은 지멘스-할스케로서 주로 통신기기에 중점을 두며, 산하의 지멘스-슈커트는 원자로를 포함하는 중전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밖의 산하회사로는 가전기기·음향기기·레코드·계측기·전기의료기기 제조회사 등이 있다.

지멘스가 지금의 지배구조의 골격을 갖게 된 것은 칼 프리드리히 폰 지멘스의 아들인 에른스트가 감독이사회 의장을 맡은 1966년부터다. 당시 독일 정부가 대기업 집단에 속하는 회사들 간의 결합규제를 보다 강화하도록 증권법을 개정, 지멘스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지멘스-할스케, 지멘스-슈커트, 지멘스-라이니거 등 세 개의 지주회사를 거느리고 있었던 지멘스의 공동 감독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에른스트는 지주회사들을 하나로 통합해 그룹 형태로 지멘스를 조직을 새롭게 개편했다. 그리고 유능한 전문 경영인들을 등용해 회사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탈바꿈시켰다.

이렇게 지멘스는 그동안 제1‧2차 세계대전‧냉전‧대공황‧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오일쇼크‧소련 해체와 독일 통일, 그리고 인터넷 발전과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를 모두 극복했다. 170여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위기와 부활을 거듭해온 지멘스가 굳건히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은 그 역사 속에서 많은 이들의 용기와 희생, 그리고 탁월한 경영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멘스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모든 국가의 법규와 정책을 충실히 준수해 영업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법규와 정책을 위반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지멘스는 전 세계 모든 임직원에게 윤리적이고 합법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사내의무정책’을 수립했다. 일상 업무와 고객, 파트너사, 직원 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이 정책은 또한 내부 준법의식 고취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과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명확한 지침을 통해 전 임직원들이 모든 법정 규정이 준수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며, 사업컨설턴트를 상대할 때 올바른 대가 지불 절차 및 거래와 관련된 개정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준법 프로그램을 이행하기 위해 지멘스는 사내 글로벌 준법감시조직을 구성했다.

준법 헬프데스크 ‘Tell us’는 1년 365일 지멘스 임직원 또는 관리자, 고객, 공급업체 등 지멘스와 관계있는 기타 사업파트너로 하여금 지멘스 사업행동지침에 위배되는 행위를 신고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신고 내용의 비밀유지는 철저히 보장된다. 한편 지멘스는 임직원 및 제3자가 기업 내 부당한 사업거래를 외부 옴부즈맨을 통해 비밀을 보장해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옴부즈맨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지멘스는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등과 같은 전 세계가 당면한 이슈와 관련해 연구개발비의 50% 이상을 환경 및 기후 보호에 사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는 등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에너지 기술과 환경 보호분야에서 중점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2014년 3월 26일 진행된 ‘지멘스그린스쿨’.[사진출처_뉴시스]

지멘스의 또 하나의 경영 전략은 ‘환경보호’다. 지멘스는 지구온난화, 기후 변화 등 전 세계가 당면한 이슈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 기술과 환경 보호에 중점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지멘스는 일반 가정용 제품부터 교통, 발전 및 송·변전, 산업시설 및 운송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고효율 제품 및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지멘스의 대표적인 기후 보호 기술로는 최대 60% 이상의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는 ‘고효율 복합 화력발전소’로, 기존 발전소에 비해 CO₂배출량을 연간 약 4만 톤 이상 절감할 수 있는 차세대 친환경 발전 모델과 석탄가스화 복합 화력발전과 CO2세정 기술을 개발, 향후 탄소 포집 및 저장을 통해 CO₂배출량 제로의 화력발전소 실현하는 ‘석탄가스화 복합 화력발전소’, 전 세계 약 6,400여 개의 풍력 터빈을 통해 연간 1,000만 톤가량의 CO₂배출량 감소시키는 ‘풍력 에너지’, 레이저 펄스 전력변환기와 부품의 80%가 감소된 전자 통제 시스템으로 뛰어난 안정성, 에너지 소비량 감소, 설비의 부피를 최소화하는 ‘고전압 직류송전시스템’이 있다. 또한, 초경량 소재를 사용, 제동 에너지를 전력 시스템으로 재생함으로써 약 50%의 에너지 절약 및 40%의 CO₂배출 감소시키는 ‘혁신적인 드라이브 시스템’과 교통 통제 및 정보 서비스 시스템 솔루션으로 교통체증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 및 20%의 CO₂배출 감소시키는 ‘지능 교통관리 시스템’, 전 세계 약 6,500개의 건물에 에너지 효율 기술을 적용해 CO₂배출량 240만 톤 감소와 함께 에너지 비용 10억 유로 이상을 절약할 수 있는 ‘에너지 효율 계약’, 기존 전구 대비 최고 50배 긴 수명을 지닌 절전 및 LED 전구로 전력 소비를 80% 낮추고 절전 전구 하나 사용 시 0.5톤의 CO₂배출량 및 수백 유로의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오스람 절전 조명기구’ 등이 지멘스가 환경 및 기후보호를 위해 내세우고 있는 기술들이다.

지멘스는 2009년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를 보여주었다. 지속적으로 핵심 사업에 집중한 지멘스는 주요 성장 동력 중 하나인 친환경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판매 및 일반관리 비용절감을 위한 구매 관리 프로그램은 지멘스의 경쟁력을 더욱 향상시켰다.

2010년대 정보기술 솔루션 및 사업부문을 프랑스 IT 서비스업체 에이토스에 매각했다. 2012년 지멘스는 배터리 공급업체를 일본 파나소닉에서 한국 LG화학으로 변경했다. 2013년 자회사인 오스람이 분리되어 나갔고, 오스람은 별개의 기업으로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 2014년 병원정보기술 사업을 미국 헬스케어 IT업체 서너에 매각하는 등 다시 사업을 재편했다.

한편 국내에는 1950년 대 진출해 선진 기술과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다양한 사업협력과 적극적인 투자, 개발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지멘스가 지금은 IT·에너지·헬스케어 분야의 세계적인 거대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지멘스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 몇 년 전 사업 부진, 부패 스캔들 등으로 기업 신뢰도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것. 당시 CEO가 퇴진하고 그 자리에 피터 뢰셔(Peter Loescher) 회장이 부임했다. 피터 뢰셔는 2006년 발생한 ‘뇌물 스캔들’을 계기로 윤리 경영을 지멘스의 화두로 제시했다. 지멘스에게 뢰셔 회장은 그 의미부터가 남다르다. 160년이 넘는 지멘스 역사상 최초의 외부 CEO였으며 또한 최초의 외국인 CEO다. 2005년 557억 유로에 그쳤던 지멘스의 매출은 뢰셔 회장 부임 이후 2006년 668억 유로, 2008년에는 773억 유로까지 급격하게 치솟았다.

뢰셔 회장의 성공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복잡했던 사업 부문을 산업, 에너지, 헬스케어 세 부문으로 단순화하고 거대 트렌드 분석을 통해 미래 성장 시장을 가려낸 뒤 1∼2위를 선점하는 전략을 통해 부활을 꿈꾸었다.

2010년까지 1만 7,000여 명을 감원한다는 결정도 ‘선택과 집중’의 대표적인 사례다. 뢰셔 회장은 취임 초기 트렌드를 분석해본 결과, 경기 둔화를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면서 감원 결정이 금융 위기 여파를 견뎌내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 사무직을 제외하면 2006년보다 오히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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