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대탈출의 카타르시스와 영화 밖 군함도의 씁쓸한 대비

(시사매거진 = 이은진 기자) 1940년대 조선인을 강제징용한 군함도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탈출’이라는 상상력을 더한 영화 <군함도>가 7월 26일 화제를 모으며 개봉했다.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는 당시 한·일 간 역사 반영 문제로 대립이 있었으나 ‘군함도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유네스코 측의 권고를 받아들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본은 ‘조선인 강제노역 인정’과 ‘희생자를 기리는 안내 센터 설치’ 그리고 이에 대한 약속 이행 보고서를 2017년 12월 1일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하기로 했으나 몇 달 남지 않은 현재까지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일본 산업화의 자랑거리로 홍보되고 있는 ‘군함도’, 그 내막에는 처참하게 죽어간 수많은 조선인들의 눈물이 바다를 이룬다.

영화 군함도 / 감독 류승완 / 132분

<군함도>는 강렬한 체험을 주는 영화다. 무채색의 처참한 지하 탄광 장면을 내내 숨죽이고 마주하게 된다. 지상에는 거대한 파도가 섬을 통째로 삼킬 듯 사면을 에워싸고 있지만 극의 후반부,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조선인 대규모 탈출은 조금의 위로가 될 지도 모른다. 극장 밖을 나선 후에도 쉬이 가시지 않는 먹먹함이 이어진다. 그날의, 그들의 아픔을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곳곳에서 1940년대 군함도의 역사적 사실을 면밀히 알고자하는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영화 <군함도>가 올 여름 흥행과 사회적 영향력 두 가지를 잡을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 중 하나다.

비좁은 탄광에서 강제노역하는 영화 속 조선인

군함도가 된 하시마는 ‘지옥’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현 남서쪽으로 1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으로 ‘하시마(はしま)’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군함의 모양을 닮아 ‘군함도(軍艦島)’라 불린다. 하시마가 역사가 세상에 알려진 건 1810년 석탄이 발견된 후 1890년 탄광 사업을 위해 미쓰비시 사(社)가 섬을 매입하면서부터다. 섬 개발을 위해, 섬 주변부에 시멘트를 부어 면적을 넓히고,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를 건설하며 점차 군함의 모양새가 되었다. 하지만 번영하는 군함도의 이면에는 강제징용되어 끌려온 조선인들의 아픔이 감춰져 있다. 팽창하는 제국주의와 함께 1938년,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을 발령하여 다수의 조선인을 하시마로 강제징용했다. 지하 1,000m 이상의 가파르고 비좁은 막장에는 어른․아이 구분할 것 없이 서로 고무줄로 묶여, 포복자세로 12시간 이상을 일했다. 그곳은 숨쉬기조차 힘든 곳이었다. 스며드는 바닷물과 온갖 분비물이 뒤범벅되어 피부가 짓물고, 탄광 폭발사고와 각종 병으로, 지상에서는 영양실조와 매맞음으로, 탈출 시도는 익사로, 강제노역한 조선인에게는 죽는 순간까지도 고통스러웠다. 군함도가 된 하시마는 지옥이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섬을 보며 위압감을 느낀다

각자도생하는 다양한 인물상과 톱스타들의 연기투혼

영화 <군함도>에는 다양한 군상이 나타난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군함도에 끌려와 각자도생하는 조선인의 모습은 마치 실제 있을 법한 캐릭터로 여겨진다. 또한 주연배우 개개인의 체중감량과 몸을 사리지 않는 강렬한 액션신, 시대의 암울함을 나타내는 감정연기의 내공은 극에 대한 몰입을 극대화한다. 특히 이전에도 류승완 감독과 다수의 작품에서 만났던 배우 황정민이 <군함도>에서 조선인 악단장 이강옥을 맡아 내공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취직 시켜준다는 거짓말에 속아 딸 소희와 함께 군함도로 온 이강옥은 공연 특기와 임기응변을 이용해 일본인으로부터 콩가루 한 주먹이라도 더 얻어내는 생존력을 발휘한다. 한편 어린 딸을 지키고자 하는 부성애가 황정민의 연기로써 더욱 짙어진다. 아버지를 닮아 노래와 춤에 능하고, 당찬 입담을 보여주는 그의 딸 소희(김수안)는 군함도의 비극과 대비되는 순수함으로 더 큰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어리지만 이미 영화 <부산행>을 통해 좋은 연기력을 입증한 배우 김수안은 <군함도>에서도 황정민과의 찰떡궁합 연기호흡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소지섭은 투박하고 거친 경성의 주먹 최칠성을 통해 동료를 향한 진한 정과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강인한 여성 캐릭터 또한 존재감을 나타낸다. 오말년 역을 맡은 배우 이정현이다. 유곽으로 보내져 갖은 고초 속에서 강인하게 맞서고, 군함도 탈출 계획에도 능동적으로 앞장선다. 그녀는 연기를 위해 36.5kg까지 체중을 감량하고, 5kg이 넘는 총으로 총격장면을 완성할 만큼 남다른 투혼을 보였다고 한다. 배우 송중기는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박무영을 맡았다.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박무영은 조선인 탈출 계획의 시발점이자 냉철한 판단력과 작전수행능력으로 조선인들에게 의지가 된다. 또한 조선인이면서 일제의 앞잡이가 된 노무반장 등을 등장시켜, 국적을 기준으로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고 어두운 전쟁 현실이 만든 ‘개인’의 모습에 주목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을 일회성 단역배우가 아니라 연기자 80여 명을 고정 캐스팅했다.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도 군함도 조선인의 삶에 몰입한 80인 배우들의 연기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탈출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영화 속 조선인들의 모습

상상으로 만들어낸 카타르시스 '군함도 탈출 이야기'

실제 군함도 역사엔 성공적인 탈출 이야기가 없다. 바다가 에워싼 섬에서의 탈출은 오직 바닷물에서 익사하는 것 혹은 그마저도 바다 근처도 가기 전에 매 맞아 죽기 일쑤였다. 고립된 섬 밖으로 조선인들이 나올 수 있었던 시기는 1945년 8월, 나가사키 원자폭탄이 터진 후에야 가능했다. 원자폭탄 사후처리 노동자로 옮겨진 그들은 방사능에 피폭된 채 대다수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군함도를 재현한 모습

감독 류승완은 처음 군함도의 섬 사진을 접했을 때 거대한 감옥을 보는 듯했다고 말한다. 그는 영화로서 역사적 비극을 가진 군함도를 재현할 뿐 아니라 상상력을 더한 극적인 탈출 이야기를 가미해 뜨거운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주고자 했다고 한다. 군함도 탈출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자 사건은 박무영(송중기) 요원의 등장이다. 마치 영웅처럼 등장한 그는 조선인들의 군함도 탈출에 박차를 가하고 성공까지 이르게 하며 극의 긴장감을 하이라이트로 끌어 올린다.

 

하지만 강제징용된 조선인 캐릭터와는 다르게, 박무영의 존재에는 허구적 캐릭터라는 사실을 자꾸만 인식하게 된다. 극에서의 ‘탈출’은 감동을 주지만, 영화 밖 ‘군함도’는 아직 과거로부터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와 대비되는 영화 <군함도>의 결말은 씁쓸한 슬픔을 더한다. 그래서 어쩌면 박무영은 관객이 자신을 투영하게 하는 캐릭터다. 군함도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조선인들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는 힘은 현재의 관객에게 있기 때문이다.

 

영화 <군함도>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류승완 감독이 말하는 영화 <군함도>

Q. 군함도를 탈출하려는 조선인의 이야기를 그린 이유

탈출 스토리는 군함도의 사진을 보는 순간 떠오른 것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400명의 조선인이 집단 탈출한 기록은 없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데 탈출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것이 영화가 아닌가 싶다. 내가 응원하는 대상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응원하고 열망하는 것이 이뤄졌을 때의 쾌감. ‘안될 게 뭐가 있겠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군함도에 수용된 조선인들이 대규모로 탈출을 감행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Q. 촬영 과정의 부담과 어려움에 대해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소재이고 실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강제징용 피해자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오로지 이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남았다. 영화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의 의지만 뚜렷하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Q.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

<군함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긴장감, 서스펜스이다. 군함도로 오게 된 이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일을 겪게 되고,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데다 삶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일종의 재난을 당하게 된다. 이를 맞아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해서 싸우거나 순응하기도 하고, 힘을 합치거나 갈라서기도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들거나 예측과 다르게 전개시켜 끊임없이 긴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Q. 캐릭터 구축과 설정에 대해

딸, 악단과 함께 군함도로 가게 된 한 남자. 춤, 노래, 연주를 하던 사람이 그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공간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또한 변해가는 일종의 성장 과정을 그려보고 싶었고, ‘이강옥’이라는 인물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최칠성’을 통해서는 부족할 것 없고 완력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던 남자가 치욕적인 순간, 생존을 위해 현실적인 타협을 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OSS 훈련을 받다가 독립운동의 주요인사를 구출하라는 임무를 받은 ‘박무영’은 국가의 미래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을 구하기 위해 간 그곳에서 진짜 손잡고 나가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발견해낸다. 그리고 ‘오말년’은 만만치 않은 사연을 가지고 유곽으로 흘러 들어오지만, 그녀에겐 누구보다 힘들었을 과거로 다져진 강인함이 내재되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관객들이 그들 모두 마치 자신이 아는 사람처럼 느끼기를 바랐다.

Q. <군함도>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

<군함도>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군함도와 역사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온 몸을 맞은 듯 얼얼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강렬한 영화적 체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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