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면 헤어지기 무섭다” 도 넘은 ‘데이트 폭력’…관련법 강화 절실

[시사매거진 232호=신혜영 기자] “사랑하니까 때린다고요? 그건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난 7월 한 CCTV영상 속,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남자와 대책 없이 맞는 여자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세간이 시끄러웠다. 누가 보더라도 일방적인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 때 사랑한 사이로 이별을 앞에 둔 연인이었다. 최근 이런 폭력 사건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이른바 ‘데이트 폭력’. 해마다 증가하는 데이트 폭력은 연인간의 사랑싸움이라 하기엔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죽음까지 부르는 데이트 폭력은 이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할 사회문제가 되었다.

데이트 폭력을 단순히 사랑싸움으로 여기면 안 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사진출처_뉴시스]

지난 7월 18일 오전 1시 30분 서울 신당동 약수사거리 인근에서 한 남성이 한 여성에게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만취상태의 남자는 발로 여성의 입 부분을 걷어찼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성의 옷을 끌어당기며 내동댕이쳤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이 여성을 피신시켰지만 곧바로 남성은 인근에 세워 둔 트럭을 몰고 좁은 골목을 돌진해 여성을 뒤쫓았다.

경찰에 체포된 22세의 남성은 여자친구가 “다시는 보지 말자”고 말하자 격분해 폭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이 남성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면허취소 수치에 해당하는 0.165%였다.

지난 1월엔 현직 교사가 데이트 폭력으로 구속됐다. 유부남이었던 현직 교사는 총각행세를 하다 들통 나자 내연녀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았다. 이에 격분한 남성은 그녀의 오피스텔을 찾아갔고 문을 열어주지 않자 현관문 안전 고리를 부수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 남성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며 20분 동안 감금한 채 얼굴을 때렸다.

최근 연인으로부터 폭행당하는 이른바 ‘데이트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에 일어난 데이트 폭력은 2014년에 비해 1000건 이상 증가한 7692건이었다. 지난해에는 무려 8367건으로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단순한 사랑싸움이라고요?”

데이트 폭력은 단순히 연인간의 사랑싸움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연인을 상대로 한 ‘데이트 폭력’이 점점 잔혹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연인 사이에서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공포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지난 2월 논현동 한 빌라 주차장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30대 여성 이 씨가 발견됐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 씨는 결국 사흘 만에 숨졌다. 이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전 남자친구 강모(33)씨였다. 두개골이 완전히 골절될 정도로 심한 폭행을 저지른 이유는 단지 “이 씨가 만나주지 않아서”였다. 강모 씨는 사건 당일 헤어져 달라고 요구한 이 씨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린 뒤 태연히 범행 현장을 유유히 떠났다.

지난해 5월 경기도 한 마을에서는 여성이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그녀는 발견 한 달 전 실종된 22세 민아(가명) 씨였다. 민아 씨를 살해한 건 다름 아닌 ‘남자친구’ 이 씨다. 민아 씨의 언니의 말에 따르면 이 씨는 민아 씨와 싸울 때마다 장난식으로 목을 조르고 했다. 이 씨는 키우던 강아지의 목까지 조르며 엽기적인 모습까지 보였다고 한다. 이 씨는 민아 씨를 곁에 두기 위해 간암말기라고 거짓말을 했고 급기야 이 씨는 민아 씨를 살해까지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11년부터 2015년까지 데이트 폭력사건 중 살인이나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된 사건은 모두 467건이다. 이중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은 모두 23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46명이 남자친구의 폭력으로 숨진다는 것이다.

 

폭력을 고유한 사랑의 방식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

한 때는 사랑으로 이어진 두 사람. 서로 좋아 만나고 그 순간에는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았던 연인들, 그러나 그 끝이 폭력으로 끝날 거라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다.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연인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집착하는 심리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인천 나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성용 과장은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는 자신의 연인을 소유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고, 데이트 폭력 역시 고유한 사랑 방식이라고 착각해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연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데이트 폭력은 1회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지속적으로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데이트 폭력도 폭력인 만큼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아직 제도적 보호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만큼 피해자는 폭력을 당하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이란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관계, 또는 과거에 만났던 적이 있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성적·경제적 폭력을 의미한다. 데이트 폭력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연인의 개인 생활을 간섭하거나 구속하려는 과정에서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데이트 폭력 수법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단순 폭행에서 상해나 살인 등 강력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시로 다시 만날 것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헤어진 연인의 은밀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출하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 최희진 성폭력 상담소장은 “데이트 폭력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로 가볍게 치부해 해결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더는 연인 사이에 가벼운 사랑싸움이 아닌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엄연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또 ‘스토킹 방지법’ 등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해 여성들도 남성의 가학 행위가 반복되면 사랑이 아닌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 강화가 절실

문제는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는 여성이 대부분이고 재범률도 높아 사안의 심각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법적 보호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또 데이트 폭력은 엄연한 범죄임에도 연인 간 ‘사랑싸움’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적 인식도 문제다. 이 때문에 차마 사법기관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거나 피해자 스스로 가해자 처벌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2월 발생한 논현동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남자친구인 강 씨의 무단침입으로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강 씨를 연행했지만 강 씨와 이 씨가 1년 가까이 동거한 연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강 씨를 만나지 말고 현관 비밀번호도 바꾸라”고 경고 한 뒤 강 씨를 풀어주었다. 그로부터 2시 간 뒤 이 씨는 강 씨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한 뒤 나흘 뒤 숨졌다.

당시 경찰은 “법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두 사람을 격리해 놓을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을 단순히 사랑싸움으로 여기면 안 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2월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발의했지만,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돼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어 단순 폭행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마저도 물리적 폭력이 있을 때만 가능할 뿐 협박이나 정신적 폭력은 입증도 어려워 처벌이 어렵다. 또 성폭행,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 전 협박, 스토킹 등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현재 스토킹에 대한 처벌법도 없다. 경범죄처벌법에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간주해 범칙금 10만 원 정도가 부과될 뿐이다.

경찰은 데이트 폭력이 갈수록 흉폭해지자 지난 3월부터 특별 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경찰은 우선 112신고 시스템에 ‘데이트 폭력’ 코드를 신설해 가해자에게 서면경고장을 발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긴급전화 1366을 24시간 운영 중이다. 이 전화는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으로 긴급한 구조를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언제든 피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에게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신고시스템이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이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후 해결이 아닌, 사전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이미 2000년 초반에 스토킹 법안이 만들어졌으나 국내는 논의만 되고 있고 답보 상태”라며 “강력 범죄를 사전에 막기 위한 스토킹 관련 법안을 마련해 수사 기관에서 명확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1994년 제정된 여성폭력방지법(Violence Against Women Act)에서 데이트 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의 하나로 규정했다. 이후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해왔다. 또 대학 캠퍼스 내 데이트 폭력 근절을 위해 오바마 정부는 지난 2013년 여성폭력방지법 개정을 단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캠퍼스 내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 성폭력, 스토킹 등의 발생 건수를 집계해 교육부에 매년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영국은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을 위한 행동 계획의 일환으로 데이트 상대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클레어법’과 가정폭력보호명령을 시행, 데이트 폭력 사전 예방에 일정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웅혁 교수는 “데이트 폭력 코드 신설이나 경고장 발부 등도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법적 지원 없이 추진되고 있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데이트 폭력은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지난 7월 21일 정현백 여성부장관은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등 심각해진 여성 대상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또 조만간 법무부가 발족하는 스토킹 처벌법 제정위원회에 참여해 처벌 수위를 높이고 피해자 보호·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데이트 폭력은 더 이상 사랑싸움이 아니다. 연간 7000여 건 정도 발생하고, 3일에 1건 이상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내가 잘하면 상대가 변할거야’ ‘사랑하니까’ ‘결혼하면 달라질 것이다’라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다. 폭력의 악순환 고리는 혼자 힘으로 쉽게 끊어낼 수 없다. 최근 ‘안전이별’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온라인에는 ‘안전하게 이별하는 방법’이라는 글이 퍼질 정도로 데이트 폭력은 이제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하루 빨리 법적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사랑의 끝이 폭력으로 얼룩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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