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미술고등학교로 대학 진학률 90% 이상

 

   
▲ 서울미술고등학교 김정수 교장.

서울미술고등학교는 국내 유일의 미술 전문 고등학교다. 매년 졸업생의 9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기록을 세우며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의 진가를 입증하고 있다. 1967년 천막학교로 시작하여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서울미술고등학교는 서울시교육청 지정 예술계 미래형 자율학교로 성장하며 세계적 화가 양성을 위한 배태가 되고 있다.
  
서울미술고등학교 김정수 교장을 만난 것은 외고와 자사고 폐지론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던 6월 중순이었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그것도 당사자인 자사고 교장을 만난다는 것이 다소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김정수 교장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교육계의 현실을 개탄했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여야 할 한 나라의 교육이 채 5년을 내다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니 교육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김 교장으로서는 마땅치 않을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한 김 교장의 순수한 열정과 신념은 바래지 않았다. 파릇파릇한 20대 중반에 학교를 설립했던 그때처럼, 지금도 대한민국의 제일 가치는 제대로 된 교육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 수업 중간에 잠시 짬을 낸 조소과 학생들이 김정수 교장선생님(가운데)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전공이신 걸로 안다. 정치가 아닌 교육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당시 백단학회 회원이었는데, 농활을 많이 다녔다. 그러다 봉천동 일대에 학교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와봤더니 정말 허허벌판에 사람들이 기거하는 천막만 몇 개 있었다. 그걸 보고 천막학교를 세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틀 동안 아버지와 담판을 벌였다. 결국 내 결혼자금으로 모아두신 35만 원(당시 쌀 한 가마니가 3천5백 원이었으니, 쌀 100가마니 값이다_편집자 주)을 받아 학교를 지었다. 그것이 모태가 되어 지금의 서울미술고등학교가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23세에, 그것도 여성이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어떤 교육철학이 있었나.
 거창한 철학 같은 건 없다. 백단학회 활동 당시 배움을 통해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이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후회하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가난했던 60~70년대를 거치며 50년간 오롯이 교육현장에 몸담아왔다. 신산한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어떠했나.
 처음 아버지께 35만 원을 받아올 때 다시는 손 내밀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아버지 수첩에는 내가 700만 원을 빌려간 것으로 되어있다.(웃음) 이후에도 자꾸 손을 벌렸던 것이다. 당시는 다 어려웠던 시절이라 수업이 3부제로 운영되었는데, 3부 시간대 선생님들이 저녁에 오면 배가 고프니까 밥도 해줘야 하고, 겨울이 되면 천막으로는 안 되니까 흙벽돌집도 지어야 하고, 또 철거도 3번이나 당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특히 나는 제도권 안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지금도 제도권인 정부로부터 지원이 전혀 없다. 딱 학생들이 내는 학비로만 학교를 운영한다. 그런데다 나는 또 사람이 부족해 뒷돈을 받거나 비리를 할 줄 모른다. 지금까지 선생님들한테 쓴 커피 한 잔 얻어먹은 적이 없을 정도다. 어찌 보면 참 미련하게 정도(正道)만 걸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힘든 것은 우리의 교육제도다. 교육을 잘하게끔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잘못된 제도가 오히려 교육을 옭아매고 있다. 원칙도 없고, 형평성도 없다. 정부가 좀 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 학교 내 설치된 학생들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정수 교장선생님.
 
세계 최고의 화가 1명을 키워내기까지
스웨덴을 대표하는 상징물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주저없이 가우디의 건축물을 꼽을 것이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나 구엘 공원을 보며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유연한 곡선이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형태의 건축물을 빚어내는 가우디의 작품은 그래서 스웨덴을 대표한다. 김 교장은 이런 대표적인 화가 한 명을 키워내는 것이 평생의 꿈이다.
 
굳이 미술고등학교를 설립한 이유가 무엇인가. 입시미술학원이 성황인데.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미술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 학교는 전국에서 유일한 미술고등학교다. 미술과 관련한 모든 것을 학교에서 할 수 있다. 3년 동안 학교 수업만 충실히 따라하면 대학교는 얼마든지 들어간다. 학력이 부족해 못 갈 수는 있어도 그림실력이 부족해 못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 어떤 학교보다 수준 높은 교수진을 꾸렸다. 총 46명의 교사를 채용하고 있는데, 모두 시험을 거쳐 실력을 보고 뽑았다. 그중에는 우리 학교를 졸업한 교사들도 더러 있다. 현재 17~18명 정도의 교사가 현역에서 활동 중이다. 미국에서 화제인 민태웅 화가나 오지 사진작가로 유명한 유별남 등도 다 우리 학교 출신이다.
 
   
▲ 조소과 교사와 다정히 포즈를 취한 김정수 교장선생님. 옆의 교사는 2004년 서울미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임한 졸업생 중 한 명이다.
 
아직 국내는 미술품에 대한 사회적 함양이 부족하다. 대중화를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술품을 재벌이나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긴다. 왜냐하면 고가니까. 그런 분위기가 바뀌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해주면 된다. 서양의 경우는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 많다. 이탈리아의 까라라 국립미술원만 해도 유학생들에게 기숙사를 마련해주거나 식권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또 여기가 대리석이 유명한데, 가난한 유학생들에게는 파석을 무료로 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프랑스나 독일 같은 국가도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계통을 전공하려면 아직도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제도 개선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현실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현재 관악구와 우리 학교가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름이 ‘엉뚱한미술학교(das)’다. 구에서 건물을 제공하고 우리 학교에서 커리큘럼을 진행한다. 유아반, 초등반, 중등반으로 수업을 나눠 진행하는데, 지원자가 많아 대기 순번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기존의 틀에 박힌 미술수업에서 벗어나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활동을 위주로 한다. 때문에 미술에 대한 억압과 틀이 없이 창의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거기에 타고난 재능이 더해진다면 한국의 가우디도 탄생할 수 있다. 예술의 기본은 모든 이들을 관통할 수 있는 감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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