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에 농사는 포기…애타는 농민

 

   
 

최근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 2년 전 42년만의 가뭄대란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장마철에도 평년보다 강수량이 적은 ‘마른장마’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지속되는 폭염에 가뭄까지 바짝 말라버린 땅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한 숨만 더욱 커지고 있다.
  
가뭄은 비가 보통 때에 비해 오랫동안 오지 않거나 적게 오는 기간이 지속되는 현상으로, 기후학적으로 연강수량이 기후 값의 75% 이하이면 ‘가뭄’, 50% 이하이면 ‘심한 가뭄’으로 분류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평균 누적강수량은 187㎜로 평년(369㎜)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1973년 이후 40여년 만에 최저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금 우리나라는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장마가 끝난 8월이 돼야 평년과 비슷한 수준의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18일 기상청에 따르면 본격적인 장마철인 7월 평년(289.7㎜)보다 강수량이 적거나 비슷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는 최근 3년 동안 ‘마른장마’에 시달렸다. 장마 기간 내린 비의 양이 적어 건조한 날씨를 보이는 날이 많았다. 지난해 장마는 6월18일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 시작돼 7월30일 중부지방을 끝으로 종료됐다. 장마 기간은 제주도와 남부지방이 29일로 평년보다 짧았다. 중부지방은 37일로 평년보다 길었다. 장마 기간 전국에 내린 비의 양은 332.1㎜로 평년(356.1㎜)보다 적었다.
 
2015년 장마 기간에도 전국에 평년(356.1㎜)보다 적은 239.8㎜의 비가 내렸다. 특히 2014년 장마 기간 내린 비의 양은 158.2㎜로 평년(357.9㎜)의 44%에 그쳤다. 그해 중부지방의 장마철 강수량은 145.4㎜로 평년(366.4㎜) 강수량의 40%에 머물렀다.
 
기상청 관계자는 “6~7월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을 것으로 예고돼 가뭄 또한 8월이 돼야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장마는 평년보다는 늦게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장마시작이 늦어지는 데에는 장마전선이 대만 부근에 정체돼 우리나라로 북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8월에는 대기불안정과 발달한 저기압의 영향으로 국지적으로 다소 많은 비가 내릴 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지난 6월18일 오후 전남 무안군 청계면 복길마을 복길간척지에서 농민 주공성(59) 씨가 말라 죽은 벼를 들어 보이며 가뭄으로 염분이 높아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심각한 가뭄이 지속되자 농가는 울상이다.
 
전남 무안군 청계면 복길마을 복길간척지에서 농민 주공성(59) 씨는 푸석한 논바닥을 바라보며 푸념을 쏟아낸다.
 
“수십 년 농사지으면서 모내기 두 번 하기는 처음이다. 이렇게 비가 안 오면, 벼농사 지을 방법이 없다.”
논바닥과 담수호의 염도는 영농 한계치인 3000ppm을 넘어 이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논의 물 순환이 안 돼 염분 농도가 높아졌고, 물 마름과 벼 고사 현상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심은 모는 염분이 높은 물속에 잠겨 재 이앙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물이 없어 모내기를 하지 못한 논도 수두룩하다.
복길간척지의 전체 농경지는 280여㏊로 이 중 110㏊의 농경지는 모내기를 하지 못 했다. 농민들은 다음 달 초까지 모내기를 하지 못 하면 수확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가뭄 등 생육기 기상악화로 전년보다 감자는 7~14%, 마늘은 5%, 양파는 4~9% 각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축산 농가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용인 처인구에서 닭을 키우는 이 모(48)씨는 “가뭄과 더위가 장기화할 경우 병아리 폐사는 불가피할 것”이라며 “주변 양계장들의 사정도 비슷하다”고 전했다.
 
강원지역의 소양호와 파로호 상류 곳곳도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어민들이 조업을 포기한 것을 비롯해 낚시꾼들마저도 발길일 끊겼다.
 
전국적인 래프팅 명소로 꼽하는 인제 내린천은 물론, 영월 동강, 철원 한탄강이 수위가 줄면서 자갈밭으로 변해 래프팅 체험객들의 발길이 뚝 끊겨 개점휴업 상태이다. 그나마 사전에 예약했던 관광객들의 취소가 잇따르고 있어 내린천 주변 상가와 숙박업소도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여름 특수를 기대했던 도내 유명계곡 역시 계곡물이 말라붙으면서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겨 여름 한철 특수를 기대하던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 등 수도권 최대의 용수 공급원인 충북 충주댐 저수위가 겨울 가뭄에 이어 봄 가뭄으로 저수율이 30%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 6월18일 한국수자원공사(K-water)와 한강홍수통제소에 따르면 지난 2월 저수위(EL)가 124m대로 내려가면서 저수율도 40% 밑으로 떨어진 충주댐 저수위는 이날 낮 12시20분 현재 저수위 119.51m에 저수율은 29.82%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아직 용수 공급엔 큰 문제가 없고 댐 수문 상황과 용수수급 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기상청의 중기예보에 비 소식이 없어 당분간 충주댐 저수위는 계속 내려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심각한 가뭄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자 지자체들은 저마다 대책을 내놓고 있다.
 
충북지역는 7월15일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작물 고사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이자 도는 가뭄 대응 실무 태세를 ‘경계 또는 심각’ 수준으로 격상하는 등 만반의 채비를 갖추기로 했다. 월 중순까지 비가 오지 않을 경우 사실상 피해가 1000ha까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피해조사는 물론 고사에 따른 대체작목 식재 등 대책 마련도 병행할 계획이다.
 
충북지역은 올해 들어 이날까지 내린 비가 185.6㎜로, 평년 334.3㎜의 55.5%, 지난해 같은 기간(316.0㎜)보다도 58.7% 낮은 수준이다. 농업용 저수지 평균 저수율도 43.5%로, 평년(59.0%)의 73%에 그쳤다. 논과 밭 가뭄 피해면적은 각각 16.5㏊와 1.8㏊다.
 
제주특별자치도도 가뭄극복을 위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고, 유관기관과 단체 등의 협조로 가뭄극복을 위한 비상체제로 전환한다. 최근 가뭄이 장기화됨에 따라 수박 등 생육중인 농작물의 피해와 파종이 완료되거나 파종 중인 참깨, 콩이 발아 불량이 예상되고 있다.
 
도는 가뭄 해갈 시까지 행정력, 유관기관과 단체 등의 가뭄극복을 위한 비상체제 상태를 유지하면서 농업용 공공 관정 909개소, 급수탑 148개소를 전면 개방하고, 소방차량 49대, 공사용 물차 8대를 가동하여 농업용수를 공급 지원하기로 했다.
 
제주도의 6월 강수량은 평년대비 제주시 지역은 11%, 고산 38%, 성산 41%, 서귀 148% 수준, 콩 및 당근 파종지역인 제주·고산·성산지역은 평년대비 50% 미만으로 가뭄이 지속될 경우 파종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전북도도 가뭄으로 인해 도내 곳곳에서 논 작물 등이 고사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현재까지 잠정 집계된 가뭄 피해 상황을 보면 총 93㏊(논 작물 73㏊·밭작물 20㏊)에서 가뭄 피해가 발생했다. 올해 도내 평균 강수량은 210㎜로 평년(389㎜)의 54.1%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저수지 평균저수율도 43.6%로 평년 저수율보다 낮은 상황이다. 이에 도는 국민안전처의 특별교부세를 투입해 관정개발과 저수지준설, 양수장설치 등 가뭄대책사업을 오는 7월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울주군도 계속되는 가뭄으로 지역 농가의 농작물 피해가 확산되자 긴급 예산을 편성하는 등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은 가뭄 피해 예방과 대책 수립을 위해 긴급 예산 10억 원을 편성해 집행한다고 6월22일 밝혔다. 군은 수자원공사와 함께 매일 온양 삼광들에 낙동강원수 7만t을, 논바닥이 갈라진 상북 신리들에는 119소방차 6대를 투입해 용수 60t을 공급하고 있으며 웅촌면 고연들에도 국도건설공사업체 살수차 12대를 투입해 192t의 용수를 공급하는 등 공무원을 포함한 인력 30명을 물대기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 울주군은 지역 내 41㏊의 논에서 물 마름, 11㏊의 밭에서 작물 시듦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총 피해면적은 51㏊이다. 지역 내 301개 저수지의 저수율도 56%로 낮아져 현재 ‘주의’ 단계이다.
강원 정선군 강우량이 193.9㎜로 평년(248.3㎜) 대비 78%의 강우량으로 다른 시·군 보다 심각성은 덜한 실정이나 계속되는 가뭄은 물론 자연재난에 대한 총력 대응태세를 구축한다.
 
군은 가뭄대책으로 양수기 252대, 물탱크, 스프링쿨러 등 1882가구에 관수장비를 지원하는 한편 농촌 생활용수 및 관정개발, 지방상수도 확장과 소규모 수도시설을 개량하는 등 6개 사업에 122억 원을 투입해 가뭄에 대응하고 있다. 또 군은 매년 계속되는 가뭄에 대비해 지하수 수맥탐사, 저류지 설치, 지방상수도 공급지역 확대, 소규모 수도시설 급수구역 통합운영 등 장기대책을 수립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 이낙연 국무총리가 6월18일 오후 전남 무안군 삼향읍 가뭄 피해 간척지를 찾아 현장 시찰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지속되는 가뭄 극복을 위해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6월18일 “이번 추가경정예산의 1번은 가뭄대책비”라며 “가뭄 예산 지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전남 무안군 삼향읍 관정 개발 현장을 찾아 가뭄 상황 보고를 받고 “가뭄 대책비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협의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어 “기획재정부도 준비하고 있는 만큼 국회가 여야 협의 과정에서 (추경 가뭄 지원 예산을)반영해주길 바란다”며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배려하고, 급한대로 불을 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가뭄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도 주문했다. 이 총리는 전남 4개 군의 가뭄 상습 농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영산강 4지구 농업종합개발사업 지연을 지적한 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도 (공사 지연에 대한) 심각성을 잘 알고 있으니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안·신안·영광군 등 해마다 가뭄에 시달리는 지역의 공통점은 간척지”라며 “4지구 공사 이후에도 (물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 지역은 관정을 깊이 판다든지, 물이 덜 들어가는 잡목을 키우다든 지, 담수화 시설을 만든다든지 등의 중장기적인 검토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각 지역 농가 상대로 시행 중인 살수차 등 급수 장비 지원을 연장키로 했다. 경찰청 경비국은 지난 3일부터 지원 중인 살수차 등 급수장비를 가뭄 극복 시까지 계속 지원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의 지원 계획을 지방자치단체에 적극적으로 안내해 피해 농가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며 “가뭄이 심한 지역에 관정 개발, 저수지 준설을 지원하는 국민안전처와 농림축산식품부등 범정부 차원의 가뭄 대책에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말했다.[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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