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허(虛)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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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허(虛)하라”
  • 김길수 편집국장
  • 승인 2017.07.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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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8일 오전 8시 13분 양산의 한 아파트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아파트 주민 한 명이 외벽청소를 하는 직원들의 음악소리가 시끄럽다고 옥상에 매인 밧줄을 끊은 것이다. 그 한 가닥 밧줄에 매달려 작업을 하던 직원은 정처없이 아래로 떨어졌고, 즉사했다.

탄탄하던 줄이 끊기고 몸이 허공에 떠는 그 순간 이 직원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순식간에 밀려온 죽음의 공포를 직면했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준비하지 않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헛손질을 허공에 해댔을까. 그리고 자기가 왜 죽어야하는지 납득할 수 있었을까.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다. 또한 결코 다시 있어서도 안 되는 죽음이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다고. 그래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그랬다고. 거기에 소주까지 마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내가 묻는다. 왜 하필 그 시각, 거기가 당신이 분노를 터트리는 장소였냐고. 그리고 또 묻는다. 왜 평소에 그 분노를 쌓아놓고 살았냐고. 왜 풀지 않았냐고. 이 질문에 많은 사람이 이렇게 대답할지 모른다. 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그런 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변화시키라고.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조준해보라고.
 
그러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분노다. 분노(憤怒)란 치솟는(憤) 종(奴)의 마음(心)이다. 그래서 분노조절장애의 기저에는 부당함, 모멸감, 좌절감, 무력감 등이 자리한다. 이런 못난 마음들이 외부의 스트레스에 충동을 받아 표출되는 것이 분노다. 그렇다고 분노가 영 잘못된 감정만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가 정의를 수호하는 올바른 시발점이라고 말했고, 분노가 영혼을 충족시키고 용기를 북돋우기 때문에 분노가 없으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터트리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터트린다고 해서 꼭 감정을 표출할 필요는 없다. 해소나 줄이는 작업을 먼저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런 못난 마음들을 충동하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하기 싫은 일은 잠깐 미루고, 안 해도 괜찮은 일은 굳이 하지 말자.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필요도 없고, 또 잘할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나를 칭찬하는 그 사람도 돌아서면 내 뒷담화를 한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그러니 목숨 걸고 인간관계를 좋게 하려고 하지 말자. 나를 먼저 배려하고, 나의 입장을 정리해 보자. 그리고 한 발 물러나 그 상황을 바라보고 역지사지 해보자. 나도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즐기자. 꼭 거창하거나 돈이 많이 들 필요는 없다. 나 혼자 음식을 먹어도 아무 생각 없이 먹으면 혼밥이 되지만, 그 음식의 유래나 조리법, 환경이나 역사, 문화적 맥락을 알아가며 먹으면 그것은 식도락이 될 수 있다. 똑같이 게임을 해도 어떤 사람은 파괴욕구만 분출하지만, 어떤 사람은 직업으로 선택해 유명세를 타거나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기도 한다. 결국 문제를 풀 열쇠는 나 자신이다. 세상을 바꿀 힘은 나에게 없지만, 나를 바꿀 힘은 내 안에 있다. 세상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을 조금만 높인다면 저 언덕 아래 펼쳐져있는 드넓은 초원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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