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무친(四顧無親) 고아에서 청와대 경호차장까지

 

   
▲ CTS 인터내셔널 주대준 회장. 30여 년간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며 5명의 대통령을 모시며 경호차장으로 정년퇴임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물질만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적 자산은 얼마만한 가치를 가질까. 시대를 초월하는 명품이 있듯,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적 가치도 있는 법이다. 동서양의 고전문학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동서양의 철학사상을 되새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훌륭한 사람의 인생에서 감동을 받는 이유 또한 그 사람의 인생에 녹아있는 정신적 가치가 빛을 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과 고아원을 전전한 한 소년이 있다.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3사관학교에 진학한다. 전산장교의 꿈을 펼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석사학위 취득 후 소령으로 승진해 귀국한다. 육군본부 내 유일한 전산처장 보좌관을 하며 인사부터 교육까지 전산업무를 총괄하던 중 청와대 전산실 창단멤버로 뽑혀 청와대에 입성한다. 이후 30여 년 동안 5명의 대통령을 모시며 경호과학화를 통해 유비쿼터스 경호를 실현한다. 또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로서는 전무후무하게 정년퇴임으로 청와대를 떠난 전설적인 인물로 남았다. 이 사람이 바로 주대준 CTS 인터내셔널 회장이다.
 
포기하지 않는 꿈은 이루어진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잘 살았다. 동네 논이 거의 우리 논이어서 모내기를 하면 며칠씩 했던 기억이 있다. 또 아버지와 큰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셨는데, 집에 돌아오면 마대자루에 담아온 돈을 대청마루에 쏟아붓곤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셨다. 3남2녀의 장남이었던 주 회장은 동생들을 데리고 친척집을 전전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친척들은 5명의 아이를 거두기가 벅찼고, 결국 주 회장과 남동생 둘은 고아원에 보내졌다.
 
“고향 근처에 있는 고아원이라 우리 집이 잘 살았던 걸 아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이 ‘네가 여기에 왜 왔냐!’는 식으로 괄시를 했다. 그리고 밥 때가 되면 나와 동생들이 마치 자기들 밥을 축내는 것 마냥 경계했다. 기득권이란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그러나 이 시절 주 회장이 터득한 것은 기득권만이 아니었다. 주로 선교단체들이 운영했던 고아원들은 기독교를 전파하는 역할도 함께했는데, 주 회장도 여기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알게 된 ‘요셉’이라는 성경인물은 그의 인생을 끌어온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 된다.
 
“요셉은 희망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12형제 중 하나로 태어난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당연히 형제들은 그를 시기했고, 급기야 애굽의 상인들에게 팔아넘긴다. 하지만 요셉은 절망하지 않는다. 노예로 살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마침내 노예로 팔려간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나라 살림을 도맡아 하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때부터 주 회장은 꿈을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세상을 바꾸는 큰 사람이 되겠다는 막연하지만 부푼 꿈을 꾼다.
 
“배경이나 환경은 불평등할 수 있지만 꿈과 희망은 누구나 평등하게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내 경우는 그것을 이루기까지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하나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위기나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원인을 파헤쳤다. 그리고 최적의 해법을 찾아 문제를 분해하고 단순화해 내가 할 수 있는 역량과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이 내가 터득한 삶의 지혜다.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꿈은 반드시 이룬다.”
 
   
▲ KAIST 부총장 시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주대준 회장.
 
정보통신기술 기반한 경호과학 구축하다
 
1980년 가을, 주 회장은 코딩(coding) 보수교육에 참여하고 있었다. 오늘날 국무총리실에서 사용하는 정부전자계산소 건물에서 진행된 이 교육에서 청와대 입성의 꿈을 꾸게 된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삼삼오오 경복궁 담장을 끼고 산책을 하다가 느닷없이 경찰들에게 에워싸였다. 더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곳이 청와대라는 것이었다. 청와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왕궁에 들어갔던 요셉이 떠올랐다. ‘나도 청와대에 들어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10대도 채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청와대에 컴퓨터가 들어갈 것이고, 나 같은 전문가를 뽑을 것이다. 그때 뽑히려면 프로그램을 잘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코딩을 잘해야 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공부했다.”
 
그로부터 10년 만인 1989년 드디어 청와대에 전산실이 창설되었다. 프로그램 개발팀장 자리를 놓고 국내외 전산학 석·박사 40~50명이 몰렸다. 최종 인원 5명에 끼여 면접을 보러 가는 그에게 당시 모시고 있던 전산처장 장군은 ‘언제 청와대 한 번 가보겠냐? 구경이나 잘 하고 오라’고 할 정도로 경쟁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명은 그의 편이었다. 최종 1인으로 선발된 그는 당당히 청와대에 입성한다.
 
“근무부서가 경호실 전산실이었다. 대통령 경호는 물론 대통령의 국정 지휘통신망을 중심으로,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정보통신 기반지원을 하는 청와대 운영의 중요한 부분을 맡았다. 하지만 나는 더 나아가 정보통신 기술과 경호시스템을 접목한 과학경호를 이루고 싶었다. 지금도 경호하면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요원들이 VIP 주위를 둘러싸는 이미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는 더 그랬다. 컴퓨터 따위가 경호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따지는 사람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주 회장은 유비쿼터스 과학경호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문제제기를 했고, 설득했다. 더불어 우리 실정에 맞는 경호장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서 들여온 첨단장비를 해체해 우리 시스템에 맞게 고안했다.
 
“예를 들면 전파차단장치가 있는데, 대통령 주변의 전파를 차단하는 것이다. 때문에 휴대폰도 안 되고, 무전도 차단된다. 그런데 경호원들은 무전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주파수는 열어둔다. 보통 도청이나 테러 주파수는 취약한 주파수를 파고 들어오기 때문에 이것은 차단하면서 우리가 필요한 주파수는 열어두는 기술이다.”
 
이외에도 주 회장이 이룬 과학경호의 장비에는 흰 머리카락만한 안테나, 골전도 마이크, 보청기를 개조한 이어폰, 탐지자동화 기기 등이 있다.
 
   
▲ 청와대에 근무하던 젊은 시절의 주대준 회장.
 
세계 최고의 과학경호를 꿈꾸다
 
과학경호를 실현하기 위한 주 회장의 노력은 그침이 없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 시대에 이르면서 마침내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정보기술과 유비쿼터스를 바탕으로 한 과학경호에 많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권위주의 타파가 경호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위압적인 모습보다는 경호원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 동선을 선호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유비쿼터스 경호였다. 한 예로 2007년에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을 개방한 것도 유비쿼터스 경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철통같은 경호가 이뤄지려면 유비쿼터스 경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청와대에서 지낸 30여 년의 시간은 끊임없는 경쟁과 도전의 시간이었다고 주 회장은 말한다. 그런데 그 경쟁상대는 다름 아닌 경호 선진국이었다. 이 시절 주 회장이 가장 주력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 경호실과 경쟁해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실력이었다. 그리고 2005년,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대사건이 있었다.
 
“바로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이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21개국 정상이 참석한 이 행사를 위해 3년 동안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예행연습을 했다. 당시 해운대 너머 달맞이길 건너편 언덕에 자리 잡은 평범한 빌라가 IT 분야 직원들이 상주하던 작전본부였다.”
 
   
▲ 러시아 통신대표단과 회담하는 장면.
  
21개국 정상이 모이는 만큼 고려해야할 사항들이 만만치 않았다. 하다못해 세계화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의 시위까지도 고려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국 정상들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회의장에 도착하게 하는 것이었다. 먼저 도착한 정상이 미처 입장을 못해 나중에 온 정상이 몇 분씩 기다리거나, 한꺼번에 도착한 정상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도로 사정으로 도착하지 못한 정상을 주최국 정상이 한참을 기다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되었다.
 
“지금까지 개최되었던 다자간 국제 정상회의에서 모든 정상들이 계획된 시간에 맞춰 회의장에 입장하는 것을 성공한 개최국은 없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날,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20개국 정상들을 영접한 시간은 딱 19분, 1분에 한 명씩 정확하게 영접절차가 이뤄진 것이다. 2004년도 칠레 APEC 정상회담이나 2006년 말레이시아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이 입구나 도로에서 10분에서 많게는 30분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대한민국 과학경호의 보이지 않는 승리였다.”
 
주 회장의 이런 경험과 노하우는 4차 산업혁명의 최대 화두인 사이버 안보와 직결한다. 지상전, 해상전, 공중전, 우주전에 이어 제5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사이버전쟁에서 각국 정부는 치열한 안보전을 치루고 있다. 실제 2011년 미국이 자랑하는 첨단무기인 무인정찰기(드론) 한 대가 이란에 넘어간 일이 있었다. 당시 이란 측은 이 정찰기를 해킹해 가짜 GPS 신호를 보냈고, 이 신호를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군 기지로 착각한 정찰기는 이란 군사기지에 착륙했다.
 
“사이버 테러 공격은 징후를 예측할 수 없고, 동시 다발적인 공격이 가능해 순간적으로 대혼란을 야기한다.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사이버 안보를 총괄할 정부기구 설립이다. 사이버 보안 강국으로 가는 길은 멀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기업과 개인의 보안의식도 고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사진_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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