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화법과 갈지자 행보 되풀이 할 경우 빛바랠 것

안철수는 ‘새정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지난 대선과 이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가 가진 상품성은 돌풍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안풍’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줄서기 정치, 금권 정치, 지역감정 등 기존 정치권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부동층 유권자들의 열망은 안풍을 완성시킨 결정적 요인이었다. 안철수 개인의 참신함과 기성 정치권에 대한 개혁요구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탄생한 신상품이 바로 ‘새정치’인 것이다.

 

안철수의 국회 입성 이전 ‘새정치’론은 다양한 해석과 논란을 낳았다. 새정치라는 슬로건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고 모호한데다 안철수 자신이 이에 대해 한 번도 명쾌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락가락했던 그의 행보도 새정치 논란에 불을 지폈다. 특히 대선후보 단일화 협상 당시 그의 행보는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단일화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문재인 ·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는 TV토론을 벌였고 바로 다음 날 오전 다시 만나 세부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해 유권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이 와중에 이따금씩 문-안 지지자들 사이에서 상호 간에 낯 뜨거운 비방전이 오가는 상황이 연출됐다. 

전반적인 상황은 안 후보 측이 요구하고 이를 문 후보 측이 수락하면 다시 안 후보 측이 수정을 요구하는 모양새로 흘렀다. 이 와중에 안 후보 측이 이해찬-박지원 대표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협상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박 두 대표는 민주당의 간판이었고 안 후보 측이 이들을 정조준한 건 지나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 후보는 이 같은 요구를 수용했다. 안 후보 측은 이제 더 이상 세부조건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결국 험난했던 협상은 안 후보의 사퇴로 귀결됐다. 

후보 사퇴 이후에도 그의 처신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는 했다. 하지만 선거 운동과정에서 문 후보에게 적극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의 미지근한 행보는 대선 당일 절정에 도달했다. 그는 새 대통령을 뽑는 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던 48%의 국민들이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허우적대던 시기에 말이다. 

그는 새 대통령 취임 일주일만인 3월3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의사를 밝히며 정치재개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 선언도 곧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출마지역구를 노원병으로 선택한 것이 논란의 진원지였다. 그의 노원병 출마소식이 전해지자 너무 쉽게 국회에 입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새정치를 하겠다면 부산 영도에 출마해 새누리당의 거물인 김무성 의원과 맞대결을 펼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제기됐다. 이 같은 비판여론을 단순한 정치권의 견제심리로 폄하할 수만은 없었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관행에 도전하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난 해 치러진 4.11 총선에서는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문재인, 조경태, 문성근, 김정길, 전재수, 최인호 등 야권 대표주자들은 지역구도 타파와 야도(野都) 부활을 기치로 내걸고 부산지역에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이 같은 선례에 비추어 볼 때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 선언은 새정치와는 괴리돼 보였다. 그럼에도 이번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안철수의 상품가치가 여전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여야를 막론하고 안철수의 등장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안풍이 정계개편의 폭풍이 될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는 전적으로 그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 있다. 이제 안철수는 새정치를 펼칠 기회를 잡았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새정치를 할 차례다. 그가 대선 단일화 과정이나 보궐선거 출마 선언 같은 모순적인 행보를 되풀이 한다면 새정치 구호는 당장 빛이 바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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