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기자 사건은 ‘이-팔 분쟁’이 원인
PFLP, 이 군사공격 국제 이슈화 위해 외국인 납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무장세력에 의해 피랍됐던 KBS 두바이 주재 용태영 특파원이 만 하루 만에 무사 귀환했다. 외교통상부는 “현지시간으로 3월 15일 오후 2시30분(한국시간 오후 9시30분)께 용 특파원의 신병을 팔레스타인 경찰을 통해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측으로부터 인도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납치목적 및 석방 배경은?
용 특파원의 석방은 피랍된 지 24시간 만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용 특파원을 납치한 PFLP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납치 이유를 밝힌 직후 용 특파원의 신병을 팔레스타인 경찰당국에 넘겼고 우리측 주팔레스타인 대표인 마영삼 주이스라엘대사관 공사참사관이 가자시티내 경찰서에서 인도받았다.
PFLP는 이에 앞서 가자시티에서 60여km 떨어진 감금 장소인 칸 유니스에서 용 특파원을 포함해 프랑스인 2명과 캐나다인 1명 등 모두 4명을 데리고 신병 인도 장소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지 22시간 만에 풀려난 KBS 용태영 특파원과 동행했던 카메라맨 신상철 씨는 “하마스를 취재하기 위해 3월 14일(한국시간)부터 일주일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머물 예정 이었다”고 밝혔다. 신씨는 피랍 당시 상황에 대해 3월 15일 KBS 1TV ‘뉴스9’에서 “무장 세력이 호텔로 들어왔고 외국인들을 한 명씩 바깥으로 끌어냈다”고 증언했다.
이스라엘이 예리코 교도소를 공격해 위험이 고조된 가자 지구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그는 “팔레스타인의 집권 세력으로 떠오른 하마스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신 씨는 “가자 지구 내에서 하마스의 위상이 밖에서 보는 테러리스트의 위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부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취재를 갔던 것”이라 말하며 “우리가 취재를 요청했던 하마스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단체 등이 아주 우호적으로 대해줬다”고 밝혔다.

납치목적 및 석방 배경은?
두바이 주재 KBS 특파원인 용태영 기자를 납치한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이 납치 24시간 만에 용 기자를 석방함에 따라 납치 목적 및 석방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PFLP가 용 기자를 납치한 데는 한국을 지렛대 삼아 이스라엘 군이 14일 예리코 감옥을 공격해 신병을 강제 인수해간 PFLP 지도자 아흐메드 사다트 등을 석방하게끔 이스라엘에 간접 압력을 행사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PFLP가 용 기자를 통해 우리 정부에 예리코 감옥 문제와 관련한 협조를 요청한 사실은 이 같은 추정에 무게를 싣는다. 정부 당국자는 “용 기자는 납치된 상태에서 주 이스라엘 한국대사관 관계자와 통화하면서 PFLP측이 예리코 교도소 사건과 관련, 한국 측 협조를 요청한다고 했으며 우리 측은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PFLP가 용 기자를 통해 이 같은 요구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용 기자의 석방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단순히 외국인 기자를 납치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대한 규탄의지를 세계에 알리려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 정부를 향한 실질적인 요구 사항이 있다면 석방협상이 단시간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 만에 용 기자를 석방한 것으로 미뤄 PFLP는 납치를 통해 모종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보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하는데 무게를 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용 기자의 조기 석방에는 PFLP를 설득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정부를 우리 정부가 ‘집중 공략’한 것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근 강화된 한-팔레스타인 관계를 활용, 전방위로 팔레스타인 정부에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아르헨티나를 방문중인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월 15일 새벽 알 키드와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용 특파원의 안전을 위해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고, 현지 외교관들은 팔레스타인 정부를 상대로 협조 요청과 압력행사를 병행해 가며 치열하게 교섭했다는 게 당국자의 설명이다.
팔레스타인 대표부 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마영삼 주 이스라엘 공사 참사관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자지구에 진입, 팔레스타인 정부와 PFLP간의 협상에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이런 원활한 교섭의 배경에는 비록 이스라엘이 우리의 우방임에도 불구, 우리 정부가 근년 들어 대 팔레스타인 외교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지난해 6월과 10월 팔레스타인과 한국에서 양국 외교장관간 상호방문 회담을 한 것이나 우리 정부가 작년 8월 팔레스타인에서 일반 대표부 업무를 개시한 것 등이 호재로 작용했다는 게 외교부의 평가다. 여기에 더해 PFLP는 재작년 김선일 씨를 납치해 살해한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와 달리 현지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도 조기 석방을 가능케 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아울러 정부는 신속히 유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 협조요청을 함으로써 국제여론의 관심을 모았고 이번 사태를 야기한 한 축이라 할 이스라엘에도 ‘용 기자 구하기’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는 납치 주체인 PFLP와 직접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으며 PFLP측과의 ‘거래’도 전혀 없었다”면서 “팔레스타인 및 이스라엘 정부와의 협력이 잘 이뤄져 조기 석방이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 한다”고 말했다.



납치배경 이-팔 분쟁이 원인
용태영 KBS 기자 피랍사건은 무장단체 하마스의 최근 팔레스타인 총선 승리와 이달 말로 예정된 이스라엘 총선이라는 이 지역 정세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엉뚱한 불똥’이라 할 수 있다.
무장단체 하마스가 지난 1월 예상을 뒤엎고 선거혁명을 일으키며 압승을 거뒀을 때만 해도 이·팔 관계는 언제라도 일촉즉발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경제 압박과 국제사회 고립 작전 등으로 하마스 고사(枯死) 작전의 수위를 높여왔다. ‘이스라엘 제거’ 구호를 외치며 자살폭탄테러를 주도해온 하마스 정권의 등장이 결코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마스 정부의 신중한 대처와 러시아, 유럽연합 등의 노력으로 이·팔 관계는 예상외로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하마스는 조건부이긴 하나 이스라엘에 대화를 제의했고 이스라엘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이스라엘의 예리코 교도소 습격과 팔레스타인의 보복으로 양측의 공존 가능성은 희미해졌다.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정권을 장악한 하마스가 4년 전 예리코 교도소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 지도자 아메드 사다트를 풀어주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시작됐다. 2002년 3월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자치정부 수반을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두었던 이스라엘은 자국 관광장관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사다트 등을 미·영의 감독을 받는 팔레스타인 내 교도소에 수감하는 조건으로 아라파트에 대한 포위를 풀었다. 이후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사다트를 석방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자치정부에 압력을 넣어 무산시켰다.
그러나 하마스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하마스로선 사다트와 같은 정치범들을 계속 수용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까지 지난 7일 “PFLP가 사다트의 신병을 책임진다면 못 풀어줄 것도 없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영국은 아바스 수반에게 “합의사항을 위반하지 말아 달라”고 서면으로 항의했지만 아바스의 실권은 이미 많이 약화된 상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스라엘의 초강수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배경에는 오는 28일 총선을 앞둔 이스라엘의 국내정치적 상황이 있다. 샤론 총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상황에서 그가 만든 중도정당인 카디마당은 당초의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보수성향의 리쿠드당과 진보성향의 노동당 등 양측 모두로부터 추격을 받고 있다.
하마스의 집권으로 이·팔 관계가 가뜩이나 불안해져 있는 상황에서 ‘암살범’ 사다트까지 풀려나면 이스라엘 유권자들의 안보불안 심리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었다.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대행의 지시로 행해진 이번 사건을 이른바 이스라엘판 ‘총풍’으로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스라엘은 총선을 수개월 앞둔 2000년 9월에도 샤론 총리가 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해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사면서 ‘제2차 인티파다’를 유발한 바 있다.
교도소 습격사건 직후 이스라엘 언론들은 군의 행동을 일제히 반겼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잘못이 있다면 교도소 치안을 유지하지 못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있다”며 “이스라엘군은 미뤄오던 ‘정의’를 실천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예리코 교도소 습격사건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테러의 희생자임을 강조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무차별 공격해온 이스라엘의 ‘국가테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팔레스타인인들의 강력한 저항을 대가로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지난 3월 15일 가자 및 요르단강 서안지구 내 모든 학교와 상점 문을 닫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유럽의회는 이스라엘군의 예리코 교도소 공격이 “불필요하고, 불법적인 군사작전”이라고 비난했다. 그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자극을 자제해왔던 하마스측의 팔레스타인 총리 내정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사다트의 신변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팔레스타인 반발, 미·영 비난 고조
팔레스타인의 모든 무장 세력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면적 보복을 천명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하마스 지도자로 자치정부 총리에 내정된 이스마일 하니야는 이번 사태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 대한 위험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대응책 마련을 위해 내각 구성 작업도 잠정 중단했다. 유럽연합(EU)으로부터 지원금을 얻어내기 위해 유럽 순방 일정을 진행 중이던 압바스 수반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가자지구에서는 흥분한 팔레스타인인들이 몰려나와 격렬한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였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보안 당국은 치안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가자지구에 머물고 있는 모든 외국인에게 철수하도록 권고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또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미국과 영국이 공모했다면서 두 나라를 비난하고 있다. 예리코 교도소에 감시요원을 파견, 관리해온 미국과 영국이 이스라엘군 공격 직전 감시요원을 모두 철수시킨 것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예리코 교도소의 안전 상황을 우려해 감시요원 철수를 예고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지구의 영국문화원에 불을 지르고 미국과 관련된 시설을 공격하는 등 미국과 영국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PFLP는 어떤 단체인가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감옥 공격에 항의해 용태영 한국방송 두바이 특파원 등 외국인을 납치했던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은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주도해온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산하의 무장전위조직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아랍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좌파 단체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하마스보다도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해 왔다. 산하 무장 세력들은 빨간 줄무늬 머릿수건(키파야)을 쓴다.
1953년 팔레스타인 출신 기독교도이자 의사 출신인 조지 하바시가 주도해 결성했으며, 60~70년대 대이스라엘 무장공격을 주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하는 데도 반대해 왔다.
2001년 이스라엘은 당시 인민전선의 지도자인 아부 알리 무스타파를 로켓 공격으로 사살했으며, 피에프엘피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극우 강경파로 유명하던 레하밤 제에비 이스라엘 관광장관을 암살했다. 피에프엘피는 무장세력을 거느리고 있으나, 정치조직으로도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지난 1월 총선에서 3석을 확보해 제3세력으로 부상했고, 지도자 사다트는 옥중당선 돼 팔레스타인 의회 의원이 됐다.


중동 또 하나의 시한폭탄-시아파 수니파 분쟁
지난 2월 사마라 시아파 성지 폭탄 테러로 촉발된 시아파와 수니파간 분쟁으로 이라크 곳곳에서 보복살인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전면적인 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14일 하루 동안에만 바그다드 일대에서 버려진 시신 89구가 발견됐는데 이들 시신 대부분은 총격으로 처형된 수니파 남자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번 공격은 지난 3월 12일 바그다드 시아파 빈민가에 가해진 폭탄 및 박격포 공격으로 최소 58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이 부상한 데 대한 보복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 사마라 소재 시아파 성지 아스카리야 사원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시아파의 보복 공격으로 수니파 무슬림과 성직자 5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수십개의 이슬람 사원이 훼손되거나 파괴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 3주년을 앞두고 이라크 통합을 거듭 역설했지만 이라크 상황은 인종적, 종파적 분열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붕괴점에 도달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라크가 이미 분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라크 북부를 장악한 쿠르드족은 사실상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을 정도의 자치권을 확보한 상태이고, 남부 지역에 몰려 있는 시아파는 지방정부와 종교 지도자들의 지원 아래 활동하고 있는 민병대를 통해 이슬람식 사회제도를 주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종파간 분쟁이 확산되자 이라크 정부는 바그다드 시내 일원에 시한부 차량 통행금지 조치를 내렸다.
미군 당국도 시아파 성일을 맞아 순례객들이 성지인 나자프와 카르발라로 속속 몰려들자 치안 확보를 위해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을 증원할 것임을 시사했으나 구체적인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이라크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들은 종파간 유혈분쟁이 전면적인 내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나 종파 분쟁이 수그러들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시아파 출신 경찰 관계자는 이라크군과 경찰, 미군이 거리를 통제하기 위해 협력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살상이 일어나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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